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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Jun 27. 2020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지난 주말 아침 집 앞에 구급차가 왔다. "어머, 누가 실려가나 봐" 와이프가 먼저 발견하고 구급차가 보이는 주방창 앞으로 갔다. 나와 아이는 거실에서 부엌으로 뛰어갔다. 보채는 아이를 들어 창밖이 잘 보이는 그릇 수납장 위에 올렸다. 1층 집의 시선이 구급차 꼭대기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이렌에 가 닿았다. 음소거 상태로 묵묵히 돌기만 하는 초록 불빛이 현장의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아이는 마냥 신나 있었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그 상황이 어떤 거대한 모험의 시작 정도로 인식되는 듯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인생 5년 차의 순진무구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뗬다. 장난감 구급차를 손에 쥐고 돌아온 아이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지만, 어른 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창밖을 응시했다.


잠시 후 할머니 한 분이 들 것에 실려 나왔다. 가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나무늘보보다 느린 속도로 집 주변을 돌던 할머니. 구급대원들의 동작은 프로페셔널했지만, 다급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모든 게 끝나버린 안타까운 상황 같지도 않았다. 간병인(어쩌면 아들)으로 보이는 남성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들 것을 따라 구급차에 올랐다. 환자를 태우고 떠나는 순간에도 구급차 사이렌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행히 위독하신 건 아닌가 보네." 와이프가 침묵을 깼다. 와이프도 목격한 장면을 토대로 추측한 것에 불과했지만, 나는 곧바로 맞장구쳤다. "응.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구급차가 저렇게 여유롭게 움직일 리 없잖아." 와이프와 나 사이를 관통하는 어떤 간절한 감정이 있음을 느꼈다. 그건 윗집 할머니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고, 언젠가 맞이할 우리 노년과 그 마무리에 대한 너무 이른 연민이기도 했다.


"위독이 뭐야?" 창틀을 도로 삼아 장난감 구급차를 밀던 아이가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와이프가 설명했으나 아이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아이도 '연로한 윗집 할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했지만, 그 자체로 흘려보냈다. 할머니는 늙으셨고, 자주 아프시고, 그래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병원에 가셨다. 끝. 생의 유한함에 두려움 느낄 일 없는 아이는 모든 장면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미련을 두지 않았다. 온갖 감정을 이입해 개인사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부모와 달랐다.


삶의 마지막 장에 도달한 어느 노인을 삶이 한창인 30대 부부와 삶을 막 시작한 5세 아들이 지켜본 그 10분여의 시간이 문득 생각난 건 일주일이 지난 어제 할아버지 한 분이 홀로 산책하는 장면을 봐서다. 몇 미터 앞서 걷다가 한 번씩 뒤돌아 서서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다가오는 아내를 기다려주던 할아버지. 이웃의 눈에 늘 기다린 쪽은 할아버지였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실까. 어디에서 기다리고 계실까.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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