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병의 술을 마시기까지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술을 잘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일을 좋아한다. 쉽게 말해 친근하고 편하고 결이 맞는 사람이라는 기억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이용한다. 아직까지 술보다 좋은 수단을 찾지 못한 탓에 여태 마신 술이.. 소주 기준 한 달에 12병, 1년에 144병, 10년 동안 1,440병 정도가 되겠다.
필름도 종종 끊기는 편이다. 기억에서 사라진 날의 이야기는 주로 다음날 상대방에게 듣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의 모습과 당시의 생각을 추측한다. 대부분 필름이 끊기는 일을 무서워하는데 좋은 점도 있다. 나는 모르는 내가 주인공이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흥미진진함이 있다. 물론 부끄러운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함께 술을 마신 덕분에 정을 나누게 된 좋은 친구들이 더 많다. 술 마신 다음날 꾀죄죄한 모습으로 출근한 서로의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던 직장 동료도 많고 친해진 친구의 친구들도 많다. 늘 아주 웃기거나 아주 깊거나 둘 중 한 가지 장르의 대화만 나눌 수 있었던 덕분이다.
문득 내게 사람을 이어준 소중한 술자리 이야기가 알코올처럼 증발해버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하나하나 써보려고 한다. 먹었던 맛있는 안주 사진과 에피소드를 차근차근 기록할 예정이다. 글을 쓸 때마다 하는 바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어한다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날 함께 했던 주인공들이 이 글을 보고 웃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