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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Mar 28. 2018

고흐가 건네는 응원 1

파리, 오베르 쉬르 우아즈 그리고 아를로 이어지는 여정, Intro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난 오래전부터 그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런데 다른 화가들처럼 작품 자체만을 보고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아마도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삶이 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느끼도록 이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많은 이들이 고흐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자신의 귀를 자른 일화나 고갱과의 불화, 정신병원 입원, 권총 자살로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다소 극단적이고도 불안정한 성격적 기질 때문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아티스트로 고흐를 더 드라마틱하게 포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 특별함의 전부인 양 강조되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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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보면 늘 생기는 마음속의 질문은 항상 이거였다.

'어떻게 그는 남의 인정 없이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을까.'


오르세 구석에서 그림 그리고 있던 남자



고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엮어 놓은 책을 봤었다. 거기서 본 그는 생각보다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여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난 고흐를 자신의 귀를 자른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화가로만 생각했는데, 편지 속 그는 때론 굉장히 분석적이고 이성적이며, 탐구하길 즐기는 사색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생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형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팔리지도 않는 그림들을 계속 그리면서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는 대목들이었는데 (어쩔 땐 테오에게 자신이 가려는 방향이 맞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정신승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가 '작품이 팔리든 말든 난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을 가련다'라고 하기엔.. 현실적 조건이 열악했다.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정말 팔고 싶어 했다. 그것이 자신을 지원하는 동생에게 보답하는 길인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꼭 많은 이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라거나 부유하게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아를(Arles) 에서, 고흐가 자주 그렸던 아이리스 꽃


그의 편지에는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에 따른 현실적 고민,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럼에도 더 나은 작품을 완성하고 싶은 열정과 깊은 번뇌들이 처절하게 묻어있다. 그러나 이런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그는 결론적으로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그렸던 그 수많은 그림들은 그의 살아생전에 달랑 한 점이 팔렸다고 하니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외롭고, 힘든 길을 끝까지 걸어 낸 것이다. 피카소처럼 사는 동안 화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가진 예술가도 있는데 마지막까지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 그는 끊임없이 자신 스스로 내부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확신을 길어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 반복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본다.


보통 우리는 계속 도전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면 이내 내가 틀렸나 보다 하고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 해도 해도 안 되면 그건 곧 의미 없는 일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그러하기에 어려운 현실에서도 타인에게서 의미를 발견하기보다 자신 안에서 찾은 가능성과 빛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가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무언가에 쓸모가 있으며, 나의 존재의 이유를 느낄 수 있어. 내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어떻게 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까? 무엇을 할 수 있지? 내 안에 무언가가 있는데, 대체 그게 뭘까?'

Vincent van Gogh, A self-portrait in Art and Letters 中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La nuit étoilée, Arles), 오르세 미술관



나는 파리의 곳곳에서(오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심지어 다른 전시에서도 기념품점엔 고흐 엽서를 팔고 있었음) 고흐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었고, 그가 생을 마감했던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그리고 고흐의 대표작이 대거 탄생했던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에서 그를 만났다. 고흐에 대해서 알아보려 작정하고 이곳들을 둘러본 건 아니지만, 고흐와 관련된 장소들에서 난 우연찮게도 따뜻하고 좋은 기억들이 많다. 심지어 그가 생을 마감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그의 남겨진 작품들에서 표현된 것과는 다르게 (파리에서는 구경하지 못했던) 너그러운 햇살이 마구 쏟아졌고, 그의 고뇌와 절망이 무색하리만큼 어느 때보다 내겐 평화로운 장소였다. 또한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아를에서는 론강 주변으로 미스트랄이 미친 듯 불어댔지만(이러다 잘못해서 론강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했음), 바람을 이겨내기에 충분할 만큼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시간들은 고흐만큼이나 내게 꼭 필요한 선물이 된 듯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다음번에 차차 풀어 보도록 할게요)  





나는 이번에 오르세에 갔다가 그의 자화상 엽서를 하나 샀다. 늘 풍경이 담긴 엽서만 사곤 했는데, 이번엔 그의 자화상 엽서가 꼭 사고 싶었다. 그의 자화상을 보고 있자면, 어떤 멋진 말로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충고하지 않아도, 그의 삶 자체가 강렬하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끈기 없는 내게 그의 삶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외부의 권위에 기대고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연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가 말하는 것 같다. 너 자신을 더 믿어 봐. 그리고 걸어 봐. 그게 길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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