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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Jan 03. 2025

The Dose #10

연재소설


고양이 채채는 현우가 전학을 오기 전부터 이미 학교의 명물이었다. 얼마나 유명했냐면 채채의 장례식에 이웃학교까지 수십 명의 아이들이 참석했고 따라가겠다며 울먹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실제로 따라간 아이는 없었다.


"채채라는 이름 내가 지어줬어. 가끔 재채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거든"


전교회장이었던 유라가 언젠가 의기양양하게 친구들 앞에서 말한 것을 현우는 기억했다.

잔뜩 부른 배로 아직은 쌀쌀했던 4월의 찬바닥을 피해 학교창고에서 학생들을 향해 하악거리던 채채는 얼마 후 몸을 풀었는데 곁에는 새끼 셋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관심이 독이 되었던 것일까. 한 마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한 마리는 실종되었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로드킬을 당했다. 죽은 새끼를 입에 물고 창고 안에서 나오지 않는 채채가 궁금했던 아이들의 발걸음도 점점 뜸해지던 어느 날 현우는 목격했다. 


학교 연못가 물을 빤히 쳐다보던 채채가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평소에도 연못가 물을 홀짝이던 채채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었지만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달려갔다. 채채는 온몸을 연못물에 처박고는 미동도 없었다.


현우가 흥건히 젖은 채채를 들고 나타난 모습은 아주 기괴했다채채를 꺼내느라 옷은 흙탕물로 다 젖어 있었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엉망이 된 그 모습을 보고 몇몇의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몇몇은 웃었다.

현우는 보건실로 채채를 데려갔는데 선생님은 표정을 찡그리고는 이미 죽었다며 돌려보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현우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묻기보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상 속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고양이는 스스로 물에 들어갔고 나는 건져냈을 뿐이야"


현우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전학 온 이상한 애가 고양이를 죽였다는 소문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와전되어 퍼지기에 충분했다.


"고양이가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고?"

"우리 고양이는 물 닿는 거 질색하는데"

"죽여서 물에 빠뜨린 거 아냐? 무섭다"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선생님들은 무관심했고 마침 그 사건에 대해 유라가 상황을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현우는 아마 훨씬 더 오랫동안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범죄사실은 추측이 아닌 증거에 의해야 한다고 했어. 증거 있어? 증거 없음 허위사실 유포야"


똑 부러지는 전교회장 유라의 말에 아이들은 조잘거리던 입을 다물고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도 유라에게 반문하지 않는 모습은 그녀의 영향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현우는 한유라라는 아이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현우가 보아온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유라는 자신만의 원칙과 논리로 모두를 제압하고 있었다. 

          

어느 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현우에게 유라는 무심하게 말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냥 사고라고 해두자. 널 믿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오래 기억되는 게 싫어서 그래"


유라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고양이 사건뿐만 아니라 유라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메커니즘은 학교 안에서 일정한 질서를 유지했다. 유라가 전교회장으로 있는 동안, 그 어떤 불합리한 일도 우왕좌왕하거나 미뤄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라가 학교의 질서를 바로 잡을수록 현우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사실, 현우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런 일에 익숙했고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않는 방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현우가 가는 곳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러 가지 소문들이 따라다녔다.


대개 한두 사람이 문제였지만 그런 소문들에 대해 직접 반박하거나 해명하기에는 현우의 존재감은 마치 미스터리한 벽처럼 남아있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쟤 엄마 자살했대"

"어쩐지 음침했어"

"알고 보면 사이코패스 아냐?"


현우는 일일이 증거를 갖다 대며 해명하는 것보단 내버려 두는 것을 택했다.

어쩌면 차라리 부모님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가 이상한 아이가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채채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린 것은 현우였다. 한동안 동물도 자살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몰두했다. 채채가 스스로 물에 들어간 것이 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맞다는 가정하에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동물의 자살은 지능이 발달한 표시로 간주할 수 있다."


어쩌면 유라도 깨닫고 있었을까. 누군가가 밝혀내지 않는다면 진실은 영원히 침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라는 민수의 사고가 있던 날 민수에게 전화했고 이번엔 현우를 찾아왔다.




"왜 전화 안 했어?"


예고 없이 찾아온 유라의 모습에 현우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민수의 사고와 유라의 전화, 준비해야 할 자료들에 대한 생각들로 뒤엉켜 있었고, 거기에 더해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한 의문들로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기도전에 반가움과 당혹감 또한 한꺼번에 밀려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 오, 오랜만이네."

"나 여기 계속 세워둘 거야?"

"사무실로 올라가자"


유라와 함께 3층 사무실로 도착한 현우가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현우는 깨끗한 의자를 골라 테이블 앞에 가져다주었고 유라가 앉았다. 유라는 사무실 내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책상 위에 쌓인 잡동사니들, 원탁테이블, 작은 냉장고가 하나씩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시선이 현우를 향했다.

현우가 분주히 전기난로를 들고 와서 켜는 동안 유라의 시선을 의식한 듯 멋쩍게 말했다.


"사무실을 거의 안 써서, 좀 춥지?"

그러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유 몇 개와 김치통이 보였다. 그는 다시 냉장고를 닫고, 테이블에 놓여있던 믹스커피 봉지 두 개를 가져와 유라에게 내밀며 말했다.


"믹스커피라도 괜찮지?"

"고마워.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래"

"추락사고라고 했어. 바로 이 건물 8층에서. 많이 다치셔서 수술은 끝났는데 아직 의식은 없어"

"혹시 드론과 관련된 거니"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따뜻한 커피를 유라 앞에 놓던 현우가 말했다.

"임기자님이 꽤 오래전부터 드론 때문에 시달린 것 같아서. 나에게 드론이야기를 했었거든. 그리고 그날에도 나한테 전화를 했어. 사고전날"

"그날이라면 나랑 같이 있었는데"

"니 얘기를 나한테 했어"

"내 얘기?"

"만약에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를 찾아가라고 했어. 그때 알았어. 니가 여기 있다는 거"

"뭐? 통화한 시간이 몇 시쯤이었어?"

"밤 10시쯤.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음날 전화를 했는데 니가 받은 거야"


유라에게 전화를 건 시각은 현우와 헤어지고 난 후였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했다. 그날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했을 뿐이었다. 현우는 민수에게서 특별히 이상한 낌새도 느끼지 못했고 민수는 드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우와 헤어지고 바로 유라에게 전화를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아는 게 없는데"

"그래, 그런 것 같네"

유라는 커피잔의 바닥을 비우며 입맛을 다셨다.  

현우는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1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살이 많이 빠져 큰 키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긴 생머리를 단발로 자른 것 외에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유난히 까맣던 머리카락과 생기 넘치는 눈동자, 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올라가는 눈썹, 순간순간 잡히는 미간주름과 그때마다 습관처럼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무심한듯하면서 톡 쏘는 말투까지 그대로였다.


'어떻게 하나도 안 변했지?'

15년 전의 그녀도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절대 손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완전히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 것처럼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낯설게 느껴졌다. 현우는 문득, 과거의 기억 속 그녀와 눈앞에 있는 그녀가 겹치지 않는 두 개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여전히 심장이 뛰었고 현우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임선배는 어떻게 알아? 독일 갔다는 얘기 들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한유라 박사님?"

유라는 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독일에 갔던 이야기와 제약회사에서 개고생 하며 신약연구에 몰두해 온 커리어도 빼놓지 않고. 짧게 이야기를 마친 유라가 학창 시절 습관처럼 상황을 정리했다.


"정리하자면 임기자님 친구분은 죽었고 그걸 조사하던 임기자님도 지금 의식불명이라는 말이잖아. 결국 깨어나셔야 모든 걸 알 수 있겠네"

"혹시 내가 부탁하면 약 성분 분석 가능해?

"가능하지 시판 중인 약은 전부 법적으로 성분공개를 하게 돼있어"

"시판 중인 약이 아니라면?"

"무슨 약인데?"


그때 현우의 전화가 울렸다. 미연이었다.

"임기자님이 좀 전에 사망했어요"

전화를 받은 현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민수의 죽음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황망하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아직 물어볼 것이 많았던 머릿속 생각들이 중심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수많은 죽음들을 보고 들으며 살아왔지만 이토록 구체화된 죽음은 처음이었다. 

곧이어 미연으로부터 부고문자가 도착했다.


"중요한 증인이 또 사라졌군"

유라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급하게 도착한 장례식장은 아직 한산했다. 은영이 두 딸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고 있었고 미연이 분주하게 장례물품들을 챙기고 있었다. 미연이 현우에게 다가왔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건이 단순자살로 종결될 것 같아요"

"네? 증거가 나왔나요?

"목격자가 있대요. 유서도 나왔고요"

"그게 무슨......"

"그리고 이거"


미연이 전해준 것은 하얀색 캡슐로 된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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