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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구 Jul 25. 2016

새 구두를 사야해

좋은 신발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기를.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하이힐을 신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당당하게 파워 워킹으로 걷는 여자는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 다른 누구보다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박지성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인 평발과 평균보다 큰 키를 가진 나에게 하이힐은 도저히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던 스무살때 잔뜩 샀던 힐들은 몇번 신고 나가지도 않았거늘 발에 잔뜩 잡힌 물집과 굳은살들을 보며 신발장 구석에 쳐박아놨고 결국 곰팡이가 잔뜩 핀 채로 쓰레기통에 직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n년을 주로 운동화, 플랫슈즈등 신발만 신던 내가 취업을 하고 나니 매일 힐을 신고 다닌다.

신발을 사러 가도 일단 '통근용' 이라는 전제로 가다 보니, 플랫슈즈나 운동화 쪽에는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 

물론 맥시멈 7cm이긴 하지만, 이것도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가...


사진만 봐도 발가락이 몹시 아파오는군(..)

한정판 운동화를 위해 길 위에서 밤샘을 하고,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얼마가 되든 바로바로 사는 사람들도

섹스앤더시티에서 강도에게 마놀라 블라닉 구두만은 가져가지 말라고 하던 캐리도 

나에게는 다 이해가 안되는 부류일정도로 나는 브랜드나 품질에 별 집착이 없었다.

그냥 나에게 신발이란 저렴한걸 여러개 사서 한철 빡세게 신고 버리면 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사람들이 좋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똑같은 디자인이라도 몇배의 가격을 굳이 주고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얼마전, 가장 기본 디자인인 힐을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사서 신고 출근한지 단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발에는 곧 재앙이 닥칠것이라는 걸 (..)  예상대로 그 날 저녁 나는 새 신발이고 뭐고 힘껏 구겨 신은채 집에 겨우 기어 들어왔다. 생각 같아선 그냥 신발을 길에다 버려두고 맨발로 오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인터넷을 다 뒤져서 백화점의 여름 바겐 세일 기간을 다 찾아놨다.


한국에선 내 사이즈가 없던 적이 없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골격도 작고 발도 으찌나 작은지 (..) 내 발사이즈의 신발 자체를 제작하지 않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라서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더라. 그 가운데서 추리고 추려서 겨우내가 원하는 신발을 발견하고 신어본 순간...


유명 운동화 브랜드랑 별 가격대가 차이 나지도 않는 브랜드인데, 거기에 40% 할인이 들어가고도 나는 손을 파르르 떨면서 계산할 정도로 내가 사본 신발중엔 가장 비싼 구두였다. (밥 먹는돈을 아끼면 구두로 산을 쌓았겠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 는 파리라는 낯선 곳에서, 부러진 구두굽이 매개체가 되어 3일이라는 짧은 시간 가운데 운명을 강하게 느꼈지만 처음부터 끝이 보일 수 밖에 없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록 낭만따윈 1도 없는 현실주의자인 나에게 아니 요즘같이 무서운 세상에 상대에 대해 뭘 믿고 저렇게 연락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나 (..) 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막연한 동화는 아니었다.


그들은 마법에서 깨어난 것 마냥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남자 주인공이 보낸 국제택배에는 여자 주인공 발을 본이라도 떠서 만든 듯 양 딱 맞는 예쁜 구두가 있었고 마지막 엔딩 샷에서 새 구두를 신은 채 벤치에 앉아 웃는 여자 주인공을 보니 그 신발이 앞으로 여자 주인공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곳으로 데려가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페x스보단 우체국 ems가 더 저렴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 


여튼 내가 산 새 구두도, 나를 앞으로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라며 업무상 중요한 미팅이나 외근이 있을때 꼭 새 구두를 신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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