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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Jan 28. 2020

머문다는 것, 떠난다는 것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그를 좋아했기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코비와 함께 세상을 떠난 딸 지아나의 죽음은 더 가슴 아프다. 아버지는 NBA 역사에 큰 족적이라도 남겼다지만 그녀는 이제 막 꿈을 그리던 13세 소녀가 아닌가. 평소 가볍게 던지는 '가는데 순서 없다'는 말이 종일 살벌하게 나를 때렸다.


며칠 전에는 강원도의 한 펜션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로 자매 4명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는 세계적으로 3000여 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80명을 돌파했다. 터키에서는 지진으로 30여 명이 죽었다. 겨울철 도로 결빙에 따른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최근 5년간 200명에 이른다는 뉴스도 보인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집안에서도 도로 위에서도, 생과 사는 언제나 등을 맞대고 있다.


이쯤 되면 별 탈 없이 지낸 나의 오늘 하루가 대견해진다. 큰 아픔 없이 넘긴 2019년 한 해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36년째 생존 중인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며 제발 성당에 나가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덜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겸손과 안도의 감정은 '그래서 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로 흘러간다. 다른 이들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고 싶은 거 미루지 말고 즐기며 살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설 연휴 마지막 날 만난 나와 친구들도 코비 부녀의 비보로 시작해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누군가의 생의 마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어떤 자극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묘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중 하나도 타인의 죽음이었다. '아, 지바겐 타는 성공한 훈남 배우도 운전 도중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구나.' 2017년 10월 배우 김주혁 씨의 사망 보도를 보며 든 생각이다. 그냥 집을 사버릴지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좀 더 두고 볼지 오락가락하던 당시 내 고민도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물 탐색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그 이후부터다.


나는 앞으로도 죽음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가까이서 또 멀리서 누군가는 계속 스러져갈 것이다. 인재(人災)에서든 자연재해에서든 죽음의 등장은 불가피하고, 내가 당사자가 돼 사라지는 순간까지 이를 목격하는 일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떠난 이가 남긴 허망과 상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또 무엇을 깨닫고 어떤 일의 용기를 얻게 될까. 코비와의 예기치 못한 이별이 온갖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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