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사다.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면 시킨다고 욕먹고 안 시키면 안 시킨다고 욕먹고 능력이 있으면 잘난척해서 재수 없다고 욕먹고 무능력하면 일도 못하는 게 꼴값 떤다고 욕먹는 나는 상사다. 지금 우리는 교권이 무너지고 어른이 하는 말들을 라떼, 꼰대라고 비꼬며 후배나 아래직원에게 잔소리라도 하면 갑질이라고 흥분하는 MZ세대와 알파세대가 갑인 시대를 살고 있다.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를 선호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수평관계가 나이를 무시하고 성의를 무시하고 기본적인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이러하다.
내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기분이 좋을만한 말이라면 무조건 해주자. 인사는 내가 먼저 하자. 나이가 많다고 윗사람이라고 받기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실수해도 괜찮다. 이유는 나도 실수하니까. 직원이 실수해서 일을 똑바로 하라고 다그치면 나중에 내가 실수했을 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테니까. 그것이 회사를,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확신했다. 그런 나의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철저히 박살 나게 된 내가 만난 일생일대의 이상한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회사는 직원이 1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였지만 10여 개가 넘는 쇼핑몰을 운영하였고 발전가능성이 높은 회사라는 생각에 키워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렇게 MD 겸 관리자 직급으로 들어가게 된 그곳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착해 보이는 직원들과 터치 없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어려 보인다, 예쁘다, 똑똑하다, 멋지다 등 내가 잘하는 감탄사를 붙여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칭찬했다. 새로운 신발을 신고 온다던지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온다던지에 대해서 피드백은 없었지만 어느 날 내 신발을 보고 직원 1이 무심하게 말했다.
"할머니 신발 같네요"
어느 날 보라색을 매우 좋아하는 나에게 직원 2가 말했다.
"보라색 좋아하면 또라이인 거 알죠?"
배가 불러 반찬을 남기자 직원 3의 말.
"지금 편식하는 거예요?? 혼나야겠네"
모든 사람들이 그랬고 모든 대화가 그랬다. 그런 대화가 나한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여기는 좀 특이하네'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심지어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출근한 사람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길래 내가 제일 먼저 아는 척해주었다. 왜 아무도 관심이 없냐 물었더니 말은 안 하고 생각만 한다고 했다. 왜? 도대체 왜?
"삭발을 하고 와도요?"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요. 삭발했네."
그런 회사는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할 말도 없었다. 예를 들어 비가 오네. 눈이 오네. 날씨가 덥네 춥네. 어제 본 드라마 내용이나 주고받는 그런 식이었다.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식사시간에도 그런 겉핥기식의 대화만 오고 갔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이어지지는 법이 없었다. 깊이 있는 대화도 불가능했다.
"오늘 생일이에요? 와~ 생일 축하해요^^"
"보라색이 잘 어울리면 미인이라던데 어쩐지 잘 어울리더라^^"
나는 평생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들만 만나왔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이상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
"오늘 제 생일이에요^^"
"그래요?"(어쩌라고? 안물안궁?)
늘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갔으니까. 나도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고 피드백 없는 다정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회사는 승승장구했고 최고매출을 달성했다. 나도 일이 재미없진 않아 불편한 마음을 다스려가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건이 발생했다.
직원 3이 코로나에 걸려 내가 일을 대신해 주게 된 것이다. 일을 해주다 보니 잘못된 방식으로 번거롭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업무방식을 바꿔야겠다 다짐했다.
다음날 나는 더 쉽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아침부터 개발업체 본사와 통화까지 하며 직원 3에게 가서 알려주려고 했다.
"그럼 제가 뭐가 돼요?"
방법을 가르쳐주려는 나에게 내뱉은 직원 3의 첫마디였다.
"나는 도와주려는 거잖아요"
"그건 알겠는데요! 그럼 제가 뭐가 되냐고요! 아픈 사람한테 이건 아니죠!"
그 사람은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내가 도와주는 게 싫은 것일까. 아픈 게 문제인 걸까. 시스템을 바꾸는 게 싫은 걸까. 계속 힘들게 일하고 싶은 걸까. 아님 그냥 내가 싫은 걸까.
나는 상사였지만 업무적인 지시도 거의 없었고 직원들의 방식을 존중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시스템도 직원들이 편한 대로 그대로 두었다. 매출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직원들이 힘들다면 포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지내오다 진심으로 번거롭게 일하는 직원 3을 위하는 마음을 먹은 것이었고 시스템을 편하게 바꾸고 내 업무를 제쳐두고라도 일도 도와주겠노라고 결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곳은 모든 관심의 표현이 선을 넘는 것이었고 모든 대화가 오지랖이었다. 모든 조언은 간섭이었으며 모든 인사는 안물안궁이었다.
그 일 이후로 직원 3은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를 결심하자 대표는 부하직원들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한 나를 탓하며 회사를 위해 무조건 참을 것을 종용했다. 내가 퇴사해서도 안되며 직원을 내보낼 수도 없으니 그냥 참으라는 거였다. 내가 퇴사하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될 거라 했다.
"그럼 제가 나쁜 사람 되겠습니다"
나는 타인의 개성과 다름을 인정하지만 그 다름이 나의 가치관을 훼손시키고 내 진심을 심하게 왜곡한다면 그 사람은 피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에도 직원 3은 다른 직원들과 끼리끼리 뭉쳐 다니며 나를 따돌렸다. 나는 그렇게 입사한 지 1년 만에 그곳을 퇴사했다.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들에게 온마음을 다해 살아도 부족한 인생이다. 내 인생 모토인 '선한 영향력'이 통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영향력은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반드시 통할테니까. 지금까지도 그랬고. 다만 직원들 간의 화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일 잘하는 직원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며 무조건 회사를 위해서 참으라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오너의 무능력이 어떠한 혼란과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똑똑히 확인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기준은 항상 약자의 편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사회에서의 약자는 수직관계에서의 아랫사람이 아니라 더 친절하고 더 양보하는 사람이 되었다.
직급과 위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업무를 부과시키고 이용하는 사람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많고 나와 같이 역갑질을 당하는 상사도 많다. 직장생활 20년 만에 맛본 역대급 파란 이후 쫓겨나듯 도망친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다시 상사가 된다면 나는 더 친절한 사람이 될 것이다. 더 많이 친절하고 더 많이 칭찬하고 더욱더 만만한. 좋은 사람이 있는 좋은 곳이라면 그런 나를 똑같이 친절히 대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다시 퇴사할 것이다.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