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에 대한 이해_2

by 글쓰는 범고래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로 불리는 네오콘은 미국의 강경 보수를 상징한다. 미국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군사적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국가가 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으며, 이를 위해 국제 문제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존 볼턴 국무부 차관 등 외교 안보 고위 관계자들이 네오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강경 보수 매파인 네오콘의 전성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였다. 그들은 미국적 가치라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가 최선이며 이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여 미국의 가치나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를 "불량 국가" 혹은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적극적으로 '불량 국가'와 '악의 축'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감행했다. 대다수의 네오콘이 강한 기독교의 신념을 지닌 것을 빗대 사람들은 그들을 '민주주의의 십자군(Democratic Crusaders)'이라고도 불렀다.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


닉슨 대통령은 미국 정부를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언제 핵전쟁을 벌일지 모르는 '미치광이'로 인식하도록 행동함으로써, 감히 미국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공식적인 국제정치학 용어로 사용되는 '미치광이 전략'은 닉슨 대통령 자신이 명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1990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에선 살인자도, 착한 녀석도, 그 어떤 사람도 돼야 한다. 때론 치열하고, 때론 달콤하고, 때론 무자비해야 한다. 이건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트럼프는 '미치광이 전략'을 가장 잘 소화할 자질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을 때, '미치광이 전략'을 닉슨에게 구상하고 제안한 사람을 만나서 조언을 구했다.


그의 이름은 헨리 키신저였다.



헨리 키신저


"America has no permanent friends or enemies, only interests."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킨 키신저는 정의와 질서 가운데 늘 질서를 선택한 보수적 현실주의자였다. 현실정치(RealPolitik)로 요약되는 그의 외교관은 이념이나 도덕보다는 현실적 권력과 힘에 따라 정치와 외교를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입장은 선과 악의 대립으로 국제 질서를 바라보며, 미국의 가치를 전파해야 한다는 네오콘과 대립되었다. 실제로 키신저는 네오콘들을 이상주의자들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곤 했다.




철저한 현실주의에 입각한 그는 힘의 균형을 통해 지정학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세력균형론의 신봉자였다. 또한 그는 강대국 지도자의 경세술을 중시함으로써 약소국의 입장은 그저 강대국의 외교와 힘에 희생당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즉, 그에게 약소국은 강대국의 입장에 따라 움직여지는 장기판의 '졸(卒)'에 불과할 뿐이었다.


소련 견제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키신저의 미국은 중국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베트남의 공산화를 묵인했고, '졸(卒)'에 불과했던 한국과 일본의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일부도 철수시켰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는 일찌감치 중립국을 선언한 캄보디아에 무자비한 공습을 명령한 것도 키신저였다. 공습의 명분은 베트콩 세력이 캄보디아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군이 캄보디아에 투하한 폭탄은 200만 t이 넘었다. 이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린 원자폭탄을 포함해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 동안 쏟아부은 폭탄의 양과 맞먹는 양이었다. 이로 인해 희생된 숫자는 공식적으로만 15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미군의 무차별한 폭격은 캄보디아의 내전과 이후 계급 없는 사회를 내세운 극좌 공산주의 정권인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이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크메르루주 정권 아래에서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비극 중 하나로 기록하게 만든 대학살이 일어났다. 당시 죽은 사람의 수는 약 200만 명으로 캄보디아 인구의 25%에 달하는 숫자였다. 이후 사람들은 이 대학살을 '킬링 필드(Killing Fields)'라고 불렀다.


그리고 키신저는 1973년 베트남 정전협정을 이끈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키신저는 중국과 손을 잡을 때 이미 "언젠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게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라는 예언을 했다. 항상 '아첨꾼(flatterer)'이라는 조롱이 따라붙은 그는 퇴임 이후에도 자서전과 집필, 정부 자문 등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이어갔고, 기업인들을 상대로 지정학 컨설팅을 하면서 많은 재산을 쌓았다.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에는 키신저의 외교 방식 혹은 이중성이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안보동맹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독일 측에서 키신저에게 조언을 구했고, 키신저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당시 백악관 실세였던 재러드 쿠슈너를 만나라고 조언해 주었다. 하지만 쿠슈너에게는 "동맹의 불안을 이용해야 한다. 계속 안절부절못하게 하라"라고 미리 얘기해 둔 뒤였다.


참고로 키신저의 집무실은 미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뉴욕 맨해튼 중부 아르데코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33층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은 약 5000만 달러(약 730억)라고 알려져 있다.

스크린샷 2025-03-03 오후 7.29.06.png 닉슨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전권자였던 헨리 키신저(출처: 나무위키)



트럼프, 네오콘과 작별을 선언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한 축을 차지했던 네오콘은 트럼프와 자주 충돌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네오콘의 상징이었던 볼튼 국가 안보보좌관은 트럼프의 외교 방식과 차이를 보였다. 네오콘의 가치와 철학에 의해 볼튼은 일부 국가에 대한 제재와 선제적 군사행동을 주장했다. 그런 볼튼에 대해 트럼프는 '전쟁광(warmonger)'으로 지칭하며 "그 사람 말을 들었으면, 전쟁을 서너 번은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초지일관 ‘싸우지 않고서 이기는 전략’을 추구했다. 그 결과 트럼프 1기의 마지막 16개월 동안 그는 최소 네 가지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았다(Robert O'brien, "The Return of Peace Through Strength, " Foreign Affairs, 2024.6.18).


첫째, 2020년 9월에서 2021년 1월까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각각 국교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조약을 체결했다.


둘째, 미국의 중재로 세르비아와 코소보는 양국의 경제 관계를 정상화했다.


셋째, 미국의 압박으로 이집트와 주요 걸프 국가들은 카타르와의 분쟁을 종식하고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봉쇄령을 해제했다.


넷째, 탈레반과 적극적으로 협상하여 트럼프 정권은 마지막 1년간 미군 전사자 발생을 극소화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후 트럼프 주니어(Jr)는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는 네오콘과 전쟁 매파를 쓰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네오콘과의 완전한 작별을 선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돌발행동에 불안해하는 사람들과 달리 트럼프 1기 정권은 단 한 번도 새로운 전쟁을 벌이거나 기존 전쟁을 확전 하지 않았다. 이는 1970년대 카터 정권 이래로 전쟁을 벌이지 않은 최초의 정권이었다.


트럼프는 네오콘의 방식이 아닌 키신저의 길에 서 있었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