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제주도 여행기
언니를 알게 된 계기는 한 통의 전화였다. '평대모살코지'라는 게스트하우스는 숙소 정보를 아무리 찾아봐도 체크인 시간과 아웃 시간이 없어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예약한 사람인데,라고 말하니 전화기 너머로 "아~dkfl?"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나는 네네,라고 대답하며 웃어버렸다. 나를 'dkfl'이라고 부른 사람은 처음이었다. 'dkfl'이라면 내가 어릴 때부터 쓰던 아이디인데 영어 자판으로 '아리'를 쓰면 적히는 글자다. 그 글자가 나를 지칭하니 새삼 생소하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아이처럼 맑아서였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날 우리는 다소 이른 시간에 체크인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언니는 당연히 된다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덕분에 애월에서 평대까지 가는 일은 해외여행 수준으로 머나먼 여정이었지만 (실제 택시로 1시간, 버스로 1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숙소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 버틸만했다.
비좁은 버스와 더위에 지친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숙소 마루에 누워 뒹굴거렸다. 한동안 누워 있다 숙소를 정리하는 언니를 도와 함께 수건을 갰다. 수건을 개면서 오늘은 어디를 갈 예정이냐고 묻기에 서점을 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언니는 선뜻 그 곳까지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언니의 차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코란도였는데 진짜 코뿔소 같은 느낌이었다. 한여름의 제주도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차는 그 자체로 새로운 장소였다. 결국에 도달하게 될 곳은 우리가 말한 '서점'이었지만 도달점을 향해 달리는 길은 새로운 오지였다. 한여름 대낮의 바람도 신기했다. 뙤약볕 아래에 있을 때는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었던 바람들이 차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 결코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덥지 않고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 버틸만했다. 언니는 바람을 가르고 도착한 세화의 어느 거리에 우리를 내려주고 코뿔소와 함께 사라졌다. 바람은 다시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서울을 돌아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주도의 차는 성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습기에 취약한 부품들이 쉽게 녹슬어버리고 거센 태풍이라도 오면 차가 쉽게 잠겨버리고 마는 제주도의 특성상 어딘가 한 곳은 망가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코란도가 어딘가 고장이 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에어컨을 빼고 대신 창문을 크게 만든 차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많은 바람을 끌어왔고 도로 위에선 거세고 힘찼다. 에어컨쯤은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코란도가 달린 거리를 걸으며 모자를 사고 커피를 마시고 캠핑도 했다. 어둑해진 후에야 숙소에 도착하니 모살코지의 카페에서 (카페는 언니가 직접 만든 게스트하우스의 휴게실이다) 언니와 영아 언니, 근처 식당의 사장님이 한라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23살의 유진이가 집으로 왔고 우리는 그 날 밤 유진이가 갑자기 제주도에 오게 된 이유, 알바하는 곳의 어려움을 듣고 서로 연애 조언을 주고받으며 밤을 보내고 잠이 들었다.
그 날 우리는 모두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그 전까지는 제주도의 바람처럼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몰랐던 그 많은 얼굴들이 체크인 시간도, 체크아웃 시간도 알 수 없는 평대 모살 코지에 모였던 것이다. 그 날은 서로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그런 것들을 물어볼 의무가 없었다. 몰라도 그만, 알아도 그만. 그런 것들을 안다고 더 멀어지거나 깊어지지 않았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