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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Oct 05. 2024

요트 뭍에 오르다

집행관놈 집행관님

수영만요트경기장에 도착했다. 

수영만요트경기장은 광안리 민락수변로와 해운대 마린시티 해변 사이에 있고, 주변은 50층에서 80층 정도되는 건물이 병풍 같은 마천루(摩天樓)다.


채권자와 집행사건 대리인인 안 00 법무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관광객 등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요트까지는 인도 집행을 안 하려고 했는데...", "채무자가 변제 약속을 수시로 어기니 경매로 요트를 팔아서라도 변제를 받으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며 채권자가 미안해한다.


채권자는 채권 1억 5,000만 원을 변제받기 위해 법원의 동산인도명령 결정을 받아 채무자가 부산시요트경기해상에 계류해둔 12톤 요트를 경매로 팔기 위해 집행관에게 집행권원(구, 채무명의)인 동산인도결정문을 근거로 강제집행을 위임한 사건이었다.


채무자는 요트를 이용해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을 찾는 관광객 등을 상대로 1인당 3만 원 정도를 받거나 단체 손님을 받고 40~50분 여분 동안 광안대교(다이아몬드 브리지라고도 부른다) 주변을 돌아주는 코스로 영업을 해오고 있었다.


요트 등 선박과 자동차는 부동산에 준해 집행관이 인도를 받으면 법원에서 경매를 통해 매도를 하고, 매수대금 중 경매비용 등을 제한 나머지 금원을 채권자에게 배당하는 방식으로 채권자에 변제를 하는 방식


영업을 해오던 요트였고, 당일 초등학생 20여 명의 단체 손님도 예약되어 있었기에 채무자의 저항이 심할 것 같아 긴장되었다. 12톤의 요트는 생각보다 컸다. 채무자가 고용하여 실제 영업을 하는 선장과 보조자는 젊었다.


집행관이 인도집행을 위해 승선하려 하자, "뭐 하는데 승선하려고 합니까, 누구신데요...", "집행관이라도 신발 벗고 슬리퍼를 신고 올라오이소"라며 쏘아붙이 듯 말이 날카로웠다.


집행관은 집행전 채권자에게 '화가 난 채무자와의 시비를 줄여야 하니 집행관의 통제에 잘 따르도록 당부'했고, 파트너인 담당직원과도 '원칙대로 신속하고 친절하게 대응하도록' 하였다.  


"부산법원 ○○지원 소속 집행관입니다", 요트를 점유하고 있던 선장에게 법원의 동산인도 결정문을 보여주며 집행 실시에 대해 설명했고, 요트 소유자인 채무자에게 전화하게 하여 통화한바 채무자는 '왜 사전에 통보도 없이 왔냐'라고 따졌고, '영업 중인 요트고 단체예약까지 받아두어 당장 출항을 해야 되는데 요트를 뺏앗아가려면 됩니까'라며 화를 냈다.

반면에 현장에 있던 선장은 소유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를 인도함에 책임감과 죄책감을 줄여주다 보니 협조적이었다.

  강제집행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 민사집행법 등은 채무자의 재산 은닉이나 몰래 처분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동산 압류 및 인도 집행, 가처분 집행 등은 사전 통보나 계고 없이 집행이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집행관에게 사전에 허락 등 없이 압류되거나 가처분된 동산 등을 은닉하거나 효용을 침해하는 경우 형법상 '공무상 표시무효'죄명으로 처벌도 가능하다.
 또한, 거주지 등에 채무자 등이 없을 경우에도 민사집행법 제5조에 의해 집행관은 증인 2명을 참석시켜 적법성을 담보한 후, 열쇠기사로 하여금 강제로 문을 열게 하여 강제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며칠 내 '끄라톤'이란 태풍이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었고, 요트를 해상계류장에 두면 채무자가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은닉해 집행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으며, 또한 태풍이 와서 파손이 되면 인도받은 집행관이나 채권자가 손해배상 등 소송을 당할 우려도 있기에 신속히 안전한 육상계류장인 뭍으로 옮겨야 했다.


집행관은 미리 요트를 육상계류장으로 인도하기 위해 크레인 기사와 선박 이소를 시키는 기술자를 섭외해 두었으나, 막상 해상계류장에 있던 12톤짜리 거대한 요트와 그 요트에 하늘 같이 치솟은 돛대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실제 영업 사장인 채무자 아들은 "이 요트 구입가만 5억 원이 넘고, 제조한 프랑스에서 수영강 계류장까지 옮겨 오고 세금 내는데만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어갔는데, 배 옮길 때 조금이라도 파손되면 안 됩니다. 깃대가 높은 요트를 옮길 수 있는 기술자는 잘 없는데, 알아서 단다이 하이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가만히 안둘낍니다."라며 겁을 주었다.


요트를 해상에서 끌어올릴 100톤짜리 크레인이 도착했고, 선박 옮기는 전문가라는 60대 후반의 기술관리자도 도착했다.


"저 모르시겠습니까?. 기억날낀데..."

선박 옮기는 기술자가 집행관과 담당 직원에게 다가와 아는체를 한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얼마전에 해운대구 좌동 신시가지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와 빨간딱지(동산 압류 표목)를 붙이고 간 후, 동산 경매를 하러 왔다가, 짐을 거실 한켠에 옮긴 후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것을 집행관이 채권자의 양해를 얻어줘 인테리어 공사에 방해 없이 경매를 진행해 주었고, 배우자 우선 매수권을 안내해주어 배우자가 반값으로 압류물품을 경락을 받아 종결한 사건 채무자 김 00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꺼."

그때 법을 잘몰라 당황했고,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압류 표목 물건을 한 켠에 치워 경매하는데 당황스러웠을낀데 잘 해결되게 마무리 해주어 고마웠다고 한다.


"아, 그분 이군요. 기억납니다.", "선생님이 요트 옮겨주는 기술자인가요."

"예..."

"집행관님 걱정하지 마이소, 내가 문제없이 육상으로 요트 잘 옮겨 줄 테니 편안하게 보고만 계시소."라며 턱밑에 길게 자란 허연 수염이 들썩이도록 웃었다.


'이런 인연도 있나 ㅎㅎ.' 집행관은 고마워하는 사건당사자였던 기술자를 보니 헛웃음만 났다.


기술자 김 00는 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요트 등을 계류해주거나 잘 옮기는 요트 소유자나 선장들 사이에서 소문난 기술자였다.

손해배상 운운하며 불평불만이던 채무자의 아들마저 위 기술자인 김 00가 요트를 옮긴다면 인정하겠다고 할 정도로 실력가였다.


집행관은 담당 직원에게 "봐라, 우리가 비록 빨간딱지를 붙이고, 건물 명도를 해주는 집행업무를 담당하지만 채무자나 채권자와 원수같이 싸우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친절하게 일처리를 해주고 잘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라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안도하였다.


"야..., 중심 잘 잡아라 배가 살짝 기운다 아이가, 배가 조금이라도 틀어지거나 긁히고 하면 안되니 내 지시를 잘 따라라."

기술자 김 00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요트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고, 선이 닿을 부분은 푹신한 물건으로 덧대고 배와 돛대의 중심을 잡아 사방으로 끈을 묶고 100톤의 크레인으로 해상에서 뭍으로 끌어올리는 전문가다운 모습이 멋이 있었고, 육상계류에 성공하기까지 약 2시간 이상 정성을 기울여 주었다.


"김 00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안전하게 요트를 뭍에 올렸습니다."

"뭘요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밥 먹고 하는 짓이 이 짓인데요 ㅎㅎㅎ."     


집행관은 담당 직원에게 "김 과장, 저분 연락처를 받아둬라. 언제 또 선박 집행업무가 배당될 수 있지 않겠나,  저런 기술자를 알고 있는 인연도 소중하다. 선박 압류에 조언도 받을 수 있고 도움도 요청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하자, 쏜쌀같이 달려가 휴대폰의 성명과 연락처를 휴대폰에 담아왔다.


채권자와 그 대리인은 집행관의 성의있는 인도 집행에 감사를 표했고, 채무자는 요트가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육상계류장에 계류시킨 것에 감사해함은 물론, 채권자와 계속 협의하여 요트가 경매에 넘어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까지 하였다.


오후의 햇살은 도로에 고기를 두워 익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사무실로 돌아오는 집행관의 마음은 솔바람에 날리는 새털 같았다.


집행관은 채권자나 채무자의 입장을 신중하게 생각하여 강제집행을 실시하되, 무엇보다 양자가 감정에 치우쳐 서로 몸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합의하도록 돕는 것이, 아무리 잘된 판결과 강제집행보다 선한 무기라는 것, 또한 집행현장에서 만나는 채권자나 채무자에게 생채기 주지 말고 언젠가 우연히라도 만날 소중한 인연임을 명심하게 하는 하루였다.


1g(그램) 정도 될까, 판사의 집행권원(판결문) 그 한 장에 하늘로 치솟은 깃대를 단 12톤짜리 요트가 뭍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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