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화상회의 화면에 위치한 내 입이 낯설게 느껴졌다. 오른쪽 입꼬리가 더 올라가고 웃을 때마다 보이는 덧니가 갈수록 더 못나 보였다. 점점 입 모양을 작게 하고 웃지 않게 됐다. 마스크를 쓰고 만남을 이어간 지 1년이니 어쩌면 낯섦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 3개월간 입 모양을 봤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제 내가 그리는 인물화도 입을 그릴 때마다 망작이 되고 만다. 남의 입을 보지 않으니 모든 입이 낯설어져 버린 건지. 가릴 수 있다면 더 가리고만 싶어 지는 마음이 그렇게 의아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지 못하니 알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만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외면이 있고, 그 외면에 따라 보지 못하는 내면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니 어쩌겠는가. 계속 모를 수밖에. 숨기려고 하지 않은 것들까지 숨겨지는 게 이제 익숙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작년 여름 평대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쩌겠는가,라고 알 때까지 기다리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조그만 선물을 사서 비행기를 탔다. 4장의 엽서를 꺼내 먼저 이렇게 썼다.
"이상적인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해요. 그건 참 행복한 일이에요."
제주도를 간 이유였다. 꼭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나의 입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내게 언제 오냐는 연락을 자주 해주었다. 내 앞에 있지 않은 누군가가 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기다리는 일은 신기한 일이다. 이번 달에 가겠다, 다음 달에 가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몇 번이고 반복되었는데 그런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내가 오길 바라는 마음에 체념이 없었다. 나는 그 이유가 나를 '많이' 애정 하진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애정 했다면 서운해하고 실망할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미안했다. 어쨌든 애정이 많지 않을 뿐이지 나를 애정하고 있음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도착해 나를 위해 마중을 나온 재클린과 한아 언니를 만났다. 밤바다를 가로질러 한아 언니의 게스트하우스를 가는데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이 곳에 왔다고 생각됐다. 짐을 풀고 한아 언니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으며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 온갖 이야기를 다 늘어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가의 쓰레기도 주웠다. 지난 여행 때 매일같이 갔던 카페의 사장님께 도넛과 선물도 받았다. 받은 것들을 곱씹을수록 고마워서 왔는데 더 고마워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또 떠나야 하는 나는 어떻게 보답을 할지 지레 고민도 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현재를 떠나 미래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쯤 동네 사람들이 모인 카페 문을 열었다.
"너가 아리구나."
카페 문을 열자마자 한아 언니의 친구들이 나를 알아봤다. 아리와 먹으려 와인 6병을 샀으니 약속이 끝나고 빨리오라는 얘기도 했다. 그들이 절대 나만을 위해 모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그 말에 곧 알게 됐다. 평대 사람들에게 체념이 없었던 이유는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만났던 4명의 사람들이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 그 두 가지만으로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내가 존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가장 먼저 반겨주었던 남자 사장님의 입이 기억에 남는다. 어깨 선을 넘은 머리카락을 두건으로 대충 묶고 턱과 입술 위에 까만 수염이 있었다. 내가 농담을 던질 때마다 까만 수염 사이로 드러나는 가지런한 이가 보기 좋았다. 그 입을 보면서 이 사람이 앞으로 나를 오래 기억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없어도 내 이야기를 할 거라는 확신. 가끔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행복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왜 행복한가,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날 본 많은 사람들의 입과 말 덕분에 이유를 알았다. 내가 없어도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이었음을.
여행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이런 글을 읽게 되었다.
"얘들아 우리, 얼굴 가리고도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닿지 않고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제 다들 만남의 발명가가 되어야 했다."- 얼굴을 가린 발명가, 이슬아 -
이 글을 읽으면서 '만남의 발명가가 되어야 했다'가 아니라 '만남의 발명가를 만나야 했다'라고 고치고 싶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없음'도 애정 할 수 있는 평대리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그들을 떠올리면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외로운 편견도 조금씩 흐려진다. 닿지 않으면 닿을 수 없다는 물리적 한계도 멀어진다. 사람은 '기억'과 '말'로도 존재하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주도를 가기 전에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제주도에 가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실체는 없고 소문은 무성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말에 사람들은 웃었다. 그러나 일종의 농담 같은 이 말은 내 꿈을 이뤄줄 유일한 사람들에게 한 나의 작은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