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증시뿐 아니라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트럼프의 폭주가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의 폭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그가 폭주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이해는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미국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내 아들은 살해당했다.
2019년 취임한 민주당의 개빈 뉴섬 주지사는 2026년까지 모든 캘리포니아 학교에서 성 중립 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 ‘SB760’과 성소수자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 전담 조직을 구성하는 법안 ‘SB857’에 서명했다. 그리고 그는 2024년 7월 학교 교직원이 학생의 허락 없이 부모를 포함해 다른 사람에게 학생의 성 정체성을 공개할 수 없게 금지하는 '트랜스젠더 학생 보호 법안(AB1955)'에도 서명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엑스(X)와 스페이스X의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론은 “학생이 스스로 선택한 성 정체성을 교사가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캘리포니아 주 법을 “더는 참을 수 없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밝혔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언론 인터뷰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자신과 절연한 그의 아들은 살해당했다고 분노하면서 Woke 운동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비난하였다.
2020년 바이든을 지지한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PC(Political Correctness) & Woke
'Woke'는 도시에 사는 흑인들이 1960년대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여 '깨어있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Woke 운동은 약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에 언제나 사회 문제로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였다. 그리고 그것에 SNS는 기름을 붓는 존재가 되었다.
미국은 청교도인이 세운 국가이다. 그렇기에 매주 교회를 가고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을 듣고 자란다. 그리고 한평생 매일 밤 기도하며 입버릇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간다. J.F. 케네디 대통령을 반대하던 당시의 미국인들은 그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성경과 하나님은 종교이면서 삶인 것이다.
2000년 초반 미국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60대 할아버지가 있었다. Tom이라는 이름의 백인이었던 그는 빨간색 포드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매주 교회에 나가 봉사 활동을 하던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이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에게 성경 책도 주며, 추수감사절에는 자신의 집에도 초대해 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Tom은 정치인과 정부는 믿을 수 없기에 '큰 정부'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동성 결혼과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입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수많은 미국의 Tom들은 어느 날 자신들이 매일같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신념과 종교적 믿음을 말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탄식했을 것이다. 부모가 미성년 자식에게 전통적인 이성관과 성 윤리에 대해 말하는 것도 힘들거나 무서워진 세상은 그들이 오랫동안 알던 청교도 국가 미국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의 분노와 절망은 Tom과 같은 보편적인 미국인들이 가진 감정이었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이다.
Rust Belt
미국 중산층이 몰락한 대표적인 지역은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불리는 곳으로 중공업 중심 공업지대이다. 러스트 벨트는 철강, 자동차, 기계 제조업 등 중공업으로 번성하였으나, 산업이 쇠퇴하면서 경기 침체 등 인구 감소를 겪는 주들을 '녹(Rust)'슬기 시작한 모습에 비유한 표현이다.
그리고 러스트벨트는 통상적으로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일리노이 등을 일컫는데, J.D. 밴스 부통령이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이유 중 하나도 그가 러스트 벨트인 오하이오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들은 선거에서 한쪽 정당만 지지하지 않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s)'로 분류되기에, 언제나 미국 대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시대정신
최고 권력자를 뽑는 선거에서 메시지는 반드시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시대정신은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과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현재의 미국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면 시대정신은 빈 껍데기로 전락한다.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 곤경에 빠진 중산층과 빈곤의 함정에 빠진 하층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펜타닐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와 중독자는 해마다 급증했고, 10대 사망률 1위가 펜타닐 중독일 정도로 사회 곳곳은 병들어 갔다. 뿐만 아니라, 성전환 풍조와 포르노물이 만연하면서 청소년들은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지면서 전통적 미국인들은 정신적 공백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중국의 경제적 침공과 위상에 패권국의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로널드 레이건
레이건은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히면서 현대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상징이다. 레이건의 시대와 현재 미국은 여러모로 유사하다.
레이건이 취임하기 전 미국은 베트남 전에 대한 반전시위와 리버럴 혁명의 광풍은 전통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며 살아가던 미국인들의 자긍심, 애국심, 그리고 청교도적 가치관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특히 1975년 4월 30일, 미국 전역에 중계됐던 베트남 “사이공 함락”의 충격적 장면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당시 카터 정부는 빈곤 퇴치와 사회 안전망 구축에 노력했지만 정부 부분만 커졌을 뿐 사회, 경제적으로 나아지지 못한 채 오히려 저소득층의 정부 의존도만 키워냈다.
미국의 보수층들은 경제 위기와 전통적 가치의 몰락이 가정과 교육, 그리고 미국 사회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를 거친 (보수) 미국인들은 10여 년 넘게 강화된 미국 사회의 PC와 워크(woke) 운동이 과거 미국을 병들게 만들었다고 믿었던 히피들의 반사회 운동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캠페인(Campaign)
캠페인(campaign)이라는 단어는 평원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캄푸스(campus)에서 유래되었다. 과거 로마군은 적과 싸울 때 항상 매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평원(campus)에 텐트를 치고 적을 맞이하여 작전을 전개하였다. 캠페인이라는 단어가 전쟁에서 유래된 것처럼 선거는 전쟁과 유사하다.
선거는 구도 싸움이다. 선거에서 구도는 상대와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지역 구도'를 만들 것인지, '세대 간 구도'를 만들 것인지, 혹은 '양자 구도'를 만들 것인지 등 선거에서는 다양한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후보자의 메시지, 슬로건, 선거 캠프의 전략 등은 이 구도에 따라 달라진다.
선거에서 한 표 차이 승리라도 하기 위해서는 우리 편을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선거는 나의 세력은 키우고, 적의 세력은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선명성이다.
미국인 vs. 비미국인
트럼프는 구도 싸움에 탁월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그는 미국인 vs. 비미국인 구도로 만들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ain, MAGA)"라는 그의 슬로건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 자리에 걸려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인 레이건 대통령이 사용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이라는 넓은 울타리를 자신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 울타리 밖에 있는 (불법) 이민자는 '적'이다. 트럼프가 인종차별자로 비판받았음에도 트럼프를 지지한 흑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이 높았던 사실은 그가 만든 선거 구도가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흑인 유권자는 15%, 히스패닉은 37%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최고치다('인종차별 논란 트럼프, 어떻게 흑인·히스패닉 유권자 지지 얻었나' , 조선비즈, 24.10.30).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했다. 24년 6월 대선 토론에서는 "수백만 명이 미국으로 몰려들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들"이라고 발언했다. 그러한 그의 주장에 흑인 유권자 40%가 불법 이민자 추방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만든 구도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트럼프의 세력 안에 포함되는 '미국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트럼프는 같은 미국인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는 '침입자(불법 이민자)'를 막아주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트럼프는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트럼프는 △강경한 이민정책 △대중국 관세정책 △전쟁 종식을 약속했다.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 불법 이민자는 막고, 중국의 저가품을 관세로 막을 것이며, 전쟁도 종결해서 미국인들의 세금이 들어가는 세계 경찰 역할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현재 미국의 문제에 대한 트럼프식 해법이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현재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트럼프에 환호했다. 그의 시대정신에 공감한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핵심 격전지로 꼽혔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이곳은 2020년 바이든이 승리한 곳이었다.
민주당과 해리스의 실패
트럼프가 만든 구도 싸움에서 민주당과 해리스는 우왕좌왕하며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돌아가지 않겠다(We're not going back)'라는 해리스의 슬로건은 민주당과 해리스가 '트럼프 vs. 반 트럼프' 구도로 싸우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 구도에서 해리스는 여당 후보가 아닌 도전자가 되어버렸다.
더 큰 문제는 그것에는 현재도, 그리고 해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트럼프에 반대한다는 입장만 존재했다. 구도 싸움에 실패한 해리스는 2020년 바이든을 지지한 흑인과 히스패닉의 지지도 얻어내지 못했다.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흑인 비율은 78%, 히스패닉 비율은 56%였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흑인의 90%를, 히스패닉계의 62%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 비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민주당 콘크리트층 '흑인·히스패닉계' 막판 트럼프로 쏠린다, 조선일보, 24.10.14).
결국 민주당은 확장은커녕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전통적인 지지층조차도 뺏긴 것이다.
민주당에서 가장 뼈아파하는 부분은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이탈이다. 가장 큰 이탈은 라틴계에서 나타났다. 라틴계 유권자 사이에서 바이든의 득표율은 트럼프보다 28% 포인트 높았지만, 해리스의 승리 폭은 13% 포인트로 반 토막 났다. 8년 전 트럼프를 지지하던 라틴계 유권자는 29%에 불과했지만 올해 42%까지 성장했다(미국 노동자 서민은 왜 트럼프를 뽑았나 [데이터로 읽는 미국 대선], 시사IN, 24.11.26).
Yes, She Can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는 "Yes, We can"의 슬로건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후 치러진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분열된 미국을 통합하고, 할 수 있다는 '희망(Hope)'을 이야기했다. 자신에 대한 공격도 '우리(We)'로 포용했고, 무너지는 미국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며 '희망'을 담았다.
2004년 일리노이주 상원 의원으로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케리 후보 지지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올라온 오바마는 하나 된 미국을 부르짖었다. 미국 정치사에 남는 명연설로 오바마를 일약 전국구 정치인으로 만들어주었고, 기어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오바마조차 해리스 지지연설에서 "Yes, She Can"이라고 외치는 순간, 해리스는 여성(she) 안에 갇혀버렸다.
'흑인' 오바마가, 해리스를 '여성'으로 가둔 순간, 해리스는 '민주당', '흑인', '여성' 후보가 되어버렸다. 민주당과 해리스의 전략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