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어딘가. 혹은 그 밖에.
파인더스클럽에서 4명의 지인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워라벨과 워라블 중 어떤 것을 더 선호 하냐는 질문이었다. 결과는 워라벨 vs 워라블 결과는 2 대 2로 동률이 나왔다. 직업도 직무도 일의 형태가 워낙 다르기에 각자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달랐다. 나는 어떠할까. 예전 같았으면 고민 없이 워라블 쪽을 선택했을 것 같다. 요즘 드는 생각은 사실 나는 워라벨을 더 선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 전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다.
현재 스타트업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3개월을 맞이하였다. 수습기간이 끝이 났다. 계약직까지 포함하면 총 1년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계약직일 때는 야근 없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6.5시간을 근무하였다. 지금은 때때로 야근을 하며 하루 7.5시간으로 근무시간이 고정되어 있다. 점심시간도 1시간 30분이고 보통 직장인의 필수 근무시간 보다 30분 정도 적지만 스타트업의 특성상 혹은 내 직무, 업계 특성상 회사에 다니는 분들 포함 나 역시 잘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물론 정시 퇴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은 정시 퇴근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일이 없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시간 가는 게 괴로웠는데 할 일이 넘치는 지금은 시간이 정말 빨리 가버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날 근무도 약 두 시간 정도를 연장 근무를 하고 왔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들을 다 못하고 왔다. 물론 하루 만에 끝내는 일은 아니고 기간이 있는 일이지만 오늘 좀 더 했다면 기간이 끝나갈 때 좀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꿈꿔왔던 일이다. 올해 1분기에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1년만 채우고 일을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4월을 넘기면서 해야 할 일들을 찾았고 많은 일을 만나게 되면서 의욕이 가치 타올랐다. 여기서 나는 일의 자율성을 주되 약간의 강제성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100%의 자유는 나를 더 힘들게 한다. 그리고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갑자기 일이 더 재밌어졌다. 이 고민은 불과 일주일 만에 생각이 바뀌었기에 살짝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기도 하다.
분명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고 배울 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 점들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다. 내가 일에 시간을 쓰는 만큼 다른 일들을 못한다는 것이다. 일뿐만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비롯한 좋아하는 일들이 많다. 정말 많다. 계속 생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일에 시간을 쏟을수록 나머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 부분이 스트레스이다. 다 해보려고 잠을 줄여보다가 생활패턴이 깨져서 밤을 지새우고 출근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N잡을 했을 때 행복했던 이유가 일을 하는 시간은 많았어도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이때 이 시간들을 이용하여 책을 읽었고 다독을 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또한 평일 날 일정을 잘 잡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하는 경우가 계속 생겨서 정말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주말에 하는 경우가 많지만 평일날 하는 일도 많은데 못 간 행사, 강연, 약속들이 많다.
정규직 제안을 괜히 받아들였나 싶기도 하다. 나는 아직 갭 이어를 보내고 있고 약간 줄어든 급여를 받아도 되니 시간을 확보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급여가 드라마틱 하게 차이가 있지도 않다. 물론 무경력 신입이라서 그렇다. 갭 이어가 아니었다면 절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엔지니어라는 일을 좋아하지만 이 일만 하고 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언제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정규직이 되었음에도 갭 이어를 끝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 근무시간을 조정하거나 등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시간을 조정해서 일을 하는 분들도 계셨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워라벨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워라벨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라는 의문도 든다. 정말 일 년 내내 워라벨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내 일'을 했다면 이런 고민이 없을까 싶기도 하다.
다행히 지금 나는 내 일들을 정시 안에 해결하고 있긴 하다.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집중이 잘 되어서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끝낼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늘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정작 내 직무의 일이 바쁜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
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워라벨이 필요한 게 아니다. 더 많고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기 때문에 고정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9 to 6가 중요한 게 아니라 12 to 21이 되었든 새벽에 일을 하든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글을 적다 보니 너무 이상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 이런 삶을 원하지 않을까 싶다.
워라벨과 워라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게 아닐까?
애초에 원인은 너무 많은 걸 하고 싶은 나한테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며 고민을 다시 슬며시 집어넣어 본다. 분명 오전에 회사 나가면 꽤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을 게 뻔하다. 어제 오전에 못 마신 카페모카를 출근하면서 사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