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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Feb 07. 2024

내 집 말고 ‘우리집’

잘 가렴. (1)

 더 깊은 데로 웅크려 들어가게 만드는 추위. 예년보다 따스한 겨울이라고 해도 겨울이 주는 ‘차가움’과 ‘메마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돌봄’이 필요한 모든 존재들 또한 함께 웅크려드는 듯하다. 겨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성정 때문이겠지만 눈이 오면 그 길을 거닐어야 하는 어르신들의 조심스러운 걸음이 먼저 생각난다. 새벽부터 일터로 향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언 손이 떠오른다. 뜨끈한 아랫목을 감히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의 허망한 눈망울이 나를 응시하는 듯하다. 사람도 그러한데 다른 동물들은 오죽할까 싶다. 올겨울 맹추위가 이어질 거라던 예보는 어찌나 잘 맞던지. 며칠 채 되지 않은 새벽, 나무 밑에는 온몸이 얼어버려 온기를 잃은 새 한 마리가 차가운 돌멩이처럼 놓여있었다. 언 땅을 돌멩이로 파고 또 파서 죽어버린 새 한 마리를 묻는다. 여기 뭔가가 묻혀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묻힌 곳을 갈무리한다.

 우리집 옆집으로 다섯 가족이 주욱 연달아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족 말고도 동네 고양이 서너 마리가 더 살고 있다.

 몇 년 전 고양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때 TNR을 실시했었고 나를 믿고(?) 따르던(??) 암컷 세 마리는 더 이상 자기 배로는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두 해에 걸쳐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다섯 녀석들은 모두 고양이 별로 갔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그중 한 녀석만은 여전히 내 곁을 맴돌았다. 그게 마음에 걸려 ‘이 녀석이 고양이 별로 돌아갈 때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리라.’ 마음먹고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진노랑 빛깔의 털을 지닌 그 녀석 말고도 진한 검갈색 털을 지는 녀석 하나, 애꾸눈 치즈냥이 하나 그리고 하얀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지닌 녀석 하나 총 네 마리가 우리집 밥을 먹는 고정 손님들이시다.

 이게 무슨 엇질이 심보인지, 나는 밥은 주되 녀석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았고 살갑게 다가오는 녀석들의 등어리 한 번을 쓰다듬은 적이 없다. 그냥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밥정이 무서운 게 한 녀석이라도 안 보이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쓰였다. 그다음 날 밥 먹으러 쪼르르 달려오는 걸 보면 다행이다,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름 한 번 부른 적 없고 그 녀석들의 온기 한 번 내 손에 닿은 적 없건만 어느샌가 아주 조금은 마음이 닿아버렸나 보다.


추운 겨울 못 넘기고
고양이 별로 돌아갔나 보다.

 

 태국에서 돌아와 보니 역시,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내가 밥 주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두 녀석이 오질 않는다. 하루, 이틀, 사흘...  애꾸냥이는 아무래도 곧 고양이 별로 떠나겠구나 싶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녀석인데 이 녀석이 나 없는 사이에 떠났나 하는 찰나에 나타났다. 그런데 또 한 녀석, 검갈색의 털을 지닌 도도한 그 녀석은 보름이 넘어서도 우리 곁에 나타나지 않았다. 동네 근처를 샅샅이 찾아보는데도 불구하고 그 도도한 녀석은 보이질 않았다. 가끔씩 우리집 앞에 와서 밥을 먹고 가던 새까만 냥이 녀석도 이제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다. 산 중에 있는 동네라 다른 동네로 이사 갔을 확률도 거의 없었기에 태국 가있던 동안 추위를 넘기지 못했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그릇 하나 덜 챙기는 게 여간 마음 쓰이는 게 아니다. 윤기 있는 노란색 털을 가진 녀석이 더 이상 안 보일 때도 그랬고 다리 하나를 잃은 녀석이 안 보일 때도 그랬다. 다리 한쪽이 기형이었던 녀석도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난 자리'가 시리다. 이 하나가 빠진 것처럼 시리고 아리다.


 며칠 전, 고양이 셋과 함께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반려 냥이 중 한 마리가 죽었다는 연락이었다. 친구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이별이었다. 첫 번째 이별을 하고 딱 3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의외로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던 녀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아마 지금의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고양이 죽었다고 이렇게 슬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루이(친구가 기르던 둘째 고양이의 이름)의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어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동물이지만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아무도 없으면... 외로웠을 테니까. 적어도 내가 루이는 외롭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어."


 통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같은 고양이로 태어났지만 한 녀석은 가족의 배웅 속에 외롭지 않게 떠날 수 있지만 어떤 녀석은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증발되어 버린다. 같은 '생명'의 가치를 지니고 태어났는데 삶의 과정은 물론 '죽음'의 순간마저도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불공평함'이 새삼 서럽고 화가 나고 아팠다.




 십오 년쯤 됐나. 내가 서산에 내려오기 전이었으니까, 그 정도쯤 됐을 거다. 우리 동네에는 이상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자주는 아니지만 자정 넘어 곡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는데 이 곡소리의 주인공이 이 할머니셨다. 울음을 쥐어짜는 듯한 할머니의 곡소리는 곱게 들릴 리 만무했다. 초저녁이면 그러려니 할 것을 꼭 자정이 넘어 그렇게 곡을 해대니 동네 사람들도 여간 짜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돌아다니면서 곡을 하는 이 할머니가 다리라도 아픈 날이면 그 자리에 철푸덕 앉아 울음을 쥐어짜는데 결국은 경찰이 와서 데리고 가시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떤 이웃은 '노망이 난 할머니'라 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웃은 '자식 앞세운 불쌍한 할머니'라고 측은해하시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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