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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y 14. 2024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아버지가 주인공인 소설은 오랜만이다. 김정현  「아버지」 소설 이후에 처음인가.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소설 제목에 아버지란 낱말이 떡 하게 박힌 게 어찌 그리 반가운지.


 정지아 작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11년째 구례에 살고 있다. 정지아 작가 작품은 처음이다. 1990년 25살에 처음 출판한 「빨치산의 딸」 작품은 저자가 부모님의 삶을 사실적 바탕으로 쓴 실록이라고 한다. 소설이 아니란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이적 표현물로 판금 조치 됐고, 실천문학사 이석표 대표는 구속되어 실행을 받았고, 정지아 작가는 도피 생활했다. 2005년에 복간되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판금 서적, 금지곡, 상영 금지, 이따위 낱말을 접할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그와 동시에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조심스럽게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다. 늘 그러하듯 마음이 덜컹 내려앉아 날숨을 길게 내뱉는다. 미안하다 ‘숱한 그들에게’. 


 정지아 작가는 미디어 알릴레오 북스 인터뷰에서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면서 유쾌하게 말했다. 관객들은 깔깔거리고 손뼉을 연신 쳐댄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활동을 했던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구상했다. ‘최선을 다해 가벼워져야 한다.’ ‘ 경쾌하고 웃겨야 한다’를 되뇌며 이 소설을 썼다. MZ 세대가 이 소설을 많이 읽는다. MZ 세대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포가 없다. 편견으로부터 꽤 자유로워졌다. 저자는 엄중하고 진중한 현대사의 상흔을 발랄하고 우스꽝스럽게 풀어낸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실없이 실실 웃고, 뜬금없이 눈동자의 흰자위가 금세 붉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성장기에, 나는 먼 데서 기적이 울릴 때마다 그 기차가 가닿을 서울을 꿈꾸었다.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p267).


  화자인 ‘나’ 아리의 어린 시절.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법을 모른다. 사회주의 부모가 나를 그렇게 키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내 부모가 어린 나를 일으켜주지 않았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흘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조금 울다가 별수 없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렇게 자란 나는 누구 앞에서도 힘들다고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울어본 적도 없다. 이게 빨치산 딸의 본질이다. 아리는 아버지가 죽어서도 혁명가인 양 영정사진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딴청 피우고 있다고 시큰둥하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 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농사일 두 시간 노동도 참지 못했다(p68). 아리는 이런 아버지를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혁명은 무슨 혁명, 개뿔. 아리와 아버지의 관계는 좀처럼 좁혀지지는 않고 평행선을 달린다. 


 장례식장에서 어느 노인이 훼방을 놓는다. “아이고 시원타! 시원코 잘 죽었다!” 황 사장에게 조금씩 끌려가는 노인이 뒤돌아 침을 퉤 뱉었다. 빨갱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저 노인 하나뿐이겠는가. 그게 아버지가 살아온 세상이다. 경우 바르고 똑똑한 아버지가 21세기인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침을 뱉어도 되는 빨갱이일 뿐이다(p133).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 년뿐이었다. 고작 4년이 18년이란 감옥생활을 했고, 아버지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한번 사회주의였던 사람을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p252). 


 아리는 백운산에 유골을 뿌리고자 했으나 법에 막혔다. 아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버지 유골을 뿌렸다. 중앙교, 반내골, 아버지와 내가 서 있던 강변, 노인정, 오거리 정중앙, 슈퍼 맞은편 그렇게 아버지 자주 다녔던 길에 뿌렸다. 이제 한 줌도 남지 않는 뼛가루,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다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p265). 


  박해진 아나운서 추천사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얽히고설킨 사연들에 빠져들다 보면 그들이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그저 저마다의 삶을 꾸려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채색의 크고 작은 파문을 서로에게 일으키며 한 시대를 건너온 이들에게서, 이념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나약하고 또 강인한 우리 인생이 보인다. 멋진 소개다. 추천사가 걸작이다. 


 정지아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참모습을 솔직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털털한 성격을 지녔다. 진지하지 않은 것을 못 참고, 가벼운 것을 못 참았다. 산에서 내려온 이후 사회에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다. 감옥살이 후 50살에 농부가 되었다. 농사를 참 못 지었다. 그럴 수밖에, 농사가 처음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 걸지 않았다. 인간은 목숨이 있는 한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념에 가두어진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해방일지’라고 말한다.  


 이 소설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웃기면서 가슴 먹먹한 소설. 별점 4.8 소설을 만났다. 0.2점은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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