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1.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잔잔하고 무료한 일상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삶을 뒤흔들만큼 강력한 행복이 불현듯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녀는 쉽게 행복하고 쉽게 불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그녀가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다는 걸 뜻했다. 행복한 만큼 불행했고 불행한 만큼 행복했다. 행복 뒤에 불행이 수반된다면 행복을 아예 느껴버리지 않겠다는 바보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잔잔하고 무료한 일상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행복을 원하지만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원하지 않았던 행복을 곧 원하게 되었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던 그녀의 의지는 행복인지 불행인지 가늠되지 않는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일상에 어떤 사건이 들어오려고 머리를 조금 들이밀었을 때, 그녀는 그것이 행복이라 직감했고 '곧이어 불행이 뒤따라 올 것'이라 말하는 이성의 판단을 무시했다. 그녀는 스스로 자극을 컨트롤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얼마못가 자신의 오만함을 깨달았다. 그녀는 또다시 행복한 만큼 불행했고 불행한 만큼 행복했다. 그 폭이 클수록 그녀는 심하게 괴로워했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잔잔하고 무료한 일상이야말로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2.

그녀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안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웃으며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지금 당신이 했던 모든 말은 다 개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나 별로인 너를 사랑한다고 기꺼이 말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당신이 좋아한다고 섣불리 생각하는 내가 이만큼 별로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편견덩어리이며 게으르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제일 불온해보이는 구절을 sns에 인용하고 일부러 정치얘기를 꺼내고 답이 없는 논쟁을 굳이 시작한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을 보며 이상한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자신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

3.

그녀는 말을 믿지 않는다. 말은 발화하는 순간 흩어진다. 그녀는 말이 많은 사람을 경멸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4.

어느날 그녀의 친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 네가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녀는 그녀의 친구에게 힘들다고 말한 적 없었다. 말할 기회가 있어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는 그녀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렇게 무너지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았다.

5.

그녀에게 행복이란, 약간의 늦잠. 책에서 찾아낸 좋은 문장들. 향긋한 커피와 따뜻한 햇볕. 솔솔 부는 바람. 그녀는 이제 그녀를 뒤흔들 만한 어떤 사건도 필요치 않다. 종종 원하게 될 수는 있겠지만 필요하지는 않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 이제 비로소 자유로워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