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얼마까지 써봤니?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년 새해가 되면 올해는 33권의 책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한다. 지금까지 지켜지는 해는 없었고 가장 근접했던 해가 20권 정도였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건 아쉽지만 기록이라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올해가 시작되고 마찬가지로 33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1월이 지났다.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 다행히 올해부터는 기록을 하기로 해서 엑셀 파일의 입력된 1월의 결과를 보았다. '2'권, 33권을 채우려면 한 달에 3권 정도를 읽어야 하는데 출발이 어째 불안하다. 다행히 2월은 무려 6권을 읽었다! 평균이 맞아가고 있다. 3월도 5권을 읽었다. 이대로라면 33권 정도는 가뿐히 성공할 것 같다. 4월은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 정답은 15권이다. 엥? 갑자기 일 년의 목표 절반 정도를 한 달 만에 달성해 버렸다. 어떻게 된 걸까. 이유를 살펴보았다.
먼저 쓰리잡을 하게 되면서 경제적 여유를 찾게 된 점이다. 서점을 가는 것을 원래 좋아했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읽고 싶은 책을 모조리 살 수 있었다. 자주 갈 때는 일주일 내내 간 적도 있다. '인덱스 숍'을 시작으로 독립서점을 여러 군데 가보면서 관심 가는 독립 출판물들을 구매하였다. 당연히 읽을거리가 집에 늘어났고 책장은 금방 채워졌다. 쓰리잡 생활 중 오전 일은 대기시간이 유독 길었는데 이때 책을 가져와서 읽었다. 가방에는 두 권 이상의 책이 있었고 대기장소가 어두운 공간이었는데 목에 거는 랜턴을 구매하여 사용했다. 하루에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반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 오전 일이 끝나고 오후 일을 갈 때 지하철을 타면서도 읽었고 도착해서 업무 시작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또 읽었다. 이렇게 읽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어 읽지 않더라도 쉽게 15권을 읽을 수 있었다. 자투리 시간의 유용함을 스스로 확인했다.
다음으로는 도서관 대출건수의 확대이다. 기존 7권 대출을 할 수 있었는데 우수 대출 회원이라고 하여 10권으로 늘었다. 곧이어 기본 대출건수가 10권으로 늘어 2주에 13권을 빌릴 수 있었다. 연장을 1주일 하여 3주에 13권을 빌렸으니까 한 달에 대략 20권 이상을 빌려 본 것이다. 대부분 13권을 채워서 빌려왔는데 비록 다 읽지는 못하여도 독서량 증가에 충분히 도움을 주었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책의 범위를 넓혀주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 조성에 공헌하였다.
마지막 이유는 내 눈, 즉 시력과 관계가 있다. 나는 부동시를 갖고 있는데 쉽게 말해 짝눈이다. 양쪽 시력 차가 심할 때는 1.4가 나올 정도로 차이가 크다. 다행히 물리적으로 좋은 쪽 눈을 다치지 않는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을 거라고 한다. 다만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내 시력이 점점 줄어들어 아무것도 못 보는 시기가 찾아왔다. 잠에서 깬 나는 두려워져서 어쩌면 정말로 내가 무언가를 보고 읽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들어 읽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많이 접하다 보니 책을 빌리고 구매하는 비용도 증가했다. 내 방에 책이 차지하는 부피도 늘어났다. 그 결과 나는 33권을 넘어서 100권을 넘게 읽을 수 있었고 현재 진행 중이다. 갭 이어를 하면서 얻게 된 긍정적 결과 중 하나다. 다독이 꼭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루빨리 늘리고 싶었기에 다독을 택했다. 이 간접경험은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향후 만나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책 추천도 해줄 수 있었다. 당분간은 계속 다독에 집중하고 싶다. 책은 많고 듣고 싶은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