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떼 Sep 07. 2023

개복치라고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살아남아라! 개복치!




 한창 SNS에 '개복치의 돌연사'라는 밈이 유행했었다. 실제로는 개복치가 그렇게 잘 죽는 어종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모바일 게임 '살아남아라! 개복치' 때문인지 이미 한국에서의 개복치는 '별의별 이유로 돌연사하는 유리멘탈의 물고기'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아왔다. 우리가 익히 들은 개복치의 돌연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몇 개를 꼽자면,




아침 햇살이 강렬해서 사망

바닷속 공기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사망

바닷속 염분이 피부에 스며들어 쇼크로 사망

바다거북과 부딪힐 것을 예감하고 스트레스로 사망

근처에 있던 동료가 사망한 것에 쇼크 받아 사망

동료가 사망한 장면을 목격한 스트레스로 사망

피부의 기생충을 떨구려고 점프했다가 수면에 부딪혀 사망

민첩한 선회를 할 수가 없어 바위에 부딪혀 사망

바다 깊숙이 너무 내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

수면 근처에서 일광욕 중에 갈매기에 쪼여서 사망



등이 있다. 하, 이 얼마나 하찮은 이유의 죽음인가. 이유를 써 내려가는 나조차도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 하찮은 이유의 죽음에 웃음이 나왔지만 동시에 뜨끔하면서 조금은 슬퍼졌다. 내가 이 아이를 비웃기에는 나 역시 유리멘탈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렇다, 나는 유리멘탈의 개복치다.




 나 스스로 개복치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굉장히 걸렸다. 우리 엄마가 말하는 고집쟁이에,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김녕 김 씨 집안의 사람으로서 나는 겉으로는 힘들지 않은 척, 약하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았다. 속으로는 불안해 미칠 거 같고,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걱정이 연기처럼 가득했고, 사람들의 사사로운 말에 의미 부여하여 나를 향한 욕이 아닐까 하며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음에도, 겉으로는 전혀 그러지 않은 척하며 살아왔다. 그만큼 나 스스로는 내가 유리멘탈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렇잖아. 좁디좁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 속에 살아남으려면 나는 강해 보여야 하니깐, 이러한 경쟁 사회에서 유리멘탈의 사람은 낙오자와 같으니까, 이러한 단점은 숨기는 게 좋고 보여지지 않는 게 좋으니까.




그래, 나는 나에게 그렇게 '척' 하며 살아왔던 거야.



 겉으로 보이는 순하고 약해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나는 힘든 것을 토로하며 살아오지 않았던 거 같다. 친구 문제, 연인 문제, 가족 문제, 진로 문제 등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이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힘든 환경이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으로 토로하며 자신의 감정을 분출시켜 스트레스를 푸는 주위 친구들과 달리 나는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이지만, 힘든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누구에게 지는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아무도 없는 관중 속에서 나 홀로 파이터링에 서 있음에도 나는 그것이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괜찮은 척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게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었으니깐.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실제의 '나'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의 '나'에게는 큰 괴리감이 있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 사사로운 일에 감정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실제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남들처럼 무던하게 넘어가질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이 작은 일에 힘들어하는 걸까, 왜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지레 겁을 먹는 걸까. 왜 나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상처를 주는 걸까. 어느 순간 나는,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몰아붙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그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졌다. 나에게 연민이 생겼다. 나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었다. 내가 개복치라고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나 개복치라고. 그래서 뭐 보태준 거 있어? 나의 못난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모습마저도 나는 사랑할 거라는 의미였다. 나는 나를 사랑해야만 했다. 아주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했고,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여야만 했다. 하찮은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개복치처럼 나는 유리멘탈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어르고 달래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니, 너도 살아남아라, 개복치. 그리고 나 같은 유리멘탈의 다른 개복치들에게도 외치고 싶다. 그러니, 당신도 살아남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