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FT IS THE NEW PUNK
지난 30년 동안 가장 중요한 일렉트로닉 뮤지션을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다프트 펑크(Daft Punk)를 꼽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로봇 가면을 쓰고 디제잉을 하던 미스터리한 두 아티스트의 이미지는 강렬하게 남아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진에 찍히지 않는 선택은, 하이퍼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병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90년대 초 전 세계 음악이 영미권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던 시기, 이 두 명의 젊은 프랑스 프로듀서는 흔히 ‘댄스 음악’으로 불리던 하우스와 테크노를 자신들만의 감각으로 재구성하며 훗날 ‘프렌치 터치’라 불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같은 황금기를 보냈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소비된다는 프렌치 힙합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수트를 입고 헬멧을 쓴 두 사람이 만들어낸 신시사이저의 소리와 글래머러스한 디스코 리듬은 사춘기 시절부터 이미 내게 익숙했다. 2014년, 네 번째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로 그래미 5관왕을 차지하며 글로벌 팝 스타가 된 두 로봇이 말없이 서로를 껴안던 그 순간보다 훨씬 전의 이야기다.
프렌치 터치의 기원을 두고는 196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뮤지크 콩크레트(musique concrète)가 자주 언급된다. 사물의 소리와 일상의 소음, 어쿠스틱 악기와 초기 신시사이저를 모아 하나의 ‘사운드 콜라주’로 조직한 음악이다.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구체적인(concrète) 소리를 재료로 삼는 이 음악은, 단순한 ‘실험 음악’이라기보다 무엇이 음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정의 자체를 확장한 하나의 사건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소리는 단순한 음을 넘어 질감과 이미지로 다뤄지기 시작했고, 바로 그 감각 위에 프렌치 일렉트로닉 음악의 특이성이 놓였다. 이후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재즈 샘플링으로 유명한 루도빅 드 나바르가 ‘St Germain’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사이키델리아의 대명사인 Air가 『Moon Safari』앨범 커버에 ‘French Band’라는 표현을 덧붙이면서, 이른바 ‘프렌치 터치’라는 슬로건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갔다. 그리고 그 정점에 다프트 펑크가 있었다. 펑크적인 태도와 경계 없는 취향, 중독적인 멜로디로 이미지와 음악을 거의 완벽하게 결합해 낸 존재였다. 프렌치 터치는 이제 글로벌한 무브먼트이자 성공을 보증하는 하나의 상표가 되었다.
프렌치 록과 샹송은 오랫동안 국제적인 중심에 선 적이 거의 없다. 특히 내게 샹송은 음악이라기보다 차라리 시에 가깝다. 때로는 멜로디 전개마저 내려놓고 목소리와 말의 리듬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내레이션에 머문다. 저예산 독립 영화에 가까운 감각, 다시 말해 즉각적인 쾌감을 약속하지 않는 그 방식 때문에 끝내 블록버스터는 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프렌치 터치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 안에 ‘프랑스적인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프렌치 터치가 다른 것과 구별되는 방식은 그 시작 지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 녹음 스튜디오가 아닌 홈 스튜디오에서, 베이스 드럼 페달 대신 드럼 머신을 사용하고 실제 현악기 대신 레코드에서 잘라낸 샘플 조각들을 손으로 대충 엮은 듯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어딘가 아마추어적인 거칠고 미니멀한 스타일, 이를테면 빈티지를 무심하지만 조화롭게 입어내는 파리지앵의 태도 같은 것이 드러난다. 영국의 한 평론가는 이를 “다프트 펑키한 쓰레기(daft punky trash)”라고 불렀다. 하지만 다프트는 결국 새로운 저항(punk)의 상징이 되었다. 프렌치 터치는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해방시키는, 사라졌던 70년대 디스코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그 미래지향적인 음악 속에는 언제나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가 가득했다.
*프랑스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