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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라 Jul 23. 2019

양양 서피비치에서 들이킨 달콤짭쪼름한 코로나의 맛

film photograph







양양에 있는 내내 날이 흐렸는데

유독 서피비치에 들렀던 때에만 잠시 해가 반짝 떴었다.

어쩐지 이국적인 공간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던 해변.



작렬하는 태양 아래 가벼운 옷차림의 젊은 이들은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음악과 찰싹찰싹 파도소리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아이보리색 해먹이나 빈백에 몸을 뉘이고 해변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h와 나는 앉을만한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모래사장을 걸어 다녔다.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과 조금 떨어진 곳에 다다랐는데,

그곳에선 서퍼들이 한창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양양에선 어딜 가나 서퍼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바지가 조금 축축해지는 일 따윈 개의치 않고 우리는 젖은 모래 위에 털썩 앉아 그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어딘가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즈음 몸을 일으켜

코로나선셋바에 가서 자몽맛 분다버그와 코로나비어를 주문했다.

두 개의 유리병을 건네받았을 때 손에 닿았던, 얼음처럼 차가운 병의 온도에 조금 놀랐다.

운전을 해야 하는 h에게 분다버그를 건넸더니 표정을 조금 찌푸리며 심통난 표정을 지었다.

장난기가 도져 h의 볼에 맥주병을 가져다 댔더니 낯선 차가운 기운에 놀라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이 우습고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런 곳에서 맥주를 마실 수 없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h의 분다버그를 한 모금 마셔보니 어쩐지 다른 때보다 더 달달하게 느껴졌다. 너무 달잖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마시는 분다버그의 맛은 햇볕에 달궈져 졸아든 것처럼 달착지근했다.

반면 내 손에 들려있던 코로나 맥주병 안에는

얇게 썰린 레몬 조각 하나가 퐁당 담겨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상큼하고 시원했다.

 

우리는 결국 해먹이나 빈백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캠핑체어 두 개를 꺼내어 하나씩 들고 모래사장으로 돌아왔다.

겨우 자리를 잡고 이제 막 맥주를 두어 모금 마신 때였다.

맥주를 발 밑 모래에 푹 꽂아두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아뿔싸, 중요한 물건이 사라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가방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의자 주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h에게 잠시 살펴보고 오겠다고 한 뒤 서피비치 이곳저곳을 샅샅이 수색하며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는 곧 h도 주변을 살피러 갔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우리는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의 기운과, 그걸 모조리 품었다가 다시금 뿜어내는 모래사장의 열기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지쳐 보이는 h의 옆모습을 보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어째서 난 여행 중 물건을 잃어버려 즐기기에도 모자란 아까운 시간을 까먹고 있는 걸까. 속이 상해 모래에 파묻어두었던 코로나를 꺼내어 빨대도 꽂지 않고 병 입구에 입을 댄 채 마구 들이켰다.

 

아까 전 첫 모금 삼킨 코로나에선 달콤쌉싸름한 맛이 났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달콤짭쪼름한 맛이 되어버린 건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내 마음 또한 짜디짠 바닷물에 닿은 상처처럼 여전히 따끔거리고.

태양의 열기 탓인지 바닷바람 때문인지 혀에 닿는 맥주의 맛도 더없이 달콤짭쪼름해져 갔다.


하지만 역시 맥주는 묘약인 걸까.

분명 처음보다 시원하지 않았는데도 점차

목젖을 충분히 적시며 넘어가는 청량감이 내 안에 끓어오르는 자기혐오와 갈증을 조금 해소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맥주를 들이켜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점차 나른해졌다.

졸음이 몰려오는듯해서 캠핑체어에 더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해변의 묘약, 코로나비어를 마시며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곱디고운 모래 아래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파묻혀 있을까.

파도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손아귀에 쥔 채 지평선 너머로 멀어져 갔을까.


비단 물건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변에 갈 때에 품고 가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해변의 방문객들이 잃어버린 채 떠났을지도 모를 것들과 일부러 두고 가버린 건지도 모를 것들에 대하여.



여름은

들끓는 불안.

그것을 야기하는 걱정거리와 잊고 싶은 기억들을

모두 모래 속에 처박아두거나 파도 속으로 던져버리기 좋은 계절이다.


해변의 방문객들이

자꾸만 들러붙는 까끌한 모래 알갱이들을 탈탈 털어내듯 그렇게 미련 없이 해변을 떠날 수 있기를.








































하늘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고

그 사이로 무엇이 내려오고 올라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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