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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아리 Dec 30. 2020

우주 미아 OGO-1호의 삶

여행처럼 사는 방법


반세기를 우주 미아로 떠돌다 지구로 돌아온 위성이 남태평양 대기로 진입 했다는 뉴스를 봤다. 돌아온 위성의 이름은 OGO-1.  5년간 지구의 자기권 연구를 위해 이틀에  번씩 관측 자료를 수집하다 71 완전히 우주 미아가 되었다. 사람들은 농담 삼아 그렇게 떠돌다 이름처럼 결국 오고야 말았다고 말했다. 결국 돌아오고야 말아버린  위성은 진입과 동시에 산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돌아왔었다'라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이 위성을 알게 된 날은 올여름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한 켠에 캐리어가 놓인 방에 누워 그 위성은 왜 떠났을까 생각했다. 위성에게 의지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 자꾸만 스스로 떠난 것 같았다. 우리가 보지 못 한 무언가에 마음이 이끌려서, 혹은 자신의 삶이 너무 지루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주의 모든 별들과 위성은 서로가 서로를 밀고 당기는 힘으로 자리를 지탱하고 있다 배웠는데 이 위성이 인력과 척력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지 않았을까. 그 날 다시 떠나고 싶은 내 바람을 담아 추측했다. OGO-1호가 떠난 이유를 알면 내게도 떠날 수 있는 이유가 생길 것 같았다.


나는 자주 이런 상상을 한다. 여행지에서 다시 술을 마시는 상상,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낭만적인 장면과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일상 이야기를 하는 상상. '서울에서는 이런 일을 하구요, 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들어 조금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라고. 이런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사람이 멀리 떨어지는 것 같다. 일상의 배경이 저만치 멀어지는 느낌. 고민에 허덕이다가도 멀리 떠난 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꽤나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현실과 아무 상관없는 그곳에서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나의 도시 생활 단상은 고뇌하는 청춘의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먼발치 떨어져서 바라본 일상은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집이나 돈, 학력 같은 것들의 실체가 없었고 가난이나 비루한 직위 같은 건 더더욱 흐릿했다.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일은 나의 배경을 지우는 마법 같았다. 그리고 추상적인 것들이 모두 그렇듯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마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 지워지지 않은 역할과 자리는 서울살이의 인력과 척력 같은 힘이었다. 평소 내게 안정감과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어떤 일을 했고 보람을 얻었습니다." 자주 이렇게 나를 설명했다. 이건 꽤나 만족스러운 인력이었다. 그리고 충동을 막는 척력도 있다. 갑자기 내일 발리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유예하여 계획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소하게는 내일 채워야 할 나의 자리를 위해 심한 음주도 절제하게 한다.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내가 궤도를 이탈하려 할 때 제자리로 튕겨가게끔 하는, 없어서는 안 될 힘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 힘에 완전히 의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행지에서는 마치 모든 힘에 독립된 듯한 '착각'을 했다. 내게 꼭 필요한 이 힘들이 성가시게 느껴졌다. 궤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우주를 비행한 OGO-1호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곧잘 궤도로 돌아온다. 아니 착각에서 깨어난다. '결국 이름처럼 오고야 말았다'는 말처럼. OGO-1호처럼 '착각'을 했다고, 결국 네 자리는 여기라고.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 거듭 되는 재수 생활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소속이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 했고 졸업도 하지 않았다. 자랑스럽게 학생증을 내밀지 못하고 학교를 말하지 못했다. 그럼 다른 설명들을 하면 되었는데 또래 친구들과 다른 내 삶을 설명할 방법을 몰랐다. 우물쭈물 망설이거나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스스로가 너무 하찮게 느껴질 때면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는 말로 나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흥미롭다는 듯 내게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물었고 나만의 고고한 꿈을 설명하며 너네는 절대 알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곤 했다. 그러면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네가 없는 걸 내가 가지고 있다고.


그런 내가 찌질하다고 말 한 사람은 없었다. 나만 내가 조금 찌질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해서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을 대단하다고 말하는 게 좀 우스웠다. 남이 가진 것도 가진 채로 내 꿈을 이야기했다면 좀 더 멋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어떤 곳이든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일이라면 했다. 그리고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있다.


OGO-1호는 왜 떠났을까. 어떻게 떠날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답변을 받지 못할 것을 알고 시작한 물음이었다. 결국 내가 답을 찾아야 하는 물음. 그리고 이 물음을 거듭하면서 내가 했던 오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로 인력과 척력이 외부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나를 인정하는 남의 시선과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만든다고. 나를 고용한 회사나 나를 뽑은 학교 같은 것들.  그러나 인력과 척력은 결국 내게서 만들어진 힘이었다.


거미줄처럼 쳐진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내 몸을 걸지 않아도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떠있는 배경일뿐이었다. OGO-1호도 결코 떠나거나 돌아온 적 없다. 거미줄 같은 장치들을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삶을 살았던 위성일뿐이다. 하늘에 떠 있는 위성과 별들이 어쩌지 못해 그 자리에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름답지 않나.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 찾은 것들. 인력과 척력 모두 우주의 힘이 아니라 별의 힘이라고. 이제 상상 없이도, 굳이 떠나지 않아도 여행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을 조금 알 것 같다. 조금 찌질하고 조금 위태로워도 내 직업, 집, 통장 잔고 같은 것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바라는 나로 살아가고 있다면 여행지에서 느꼈던 마법 같은 착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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