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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아리 Dec 18. 2020

말에는 무한한 오해가 있다

첫 번째, 좋은 오해

나는 사람들의 낯선 언어를 듣는 일이 좋아 여행 동안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다. 스페인에 갔을 때는 카탈루냐어, 스페인어, 영어, 불어 등 다양한 말들을 듣는게 참 좋았다. 그러다가 도무지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해 돌아보는 일도 많아졌다. 그 중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던 스페인어인 'gracias(감사합니다)'가 들리면 특히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스페인어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로 인해 고맙다는 뜻이 의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히 그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표정을 살피게 되었다. 살펴본 모두 표정은 딱히 밝지 않았다. 그래서 'gracias'가 나오게 된 대화의 맥락이 궁금해져 더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말로 '아이고, 참 고맙다~'같은 비꼬는 투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어떤 식당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다른 뜻을 가진 비슷한 말이 있던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누군가 했던 말을 전하고 있는걸까 하는 등 온갖 추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gracias'의 진짜 뜻은 그 때도 지금도 알 수 없다.


이런 포기에 가까운 결말에 이를 때마다 'gracias'는 자주 들려왔다. 아마 내가 유일하게 아는 말이라 더욱 잘 들렸을 것이다. 계속해서 'gracias'를 들으면서 나는 혼자 스페인 사람들은 참 고마운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착한 사람들이라고. 다소 굳은 표정과 중저음 목소리로 한 말이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말이라고.


두 번째, 나쁜 이해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내게 자주 '너를 위해'라는 말을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너를 위해'라는 말에 무수히 실망했다. 7살인 나를 위해 꼭 우포늪을 가자던 아빠는 '정말 미안하다. 다음에 꼭 가자.'는 말로 나의 울음을 막았고 아직까지도 그 곳을 가지 않았다. 엄마는 무료 급식이 창피해 학교를 가고싶지 않다고 우는 내게 다 나를 위해 신청한거라며 화를 냈었다. 그러나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애쓰는 당신들을 위했던 일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정말 나를 위할 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꼭 3가지 반찬만 보내달라고 말한 내게 10가지가 넘는 반찬과 과일 몇 가지가 더 채워진 택배 박스를 보낸 엄마의 진심이나  반찬이 몇 달동안 썩어가고 있는 냉장고를 모르쇠로 일관하던 내가 없는 사이 냉장고 청소를 해 준 친구들의 진심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꼭 나를 위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내가 화를 내면 '너를 위해'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너를 위해'라는 말이 '나를 위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럴싸한 말로 자신을 위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진심

마지막은 지난 여름 동묘 시장에서 5천원짜리 레코드판을 산 날의 이야기다. 계산을 하기 전에 3개를 만원에 사보자고 친구와 작전을 짰다. 친구가 지갑을 열며 ‘만원에 주시면 안되나요?’라고 했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아주머니 기에 눌려 바로 만 오천원을 꺼냈다.

동묘를 가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 곳의 물건에 정해진 가격은 없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눈빛으로 때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곳이다. 그 덕에 우리는 레코드 판을 제외한 물건을 처음 들었던 가격보다 2~3천원 가량 싸게 살 수 있었고, 하마터면 갤럭시 노트 중고를 10만원이나 주고 살 뻔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물처럼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중고’라는 물건에는 의심이라는게 둘러싼다. 주인은 만원밖에 없다는 학생의 주머니 사정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손님은 물건 태생의 가격을 의심한다. 이보다는 비싸게, 저보다는 싸게. 내가 만 원에 사고 싶어도 만 오천원에 사고 싶은 사람에게 떠밀리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 만 원에 사고 싶어했던 물건을 만 오천원에 사기도 한다. 말만 잘하면 장사 하는 분들의 마음을 쉽게 설득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쉽게 설득 당하기도 했다. 그런 판 속에서 에누리가 허용되지 않던 레코드판 가게에서의 아주머니 모습이 생경하다. 너무나 마음이 확고하니 되려 겁을 먹기도 했다. 잇속 좋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 했다.


어찌되었든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라며 고개를 내젓던 아주머니에게 레코드판을 사와서 보니 예쁘긴 했다. 막상 걸어놓고 보니, 5천원보다 큰 가치가 느껴지는 것. 당시 아주머니의 눈빛에 이 정도 가치까지 보장되어 있진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냥 5천원에 팔고 싶었던 것 뿐이었을테다. 레코드판의 진짜 단가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아주머니가 5천원에 팔고 싶었던 마음 하나는 확실하다. 덕분에 그럼에도 사고 싶었던 내 마음까지 알게 되었고 서로 솔직했던 덕분인지 새로운 가치까지 찾았다. 아마 의심이 판치는 동묘 시장에서 기적같은 거래가 아니었나 싶다. 하루만 빨리 갔더라면 4천원에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눈빛에서 그 순간 타협이 불가능한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오해할텐데.

말에는 무한한 오해가 있다. 진심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진심들이 더 많다. 진심을 표현한다 치고 뱉는 말들은 섣부를 때가 더 많다. 또 어떤 말들은 허울 좋은 형태로 진심을 더 '모르게'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진심'을 숨기려 말을 먼저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별 생각없이 말했다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나는 말을 해놓고 나서 내가 한 말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내 진심은 아까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내 진심을 알기도 전에 나가버린 말들에 후회한 일이 많다. 글을 쓰고도 후회하며 무한히 고친다. 다 진짜라고 생각해서 표현했는데 아니라고 생각될 때가 더 많았다.


그 후회가 반복되니 나도 나와 '진심'이 조금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 진심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처럼 계속 넘쳐 흐르고 또 새로운게 고이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이 흘러와 고이기도 하고 후회가 밀려와 고이기도 한다. 어떻게 내 진심을 알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도 나의 진심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진심이 나와 교류되는 일은 동묘 시장의 거래처럼 기적같은 일이라 욕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너를 위한다는 말로 나를 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모르겠으면 그냥 모르는대로, 원하는게 있으면 원하는대로 그냥 그렇게 표현하다보면 기적같은 교류도 일어나지 않을까. 기적이 아니더라도 실망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솔직하게 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 어제의 진심이 또 새로운 마음에 밀려 넘쳐 흐르고 다른 진심이 고여 지난 진심에 후회하더라도 그 순간에 진심이었다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스페인 사람들이 아직도 좋고 동묘 시장의 아주머니가 아직도 멋있는데. 아무리 솔직해도 어차피 오해는 필연인데. 나이가 들수록 좋은 오해와 진심을 보기가 어렵다. 허울 벗겨진 잇속만 자꾸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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