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부쩍 할머니의 흔적을 더듬는다. 어머님이 여기에 화분을 두었었지, 어머님이 이 반찬을 만들 때 이걸 넣으셨었는데, 어머님이 이 음식 좋아하셨었는데.. 삶의 터전이 변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할머니의 빈자리를 느낀다.
한참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다. 무려 5년이 지나도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던 날의 생채기는 여전히 따끔거린다. 그렇게 울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할머니를 보고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할머니는 우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왜 우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언어가 생각나지 않는 걸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영은이 기억 못 하니까 슬프잖아” 하며 목놓아 울었다. 할머니 앞에서 부리는 어리광은 언제나 안전하고 괜찮으니까.
할머니를 떠올리면 사랑받은 기억밖에 없다. 할머니한테는 무엇이든 용납받았다. 뭐라도 입에 더 넣어주고 싶어 하던 그 마음, 이따금씩 전화 걸어 목소리 들으니 되었다던 그 순간, 괜찮다. 다 괜찮다며 등을 쓸어주던 손길. 그 사랑의 힘으로 나는 이만큼 자랐고, 할머니가 준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인간은 참으로 유한하다.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나도 언젠가는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나를 잊은 세상에게 통탄해할지도 모르겠지. 마음 아프지만 자연스러운 순리다. 그러나 세상에 유한한 게 있다면 뭘까. 난 그게 사랑이라 믿는다. 내가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 받은 마음을 또 누군가에게 전하면서 생기는 사랑. 그 사랑이 흐르고 흘러 대지를 적시고 공기에 가득찼으면 좋겠다.
내가 줄 수 있는 오늘만큼의 사랑, 그 사랑 에너지의 근원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니까. 그래서 사랑은 영원하다. 할머니는 나를 잊어도 할머니가 내게 준 사랑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그래서 또 살아갈 용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