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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고독 사이

by 시우


“외로움(Loneliness)은 혼자 있는 고통, 고독(Solitude)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 독일 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다. 서양에서는 외로움과 고독 의미를 구분하여 사용했다. 서양철학에서 개개인 ‘주체성 자아’는 국가나 타인들이 간섭하는 것을 몹시도 꺼렸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절대적이다’라고 주장했던 말, 동일한 맥락이다. 유럽권 문화는 국가, 공동체, 가족 등 집단적 문화보다는 ‘나’ 개인 권리를 소중히 여겼다. 반면에 유교문화권 우리는 국가, 공동체, 가족 등 ‘집단’ 이익을 우선시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감정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했다.


그래서 서양 사회 논고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외로움은 사회관계에서 혼자 떨어진 외톨이 슬픔이다. 뭔가를 잃어버린 채 채워지지 않는 빈 가슴이며, 상실 감정으로 고통을 동반한다. 불쾌한 감정이다. 반면에 고독은 홀로 뭔가를 하여 자신 마음속을 채운다. 자발적으로 사회와 거리를 뒀으며, 개인 기질 성향에 가깝다. 사람과 어울리는 게 불편하여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 사람 교류보다는 다른 그 무엇과 교류하는 게 자연스럽다. 유쾌한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외로움과 고독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 자아를 연구하여 비범한 논리를 개발했다. 그 자체로 굉장히 유의미하다. 뛰어난 논지는 때론 개개인 삶에 성찰과 깨달음 통해서 위로를 준다. 그렇지만 이 비범한 논리는 인간 뇌 과학 발달로 본질 프레임이 변화하는 중이다.


외로움과 고독에 대하여 탁월한 통찰 만났다. 작가 유시민이다. 미디어 〈지식 인사이드〉 지식인 초대석에서 대담한 내용을 각색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 뇌는 학습기계다. 하드웨어인 뉴런과 소프트웨어인 시냅스 연결망으로 매 순간 방대한 데이터를 빛과 같은 속도로 처리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혀로 느끼고 피부로 접촉하는 데이터양은 엄청나다. 이 많은 데이터를 신속, 정확하게 인지해 최적 대응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처리하고 있다. 인간 뇌의 첫 번째 임무는 생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로 떨어진 외로운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 종은 집단생활을 한다. 개개인이 흩어져 있으면 생존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여러 양상으로 변화를 겪었다. 20~30 만전부터 우리 뇌 생물학적 유전자들이 인간 행동을 지배해 왔다. 문명 발달은 빨랐고 뇌 진화는 더딨다. 괴리가 발생했다. 우리 뇌는 문명 이전 상태로 유지하면서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은 생명 보존에 늘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이 우리 무의식을 지배한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지 않거나 속한 집단에서 쫓겨나면 죽음을 직면할 것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아니면 실상 생명 위험 공포에서 빗겨 서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고립과 따돌림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인간은 원래 혼자이며 불안한 게 지극히 정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구성원들 사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습관이 있다. 그 시선 중 하나가 혼자 외톨이 된 사람을 좋지 않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저렇게 따돌림을 당하면 안 돼’ 하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혼자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인성과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간주한다. 누군가가 고립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걸 자기 자신에게 치환하여 투영한다. ‘내가 저렇게 되면 안 돼’라는 생각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 인간 본능 무의식에 두텁게 깔렸다. 자신 기질에 따라 혼자 있는 게 즐겁고 편안해서 스스로 선택한 것조차 부정한다. 그 사람 선택이 잘못됐다고. 그래서 어느 사회이든 어느 시대 든 간에 외톨이 고립을 좋지 않게 본다.


그다음은 인간 가치관 기준 '관념' 이야기다. 인간은 불안 때문에 저마다 삶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가치 관념 공통 핵심이 행복이다. “나는 행복해야 해, 혼자이면 행복하지 않아’ 하는 가치 관념을 가지고 있다. 개개인은 어쨌든 간에 행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듯 스스로를 탓하고 타인을 원망하기도 한다. ‘행복해야 된다’는 이 강박이나 생각의 관념이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것을 외로움이나 고독에 투영하면 ‘외톨이가 되면 안 돼’라는 생각의 관념이다. 이것이 우리를 옥죈다. 적절히 외로운 시간을 가지면 되레 스스로를 성찰하고 다른 사람하고 어울리는 게 더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외로움이든 고독이든 본인 스스로가 선택하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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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내방 벽지 무늬를 무심결에 바라본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얼룩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샤워를 하다가 눈가 밑에 가늘게 깔린 잔주름, 한 움큼 잡은 머릿결이 왠지 생경하다. 얼굴에 미세한 잡티가 어느덧 선명하게 보인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사이로 문득 그 웃음들이 낯설다. SNS 화려한 타인들 삶 틈새로 새어 나오는 내 일상의 초라함이 싫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만 속으로 조용히 무너진다. 나만의 고독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서서히 경계를 넓히고, 그리하여 마음의 장벽을 더 견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정작 나 자신과 마주 앉아본 적이 드물다. 우리는 타인을 통하여 내몸 온기를 데우는 데 길들여졌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늘 함께 다니는 그림자이다. 외로움은 나를 만나는 가장 솔직한 공간이기도 하다. 혼자일 때 비로소 내 마음의 속삭임이 들린다. 고독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은 생명이 있는 한 불안한 법이다. 외로움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꽤 유능한 외로운 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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