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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림 Jan 15. 2024

내 고양이가 나를 안아주는 방식

작은 너의 커다란 존재감

내 고양이가 나를 안아주는 방식

아침에 눈을 뜨니 내 하체를 둘 곳이 없다. 이 넓은 침대가 가로로 반 잘린 느낌이다. 내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고양이 다림이가 몸을 돌돌 말고 자고 있기 때문이다.


왜 넓은 자리를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자는가. 다림이는 내가 옆으로 누워 다리를 굽히고 자는 동안 종아리 뒤쪽의 아늑한 꺽쇠 자리 사이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내가 자세를 바꿔 똑바로 누우려고 하면 뭔가 커다란 추가 내 이불을 짓누르고 있어 도저히 다리 둘 곳이 없어지는 식이다.


그때부터 나는 침대의 이불 끝에 매달려 반만 이불을 덮은 채 선잠을 자거나 한쪽 다리를 빼내어 다림이를 가랑이 사이에 가두고 쩍벌 한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잔다. 내 몸의 5분의 1 밖에 안 되는 작은 고양이가 나의 잠을 지배한다. 그가 어디에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내 침대 넓이는 세로로 접히거나 가로로 접힌다.


하지만 잠에서 깨었을 때 이불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중량이 나를 안심시킨다. 손을 뻗어 만지면 동글 속 같은 그릉그릉 소리가 들려온다. 내 손은 찹쌀떡 같이 몽글몽글한 배를 찾아간다. 그는 내가 자신의 배를 잘 만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앉는다. 뒷다리를 들어 다리 사이에 내 손을 끼우고 자기 배를 만지도록 한다. 따뜻한 체온 때문에 털장갑을 낀 것 같다. 내가 손을 빼려고 해도 다시 다리를 들어 꼭 그 사이로 손이 들어가도록 한다. 나는 그것이 다림이가 나를 안아주는 방식이라 느낀다.


내 5분의 1 크기인 다림이는 작은 뒷다리로 내 온몸을 안아준다. 침대 위의 말랑하고 묵직한 중심추로서 아침마다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가끔 다림이의 작은 크기에 놀란다. 존재감으로 따지면 나와 크기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커야 할 것 같은데 그는 고작 두 팔로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는 아기만한 크기다. 다림이의 나이를 사람으로 따지면 10살, 초등학교 3학년쯤 되는 나이다. 고양이 세계의 나이로 따지면 중년 아저씨 정도 되었을까.


고양의 수명은 참 얄궂다. 그를 진짜 내 가족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는데 이제는 남은 수명이 그보다 짧을 테니까. 미래에 닥칠 그 어느 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저릿하다. 눈앞에 있는 다림이를 만지고 있는데도 벌써부터 그립다.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다림이의 작은 머리에서 나는 달콤한 빵냄새를 한번 더 깊이 들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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