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이 남지 않는 남자가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어떤 신발을 신어도
그의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어느날 눈길을 걷다가
그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서커스 공연을 하며 먹고 살았다
불에 달군 모래를 맨발로 걷기도 했고
돼지를 등에 매고 진흙탕을 뛰기도 했다
여전히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모든 게 그렇듯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시들해졌고
어느 눈 쌓인 겨울
그는 마지막 공연을 준비했다
얼마 없는 관객들 앞에서
남자는 눈을 가리고
한발 한발 뒷걸음으로 걸었다
그가 낭떠러지 끝에 다달았을 때
작지만 뾰족한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았을 때
그는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기억된 적도 없는데
잊히고 싶지 않았던 남자의 이야기
그루누이의 향기처럼
하루키의 헛간처럼
발자국이 남지 않는 남자 이야기, 조융·문종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