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고졸로 살아남기.
나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진학해서 고3 9월부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친구들이 수능을 볼 때 나는 초고압 변압실에서 일을 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대학교를 여전히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능이라던가 내신이라던가 준비 된게 없었으니 당연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했다. 일을 하기 시작하고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대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수능을 보는 건 무리였으므로 내신 점수로 갈 수 있는 폴리텍 대학교에 지원하였다. 첫 수시 원하는 과는 대기 4번을 받고 떨어졌다. 위기를 느낀 나는 살짝 하향 지원을 하였다. 결과는 합격. 이제 나도 대학생이라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여서 좋았다. 다니던 일을 정리하고 프랑스 여행도 다녀왔다. 내 나름대로 꿈꿔온 로망, 하고 싶은 공부도 많이 하고 대회 나가려고 동료들과 고생하며 밤도 지새우고 할 줄 알았다. 개뿔.
대학교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긴 한데 좀 부족했다. 분명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하던 교수님도 정작 물어보면 나중에 나중에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전문대이기도하고 이 대학 특성상 취업하려고 오는 분들이 많아서였을까. 대회는 무슨 전공에 관심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혼자서라도 대회 정보를 찾아 워크숍을 다녀왔다. 출석 대체 허락을 맡으려고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왜 이런 걸 공유하지 않았냐고 한다. 홍보하면 모집이 될 거라고 하면서 게시판에 관련 자료를 붙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안 모였다. 붙여놔도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전공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려운 걸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홀로 워크숍을 갔다. 유일한 전문대생, 유일하게 혼자 혼 학생이 나였다. 참담했다. 워크숍 장소는 대전이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카이스트와 충남대를 보면서 왔다. 부럽다고 느꼈다. 대학교 생활의 로망. 캠퍼스 라이프 이런 것보다 하고 싶은 공부를 더 공부하고 대회도 나가고 하고 싶은 게 내 로망이었다.
나는 이후로 학교를 거의 안 나가게 되었다. 학교에 나가더라도 수업에 안 들어가고 학교 카페나 도서관 등에서 혼자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 듣고 싶은 강의 시간 혹은 잘 가르치시는 교수 님 수업에만 들어와 듣고 갔다. 나는 수업에 질문도 하고 답변도 잘했는데 그래서 내가 안 나와도 출석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열심히 하는 학생이 갑자기 집에 가버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나는 휴학을 하려고 했으나 담당 지도교수가 계속 휴학을 말렸다. 타당한 이유로 말린 것도 아니고 신경질을 내면서 못하게 했다. 나는 결국 해당 학기 학점 0.79와 학사경고를 받았고 마침 지도교수가 바뀌어 나를 처음 보는 교수님께 휴학계를 냈다. 일 년 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자퇴 서류를 냈다.
이후 방송대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일과 내 개인 시간 중심을 전혀 못 잡아서 너무 피곤했다. 수업 신청을 하고도 듣지 못했다. 결국 이것도 자퇴. 나는 대학에 가면 로봇을 공부하고 싶었다. 마이스터고에 간 이유는 취업 때문이 아니라 단지 수업료가 무료라서 갔다. 학교 다니며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으로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못해봤던 로봇을 조금씩 만들어 보게 되었다. 처음에 너무 재밌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 하고 싶은 공부는 꼭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고등학생의 신분을 벗은지 10년이 다 되어갈 무렵 다시 한번 대학에 들어간다. 당연히 온라인 과정이다. 다만 이번에는 공대에 들어갔다.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 등을 배웠다. 수학이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그런대로 재밌었다. 산업공학개론, 메카트로닉스 개론 등을 들었다. 역시 재밌었지만 학교에서 너무 신경을 안 써주는 것 같고 이 과정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침 너무나 운이 좋게 정말 꿈꿔오던 엔지니어가 되었다. 게다가 로봇 엔지니어이다. 하고 싶었던 일에 들어왔기 때문일까 다시 한번 자퇴를 한다.
지금은 정규직이 되었다. 여전히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아마 내 학력으로는 두 번 다시 못 들어올 분야일 것이다. 당시 들어왔을 때는 학교에 등록했었고 평소 혼자 엔지니어링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비교적 일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물론 배워야 할 것이 정말 산더미이다. 비록 고졸임에도 내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계속 꿈 주위에서 맴돌았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내 주변에서 고졸 출신이 거의 없다. 학교 친구들 아닌 이상 사회에서 본 사람들은 거의 대학을 나왔다.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일단 대학은 다 나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학 안 나와도 잘 사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제약이 너무나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단 비전공이라고 할지라도 최소 초대졸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의 문이 좁아진다. 하다못해 교육을 듣고 싶어도 학력 때문에 지원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국비지원도 다 대졸자를 뽑는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내가 되고 싶은 직업들은 대부분 고학력자가 많다. 연구자, 엔지니어 등 내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고졸이라고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할 게 없다는 뜻도 아니다.
지금은 억울하지 않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다 그 학교에 가기 위해서 혹은 졸업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을 텐데 나는 그런 게 없다. 그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최정상의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한다. 그건 그 사람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나는 그들이 대학에 입학하려고 수능을 보고 원서를 넣고 대학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고 취준을 한 것과 상응하는 노력이란 게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부끄럽게도 나의 20대 대부분은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노력이 있었다고는 못하겠다. 분명 나한테도 무언가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는데 말이다.
작년부터 조금씩 노력해서 내 삶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지만 20대 끝자락에서 이제 겨우 1년 열심히 산 것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노력이라도 해봤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딱히 고졸로 계속 살고 싶지도 않고 이제는 어느 쪽에도 생각이 없다. 그저 하고픈 공부가 있다면 대학 공부를 해보고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학을 가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대학에 너무 가라고 하고 싶다. 그것도 좋은 대학이면 더더욱 좋다. 그만큼 기회가 열린다.
고졸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특별히 심각하지 않다. 다만 노력하지 않는다면 많이 이 세상에 뒤처질 것임은 분명하다. 고졸로 산다는 것은 내가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공부하고 전문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세상에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재능 있는 사람 역시 너무나 많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일을 계속 찾아가면 된다. 정말 계속 꾸준하게 찾아가면 된다. 다행히 이 세상은 그런 기회를 잡아줄 혹은 발견해줄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이건 학력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