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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아리 Feb 09. 2021

고맙지 않은 사랑


이번 여름, 친구와 한라산에 올랐다. 가방에 초콜릿 10가지, 김밥 3줄, 물 4병씩을 넣어 출발했다. 꽤 많은 양의 간식거리를 챙겼는데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년 전 겨울에도 함께 한라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산행의 무서움을 모르고 물 한 병 챙기지 않은 채 입산을 한 것이다. 배고픔과 탈수에 정신이 혼미할 때쯤 빨간색 가디건을 입은 여자와 무채색 옷을 입은 남자와 마주쳤다. 친구와 지친 몸으로 평상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데 그들이 곁에 앉아 귤을 먹었다. 친구는 저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고 귤 몇 개를 얻어오자고 했다. 내가 창피한 마음이 들어 주저하고 있으니 친구가 먼저 운을 뗐다. "저기, 저희가 카카오페이로 입금해드릴 테니 귤 네 개만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곁에서 멋쩍게 웃었다. 그들은 돈은 괜찮다며 귤과 초콜릿과 물을 나누어 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며 올라가는 길에 커플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었다. 정상에서 김밥 한 줄 없이 쓸쓸히 앉아 있을 때도 그들을 만났다. 김밥도 너무 많이 가져와서 다 먹을 수 없으니 함께 먹자며 나누어 주었다. 가져온 한라산 소주도 나눠먹으며 통성명과 자기소개를 했다. 나이는 우리보다 4살 정도 어린 대학생이었고 4년 된 커플이라 했다. 우리는 이 좋은 데를 여자끼리만 왔다며 하소연하며 부러운 마음을 표현했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각자 인사를 나누고 하산했다. 그 날 친구와 나는 다음에 한라산을 오면 꼭 간식을 잔뜩 챙겨 오자고 결심했다. 우리 같은 혹시 모를 조난자를 위해 꼭 나누어주자고, 그렇게 보답하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무거운 가방을 이고 36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다시 한라산을 올랐다. 이번에는 배고픔이 아니라 더위에 정신이 혼미했다. 한 개의 계단이 두 개로 겹쳐 보이고 금방이라도 눈을 감아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다 나는 결국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비교적 씩씩했던 친구는 계속해서 오르겠다고 말했다.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누며 서로의 길을 응원하고 헤어졌다. 나는 일찍이 숙소에 돌아가 잠을 청했고 해가 질 때쯤 친구의 전화에 깨어났다. 한라산의 숨은 고수를 만나 차를 타고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분 정말 멋진 분이라고 친구의 들뜬 목소리가 재미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창밖을 내다보니 '한라산 고수님'으로 보이는 사람과 친구가 편의점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60대 정도의 중년 남자였다. 깡마른 체형에 까무잡잡한 얼굴이 순박하게 느껴졌다. 나는 둘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혼자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가 다 지고 나서 친구를 만나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친구가 갑자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얘기를 했다. 한라산 고수님께서 계속 저녁을 사주고 싶다 해 한사코 거절하다 숙소에서 쉬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나에게 왔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마주칠까 걱정이 된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위안하며 함께 밥을 먹었다. 먹던 중 다시 한라산 고수님께 연락이 왔다. 약을 사서 숙소 앞에 왔으니 잠깐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친구는 빨리 뛰어 숙소 앞으로 갔다. 나도 인사를 나누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음료라도 한 잔 하자는 말에 탁자에 앉아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산에 관한 많은 생각과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친구와 나는 연신 감탄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고 좋은 인연인 것 같다고 여러 형태의 말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니 고수님은 또 명언을 남겨주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또 다른 만남 때 갚으면 된다." 우리는 멋진 말이라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감사와 감탄보다는 우리를 만나 들뜬 그의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상하게 그의 말에는 "너도 그렇지?"라거나 "좋지?"라는 물음이 동반하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는 "맞아요!"라고 응해야 했다. 그래서 더 격하게 박수를 쳤던 것 같다.


고수님은 그다음 날도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우리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괜찮다는 거절이 몇 번 반복되었음에도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연락이 무시로 이어졌다. 나는 점점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서, 라는 마음이 아님을 느꼈다. 본인에게 우리와의 추억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루에 스무 통 가까이 이어지는 전화에 친구는 점점 지쳤다. 이제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 5개월 만에 다시 제주도를 찾았다. 반듯한 수평선은 울퉁불퉁하게 변해 있었고 파도가 높아 흰 거품이 일어나 있었다. 푸른 잡초가 밝은 갈색으로 변했고 오리들이 무리 지어 바다에 모여 있었다. 이따금 눈보라가 휘몰아치기도 했다. 바닷가로 갈수록 바람이 거세지니 눈보라는 얼굴을 따갑게 때릴 정도였다. 가만히 바다를 보는 일도 힘이 들어 골목을 거닐었다. 지난여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나무 색깔 정도라고 생각하던 중 새끼 강아지 네 마리를 만났다. 여름에는 보지 못 했던 강아지들이었다. 대략 2개월 정도로 보였는데 마치 원래 나를 알던 것처럼 반갑게 뛰어왔다. 먼발치에서 그런 새끼들을 보고 있는 어미 개도 보였다. 나는 처음 보는 나도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손길을 주지 못 했다. 어미 개에게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미개는 나를 노려보는 듯하다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눈꼬리가 아래로 쳐진 것이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경계심이 없는 듯한 어미 개도 내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내 앞에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래로 처진 눈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매달리는 새끼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나와 눈을 마주치는 어미개는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담이 되던 그들을 떠올릴 때면 대문이 활짝 열린 집에서 주인에게 혼나는 일꾼을 보는 것 같다. 도와달라는 듯 눈빛을 받을 때 나는 유독 담장 뒤로 숨고 싶어 졌다. 내게는 그들을 구할 힘도, 이유도 없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에 다시는 그 길을 가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를 용서해야 할 주인은 따로 있는데 내게 호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이 보내는 시선이 그저 부담스러웠다.


너무 사랑받지 못하거나 사람이 없거나 사랑을 할 줄 모르거나. 외로움이 생기는 이유는 많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해서일 것이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눈물을 쏟던 내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너의 가장 약점은 외로움이야." 나는 그 날 이후 나를 사랑하는 사람 중 가장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럴수록 누군가의 사랑이 가치 없게 느껴졌다. 사랑이 느껴질 때마다 견고한 벽을 쌓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싼 담장을 기웃거리다 얼마 버티지 못했다.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 틈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많은 틈으로 내 안의 것들을 본건 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지탱하기 위해 온갖 것들이 쌓인 내부가 어쩌면 쓰레기장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쌓은 벽은 그리 아름답거나 단단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는 일이 이제 조금 두렵게 느껴진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나의 모습과 나를 사랑해주기만 하면 아무라도 괜찮다는 한라산 고수님과 어미 개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랑에는 조금의 연민이 필요한 걸까. 멋진 말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그들에게 내가 조금의 연민을 가졌다면 부담스러운 기억으로 남진 않았을까. 내가 나를 지탱하기 위해 쌓아 놓은 많은 것들을 보고 누군가 위태롭게 느꼈다면 나는 그와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남에게 사랑받는 일만큼 남을 사랑하는 일도 이제 어렵다. 나를 사랑하려는 사람도, 내게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도 그저 부담이 된다. 내가 보는 사랑이 모두 고맙지 않아져 버렸다. 이미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반대로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겸손을 잊은 건 아닐까. 누군가 나를 사랑해도 응당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 말이다. 나도, 한라산에서 만난 그분도 박수, 눈빛, 애정, 칭찬 모두 "맞지?" "그렇지?"라는 물음의 응답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받은 사랑들이 내 마음에 도착할 때면 '응당'이라는 말과 가장 가까워져 버린다. 사랑이 하나도 고맙지 않아져 버린 이 마음이 이제 제일 부담스럽다.


"그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상상하고, 또 그가 자신이 그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만한 타당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는다면, 그는 자부심을 느끼며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상상하되, 그가 그 사랑에 어떤 원인도 제공한 바가 없다고 믿는 경우, 그는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그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다." (Etbics, Penq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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