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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Apr 12. 2020

쓰다 보니 반성문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나는 나날이 꽤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의 관심사가 이 새로운 감염증에 쏠려 있다 보니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공포 분위기에는 점점 익숙해져 어느 날은 마스크 없이 외출했다가 ‘아차’ 하곤 한다.


이것이 내가 한동안 브런치에 뭔가를 끄적이지 못한 이유다. 하루 종일 어수선하고 붕 떠있는 마음이 어느샌가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했다. 일필휘지의 능력자였다면 뭐라도 기록했을 텐데, 그렇지 않다 보니 노트북을 열었다가도 금세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나중에라도 써야지 하며 적어둔 글감 메모만 한 달 넘게 수북이 쌓였다. 너무 쌓이니 그게 또 부담이 돼 글쓰기를 더 멀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악재가 너무 많이 터지면 자포자기 무념무상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에 사진 한 장 짤막한 멘트 하나면 해결되는 인스타그램은 신나게 했다. 밥 짓기 귀찮아서 한동안 인스턴트식품 위주로 식사한 느낌이랄까. 아, 써놓고 보니 코로나19는 핑계 같고 그냥 인스타그램 하느라 브런치를 안 한 것 같기도. 근데 내가 지금 이걸 왜 계속 해명하고 있지. 독자도 없는 주제에...


아무튼 오늘은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작심하고 브런치를 열었다. 쌓아둔 메모 소진 한 번 시원하게 하려고. 그런데 열심히 남겼던 메모들을 다시 읽어보니 온통 시답잖은 내용뿐이다. 분명 적을 때는 되게 섹시한 주제 같았는데, 당시 격했던 상황과 감정이 증발해버린 이제 와 그때로 돌아가 보려니 공감할 만한 아이템이 없다. 역시 묵히면 똥 된다.


안심하긴 이르지만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물러날 조짐을 서서히 보인다. 나도 다시 마음 재정비하고, 앞으로는 짧은 글이든 비루한 글이든 떠오르면 바로바로 써야겠다. 두서없이 적다 보니 반성문이 됐다. 그래, 매우 반성한다! 그런데 인별그램이 재밌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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