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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라 Jul 30. 2019

태평양 그 어디쯤의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지도 모른다고

film photograph











  양양에서의 둘째 날 새벽이었다.

  평소 잠이 많은 나답지 않게 아주 이른 새벽에 절로 눈이 떠졌다. 아마 바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션뷰의 해안가 호텔이 우리의 숙소였다.

  처음에 나는 그곳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교적 근래에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한 편이었으나 바로 그 흔적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완벽하게 탈바꿈하지 않은 리모델링. 전체가 아닌, 육안으로 보기에 추레하고 낡은 부분만을 골라 보수한듯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왕 리모델링을 할 거라면 티가 나지 않도록 깔끔하고 완벽한 마감을 하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둘째 날이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하나의 장면과 몇 잔의 와인 때문에 나는 그 호텔에 다시 방문하고 싶어 졌다. 그 ‘장면’은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발코니 창으로 보이는 희뿌연 풍경에 나는 시선을 빼앗겼다. 호텔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바닷물에 잠겨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다가 가까이에 있었다. 유독 그날 새벽에만. 안개가 자욱하고 파도는 거세었다.

  코앞에서 파도가 치는듯했다. 마치 전날 밤 혹시 내가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있다가 까무룩 잠이 든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나오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다를 보는데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스크린처럼 네모난 발코니 창 안에는 파도를 제외한 그 무엇도 없이, 오직 바다로만 채워져 있었는데 거기에 갑자기 배 한 척이 끼어든 것이다. 배에는 어떤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한 사람만을 겨우 태울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크기였다. 남자가 탄 배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이 타고 있던 것보다도 작았다.

  배가 떠있는 곳은 강원도 양양의 어느 호텔 앞 해변가가 아닌, 마치 아주 먼 바다의 한가운데처럼 보였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만 없었다면 정말로 그렇게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드넓은 태평양 바다 위에서 한 남자가 1인용 배를 타고 파도를 넘나들고 있다고 말이다. 그걸 코앞에서 보는 나 또한 태평양 그 어디쯤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지도 모른다고.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풍경을 보며 나는 자꾸만 눈을 깜박였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실제로 마주한 기분으로. 저 남자는 노인일까, 소년일까, 중년일까. 살아있는 사람이기는 한 걸까. 흐릿한 얼굴과 실루엣.

이것은 꿈인가, 현실인가. 어쨌거나 저 헤밍웨이의 소설 속에서 막 튀어나온듯한, 유령인지 인간인지 모를 이는 도대체 저 험난한 바다 위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낚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파도를 넘는 데에 전력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이런 의문들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그가 타고 있던 배는 이리저리 파도가 만들어내는 굴곡을 넘나들며 위태로운 곡예를 펼치고 있었다. 그의 배는 뒤집히기 일보직전처럼 보였다. 나는 배가 난파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제 몸만한 기다란 노를 잡고 파도를 넘나드는 그가 풍랑을 버티고 있는 건지 즐기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새벽녘 물안개가 남자와 나 사이에서 많은 것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날씨에 바다로 나간 이유는 무엇이며, 저곳에서 대체 무얼 하려는 건지, 무얼 얻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인지. 그가 혹시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까 잠시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신고를 해야 할까? 그러나 그는 그대로 계속해서 파도를 뚫고 더 먼 바다 쪽으로, 지평선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가 만약 필사적으로 내 쪽을 향해 노를 젓고 있었다면 나는 즉시 해양경찰에게 신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등진 채 반대방향으로 힘껏 노를 저어댔다. 작디작은 배를 향해 밀려오는 파도를 쉼 없이 돌파하고 있었다.

  침대에 멍하니 앉은 채로 그 모습을 보는데 여전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어둔 발코니를 통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그 덕에 얇고 속이 비치는 하얀색 커튼이 휘날려 마치 춤을 추는듯했다. 저 남자도 바다 위에서 배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걸까. 파도의 리듬에 맞추어. 혹시 이건 꿈결의 환영 같은 게 아닐까.

  하지만 발코니 바깥에서 불어오는 눅눅한 바닷바람이 살결에 닿는 감촉 덕분에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환영이 아닌 현실임을 감각할 수 있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생의 마지막 모험을 하듯 거친 파도를 하나씩 하나씩 넘으며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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