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에 사는 아내의 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 병명은 패혈증이란다. 그러니까 예상치 못한 돌발이었고 나이에 비해 이른 죽음이었다. 아내가 문상을 꼭 가야 한다는 말에 하루 휴가를 내어 5시간 운전하여 장례식장에 갔다. 아내 이모님과 나랑은 가족 공식행사인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 만나서 인사하는 정도였다. 이모님 생의 여정에서 이렇다 할 만한 이야깃거리나 추억도 없다. 그래서 나의 감정은 아쉽게도 무덤덤했다. 장례식장에서 문상객 예의범절에 따라 고인에게 절을 하고, 상주의 손을 꼭 잡아주었으며, 그리고 부의금을 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오후 3시 정도였으니까 접객실은 분주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데 상주가 왔기에 동석했던 친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 걸 들었다. “장지는 정했느냐” “갑작스러운 죽음에 어떻게 하냐” “힘내어라, 너라도 기운을 내야 어머니 잘 보내 드리지” 이러한 통상적인 말들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얼추 나눈 뒤, 분위기상 침묵했던 내가 한마디 말을 건네야 할 차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평상시 이모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나요” “나물 요” 상주의 즉각적인 응답에 고개만 끄덕이고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멋쩍었다. 그러니까 나는 첫 물음 외에 다른 질문을 준비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상주와 대화 장면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어떤 나물을 좋아하셨나요”라는 물음으로 말을 이어가야 했지 않나 싶다.
장례식장에 문상객으로 갈 때마다 딱히 상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질문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세요” 허공에 뿌려지는 듯한 진부한 말이 전부였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나요” 물음은 나름 고인이 평소 애호했던 그 어떤 것들을 끄집어 함께 추억하고자 미리 말을 골랐는데, 어정쩡했다. 실상 이 질문은 김유나 『내일의 엔딩』 소설책에서 배워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 소설 내용을 소개하면, 주인공 자경은 아버지 부친상을 당했다. 그녀는 외동딸이며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얼마 전 그녀의 친구가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연락이 와서 결혼 축의금을 보내었다. 뜻밖에도 그 답례로 그녀의 남편 알료샤와 함께 문상을 온 것이다. 그 외국인 친구 문상 예절이 이랬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셨어요?”
테이블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자경의 머뭇거림을 알료샤는 기다려주었다. 친구도 자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돌아가셨냐는 질문도, 형제가 없어서 쓸쓸하겠다는 텅 빈 위로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었냐니. 자경은 맥주 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골랐다.
“어, 아빠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퇴직하고 시내에 돈가스 가게를 차렸다가 망했어요.”
알료샤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돈가스를 좋아하셨나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자경이 웃자 알료샤도 따라서 멋쩍게 웃었다. 덧니가 드러나자 딱딱해 보이던 무표정이 순식간에 거둬지며 아이 같은 얼굴이 되었다.
“아뇨, 프랜차이즈 창업 박람회에 갔다가 결정했대요. 밑반찬이 없어서 자기가 보기엔 제일 만만했나 봐요. 원래도 조용하고 실없는 사람이라 맨날 혼자 이상한 거 만들고 끄적이고 그랬어요. 어떤 날은 골목에서 뭘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기에 뭘 보고 있나 해서 가보니까, 개가 똥 싸는 걸 보고 있는 거예요.”
“아버님이 약간 나랑 비슷하시네”
친구가 홍어무침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자경은 이제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걸 왜 보고 있냐니까, 똥이 세로라서 신기하다고. 혼자 웃더니 다시 가던 길을 가는 거야. 사람이 그렇게 실없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표정을 보아하니 알료샤는 자경의 말을 절반 정도만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의미를 되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가 영정이 있는 빈소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표정이 밝아지니까 아버지를 닮았어요”
친구와 알료샤는 한참을 떠들면서 자경을 위로하다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를 떴다. 그들이 떠나자 빈소가 텅 빈 듯이 고요해졌지만 빈소의 풍경도, 냄새도, 소리도, 낮보다는 부쩍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김유나 「내일의 엔딩」 p64~66)
굳이 서양 사회 장례문화를 따르자는 게 아니다. 장례식장은 고인에 대한 추모의 장이다. 상주의 위로는 연극이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며, 1막, 2막, 3 막은 언제나 고인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삶의 긴 여정에서 생겨난 아름답고 구수한 서사를 묻는 소담 자리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인의 아름다운 서사를 들려주세요”라고 운을 떼는 게, 질문 위에 핀 위로이자 고인의 영면에 보네는 마지막 인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