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Arles) 편>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곧 천재
스물한 살 여름, 난 아를(Arles)에 있었다.
당시 구글맵도 없던 시절, 지도를 보고도 길을 못 찾는 남다른 방향감각으로 한참을 헤매다 그림 속 '고흐 카페'를 찾았고, 아래 사진을 찍었고, 참 감격했었다. 그냥 노랗게 페인트 칠 된 예쁘지도 않은 평범한 카페일 뿐이데 벽에 쓰인 '반 고흐'라는 글자의 위엄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나 보다.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며 너도나도 사진 한 장 씩은 으레 찍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바로 근처에 동상 하나가 서 있는데, (그 사람은 고흐가 아니건만,) 여기까지 왔는데 고흐랑 하나 찍어야지 라며 고흐인지 알고 열심히 찍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를(Arles)은 파리에서 TGV를 타면 세 시간 반 정도 걸리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옛 교황청이 있어 유명한 아비뇽(Avignon) 옆에 있다. 여긴 오늘날 너무나 잘 알려진 고흐의 많은 대표작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에 그의 자취를 찾아 방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꼭 그 이유가 아니라도 지역 전체가 예전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어 특색 있게 아름다우며, 고대 로마시대 유적들도 볼 수 있어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여하간 이 옛스러운 매력이 좌르르 흐르는 아를을 처음 접한 이야기부터 잠시 하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벙한 스무 살 무렵, 난 아주 깜찍한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샹베리라는.. 스위스에 가까이 붙은 조그마한 지역에서 어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어는 내게 애증의 대상이었는데,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그냥 좋지만 열정을 쏟기엔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잘해서 대체 뭣 할 거냐는 느낌의 존재였다. 지금 같았으면, 내 직관을 따랐을 것이나 여하간 그 당시는 더 어리석었기에 내 판단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하도록 하고.
여하튼 푹푹 찌는 그 여름, 수업이 없는 주말을 껴서 언니들을 따라 '아를'을 처음 갔었고, 짧지만 그때의 강렬한 기억은 한동안 여름이 찾아올 때면 문득문득 떠올랐었다. 너그럽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 모든 건 다 잘 될 거야 라는 무한 긍정 에너지, 한 템포 느린 사람들과 비슷하게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시간들.. 내가 스무 살에 처음 체험한 프랑스가 파리가 아닌 프랑스의 남부 지역들이었기에 지금껏 프랑스를 싫어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지.. 그 여행은 한마디로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나 성수기의 극점을 찍는 한 여름에 뭘 믿고 우린 예약도 안 하고 갔는지.. 대책 없이 간 대가로 숙소를 구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었다. 결국 평소보다 배로 비싼 가격으로 책정된 후덜덜 숙박비를 원통해하며 지불하였고, 고흐 카페 하나도 못 찾아 코 앞에 놓고도 하염없이 빙빙 돌만큼 방향감각을 상실한 여인네들이었지만 내겐 고생보다는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겨우 어찌어찌 구해서 들어간 그러나 학생의 기준으로 과도하게 좋았던 숙소에서는, 언제 고뇌가 있었냐는 듯,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언니들과 기쁨을 나누었고, 여느 호텔과 다르게 원색으로 페인팅된 룸과 독특하게 데코 된 아이템을 보고는 실성한 듯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체크 아웃 후 청소하려고 열어 둔 남의 객실에까지 또 몰래 들어가서 '우리 방하고는 또 다르게 이쁘네' 하며 좋다고 사진을 찍고 나왔는데.. 아무리 철이 없었기로서니 참으로 어글리 코리안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리하여 나에게 아를은.. 그 예쁜 호텔의 강렬한 색감과 더불어 피부가 따갑도록 강했던 햇살, 노란 고흐 카페, 자기 몸보다 몇 배는 큰 가방을 멘 젊은 여행자들, 그리고 투우 포스터가 붙어 있던 오래된 아레나로 기억한다.
이제 손가락으로 꼽아보기에도 벅찬 무수한 세월이 흘러.. 2018년 겨울, 나는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다.
아마 내가 이 작은 마을에 다시 오리라고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 말고 선택한 남부 지역 중 딱 한 곳이 아를이다. 고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행으로 기획한 것이 아님에도 그저 아를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겨울의 아를은 예전만큼 그렇게 강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 그 아를의 에너지를 다시금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겨울이었고, 그리하여 당연한 것이겠으나 '추웠다'. 그래도 파리보다 훨씬 아래쪽에 있으니 좀 따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따뜻한 바람에 낭만이 흐르던 여름의 '론 강'은 불어오는 미스트랄로 인해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 사나운 어둠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노란 가스등 아래를 우아하게 걸으며 별빛을 감상하는 것은 꿈에서나 해라 하는 듯했다. 내가 머문 내내, 바람은 이거 뭐 한번 해보자는 건가 싶을 정도로 끝끝내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말 그대로 '미친 듯' 불었다. 론강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고흐는 이곳에서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꿈을 꾸며 고갱을 초대하기도 했고, 정력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 우리에게 대표작으로 알려진 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나는 지난번 글에서도 썼지만 고흐는 어떻게 타인의 인정 없이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 답은 고흐만 알겠지만, 나는 그의 영혼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동생 테오의 존재도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테오가 단지 그에게 돈만 대주는 사람이었다면 고흐가 그만큼 버틸 수 있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서는 어떤 신념이 느껴진다. 힘든 상황에서 물론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기도 하고 많은 고뇌들도 했지만, '진짜'를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다. 어찌 보면 '천재'란 어떤 특별난 비상함이라기보다 기존 사회 통념이나 남의 생각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것을 이야기하고 끝까지 펼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천재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찾는 사람이다. 그리고 찾아낸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일생동안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 생각을 믿으며,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 인류 모두에게도 진실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배철현 교수, '심연' 中
나는 아를에서 에드가라는 스페인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가벼운 사람이었다. 여기서 가볍다는 건 진중하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어떤 꾸밈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 어떤 -척도 없고, 어떤 치장 없이도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사람, 그리하여 모든 쓸데없는 요소들은 날아가고 알맹이만 남은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 자체에 만족했다. 안 그래 보이는데도 꾸역꾸역 나 괜찮은데? 나 행복한데? 하는 사람들 같지 않은 진짜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우리가 인스타나 여타 sns에서 그런 척하는 그런 얕은 개구라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지난번 산티아고 길에서도 그렇고 이번도 마찬가지지만 소위 '훌륭하다 소문난? 사람'에게서는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실망하기도 했고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기엔 그들이 가진 권위나 지위의 옷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더 삶의 진실 같은 것들을 보기도 하고 별일 아닌 말에 머리를 쿵-하는 나만의 자각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친구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 에너지가 나면 더 풀기로 하고. (서론에 '여름의 아를'을 또 이렇게나 길게 쓸지 몰랐다;;)
에드가가 내게 이런 글을 적어 주었는데, 고흐에게서 느껴졌던 메시지와 비슷하여 함께 싣는다.
=========
걷는 자여(여행자여),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한 모든 것은 남습니다.
걸으니 곧 길이 되었습니다. (길을 만들며 지나갑니다.)
바다 위의 길들...
걷는 자여(여행자여), 길은 당신의 발자국일 뿐
어느 다른 이의 것일 수 없습니다.
안토니오 마차도*
==========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1875-1939)라는 스페인 시인이 쓴 시의 일부분을 그가 기억나는 대로 적었기에 원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저의 프랑스어 능력의 향상을 기원하며 굳이 프랑스어로 번역하였으나, 저의 프랑스어도 완벽하지 않기에 다소 오류가 있을지도 모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시로 맛깔나게 옮기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 의미를 전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