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가 태권도 끝나고 집에 뛰어들어오며 벗어둔 점퍼를 주워 옷장으로 가져갔다. 옷장에 걸려있던 어린이용 옷걸이 하나를 집어 점퍼 양쪽 겨드랑이에 넣었다. 옷을 감당하기에는 어린이용 옷걸이가 너무 작아 보였다. 우려대로 손을 떼자마자 점퍼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드러누운 점퍼 모양새가 어른용 옷걸이를 다시 가져오라고 시위하는 듯했다.
2. 옷걸이 교체가 시급할 정도로 부쩍 큰 아이가 요즘 농구에 푹 빠졌다. KGC인삼공사 농구단 골수팬인 와이프와 연애하던 시절 KGC 홈구장인 안양체육관에 참 많이도 갔다. 그때 둘이 가던 농구장을 이젠 셋이서 간다. 아이 성별(아들)을 확인한 순간부터 꿈꿔온 장면이다. 벅차다.
3. 아이가 자신의 농구 세계를 구축해 가는 모습을 보면 흥미롭다. 아이에게 최고의 선수는 경기장 가서 직접 본 KGC 외국인 선수 스펠맨이다. 더 큰 무대가 있단 사실을 알려주려고 NBA 올스타전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애런 고든과 잭 라빈의 2016년 덩크 콘테스트 결승전을 유튜브로 보여줬지만, 아이는 스펠맨의 덩크가 더 멋지다고 말한다.
4. 아이 눈에도 NBA 덩크가 더 화려하게 보이긴 할 것이다. 다만 아이는 부모가 선물한 세상에서 농구란 스포츠를 처음 접하고, 그걸 본인 세계에 녹이는 과정에서 모든 기준을 일단 부모 취향에 맞춰둔 것으로 짐작된다. 앞으로 커가면서는 케케묵은 부모의 세상 위에 세련된 제 취향을 입히겠지.
5. 아이는 아직 부모 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데, 부모 혼자 멀어져 갈 아이를 떠올리며 청승 떠는 건 세상 모든 아빠엄마의 만국공통적 습성일 것이다. 오늘 KGC 이겼냐는 질문에 요즘 누가 시시하게 국농 보냐며 폰만 만지는 아이를 그려본다.
6. 나는 아이의 어른용 옷걸이로 남을 수 있을까. 육아의 궁극적 목적이 아이의 자립이라면 이런 기대감 자체가 그릇된 것이 아닐까. 쓸모를 상실한 어린이용 옷걸이를 분리수거함으로 가져가며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