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41개월에 접어들었다. 한국 나이로는 5세다. 5세라니. 한 살을 12개월로 치고 단순 계산하면 갑자기 60개월짜리 아이가 된 것 같다. 실제로는 마흔 번의 달을 살았을 뿐인데.
누군가 “아이가 몇 살이에요?” 물으면 “41개월이요. 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고요”라고 답한다. 개월 수만 말하자니 이 사회는 ‘몇 살’이 무척 중요한 분위기인 것 같고, 한국 나이만 말하자니 아이가 너무 빨리 늙어가는 기분이 들어서다.
나는 아이의 이 ‘실제 나이’와 ‘한국 나이’ 사이에서 자주 헤맨다. 때론 정말 60개월 넘게 산 아이처럼 보이고, 때론 영락없는 41개월이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성장 속도와 기분 따라 날씨 따라 예측 불가능한 아이의 언행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부쩍 ‘엉아’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자다 깼는데 옆에 엄마가 없으면 대성통곡하던 아이가 얼마 전 새벽에는 엄마가 없는데도 울지 않았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눈물을 참던 아이는 와이프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 안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모으는 LP에 대해서도 전에는 표지에 그려진 긴 머리의 백인 락커나 흑인 재즈 뮤지션이 무섭다며 꺼내지도 못하게 하더니 요즘은 먼저 들고 와 “이거 뭐야? 들어볼까?” 한다. 맵다고 차갑다고 못 먹던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즐기기 시작하고,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본다.
작년까지는 아빠나 엄마가 안아주지 않으면 수영장 물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풀장 밖에서 점프해 물속으로 뛰어든다. 결혼식장에서는 단체 사진 촬영에 협조한다. 사진작가가 “자, 여기 보시고, 스마일~!” 하면 그대로 응한다. 어르고 달래 진행하던 일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변해간다.
아이는 이렇게 부모와 멀어질 준비를 한다. 쉴새 없이 뭔가를 들고 나타나 “아빠 나랑 이거 할래?” 질문하는 지금의 아이도 어느 순간 사라져 기억에만 존재할 것이다. 이 아쉬움을 드러내면 나의 엄마는 손주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 키우는 게 다 그렇지” 한다. 늙은 부모에겐 다 그렇고 그런 일들이 내 육아에선 처음이니 모든 게 호들갑이 된다. 나도 엄마처럼 덤덤해질 걸 생각하면 그게 또 서운하다.
돌아서면 애틋해질 순간을 당시에는 즐기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다.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실은 귀찮을 때가 더 많다는 사실 앞에서는 나 자신이 더욱 원망스럽다. “기다려봐. 아빠 지금 이거 하고 있잖아.” 적어도 오늘 퇴근 후에는 이런 멘트를 뱉지 않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