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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Feb 02. 2020

혐오의 만연

1박 2일 동안 업무차 전남 고창과 경남 창원을 돌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녹초 상태였지만 일정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마음은 여유로웠다. 플랫폼 한편에 서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거의 모든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좁은 공간에 빼곡히 앉아야 하는 잠시 후 상황을 대비해서다. 물론 나도 얼굴의 절반을 마스크로 가렸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대부분의 눈빛이 본능적으로 사방을 경계했다.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보다가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눈을 치켜세웠다. 마스크 미착용자에게는 불안과 원망의 시선 공격이 가해졌다. 누군가의 잔기침은 주변 긴장감을 배로 키웠다. 모두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불신했다.


나 역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내가 타야 하는 6번 칸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중국어로 전화 통화 중인 한 중년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주변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그도 그걸 아는 듯했지만 큰 목소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중국인일까, 중국말 잘하는 한국인일까. 눈치가 없는 걸까, 편견에 대항하려는 시도일까.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스쳤다.


남성은 6번 칸 자리에서 기차에 오른 뒤 인접한 5번 칸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를 예의 주시하던 모든 6번 칸 탑승객이 남성의 등을 쳐다보며 안도했다. 엄습한 공포가 남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6번 칸 분위기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무미건조해졌다. 나도 안심했다. 그곳에서 그 남자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였다.


한 지인은 출장 전날 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카툰 하나를 보냈다. 에덴동산에 ‘중국인’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만화였는데, 두 사람은 사과 대신 사과를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을 잡아 구워 먹었다. 중국인의 식문화를 비꼬려고 만든 것이다. 채팅방의 모든 이가 깔깔 웃으며 “중국 사람 너무 싫다”라고 했다.


모두 메말라간다. 작가 공원국 씨는 “우리 인류를 끝장낼 바이러스는 정녕 혐오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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