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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Dec 13. 2023

소녀시대(1989&2007)

찬란한 유산

미국 월가(Wall street)에서는 기업의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가 자기 회사에서 퇴출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에는 CHAT-GPT의 아버지라 불리는 샘 올트만 ‘오픈 AI’ 창업주가 이사회의 결정으로 해고되어 화제가 됐다. ‘트위터’의 창업자 잭 도시는 2006년 회사를 설립한 지 3년 만에 퇴출이 됐고,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도 본인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비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달리 보면, 성과주의가 정착된 것이기도 하고, 수직적인 위계질서보다는 수평적 문화가 자리 잡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리에 안주하는 순간, 왕좌는 위협받기 마련이다. 누구도 경쟁을 피해 갈 수 없다.


물론, 물러난 사람 각성하는 한 기회 역시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샘 올트만은 회사에서 해고된 지 5일 만에 CEO로 복귀했고, 잭 도시도 5년 만에 원래의 자리를 되찾았다. 경영실적 악화와 경영 내분으로 1985년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무려 12년 만에 애플의 CEO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그 이후의 성공 신화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대로다.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이수만도 본인이 만든 회사에서 퇴진했다. 본인 자체가 SM인 그는, 30대 초반 SM을 창업해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킨 것은 물론, 시가총액 2조 원의 규모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자신과 회사를 동일시하며 살아온 시간이 거의 40년에 이름에도, 그는 경영권을 잃었고,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가 K-POP을 하나의 장르로 일구어낸 최고의 프로듀서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신생기업 SM 기획을 창업한 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요계에서 성취와 실패를 반복하던 그는, 꾸준한 도전 끝에 아이돌 그룹 H.O.T와 S.E.S를 성공시켜 안정적 성장 기반을 구축했고, 2007년 데뷔한 <소녀시대>의 글로벌 성공을 통해 명실상부 K-POP 의 <NO. 1>으로 우뚝 섰다.

    

<소녀시대>는 2세대 대표 아이돌 그룹이다. 총 8명의 멤버로 구성된 다국적 걸그룹인 그들은 글로벌 K-POP의 주역이라 할 만큼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17년 빌보드에서 선정한 Best K-POP 걸-그룹 부문 1위를 차지했고, 발표하는 앨범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 대만 등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처음 <소녀시대>라는 그룹명을 들었을 때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눈물을 흘린 멤버도 있었다고 한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니 촌스럽다고 느끼는 것도 이해는 된다. 개인적으로는, ‘소녀’라는 단어가 나이 들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성장 혹은 성숙함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소녀로만 머무를 수는 없지 않나 하는 ‘단순한’ 생각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누구나 <소녀시대>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누구나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정도의 반항심은 갖고 살아가니, 노랫말에도 부합하는 찰떡궁합 네이밍일 수도 있고.     


<소녀시대>가 첫 번째 정규음반을 내면서 내세운 첫 타이틀곡이 이승철이 부른 동명의 곡 <소녀시대>라는 점을 보아도, 프로듀서가 기분 내키는 대로 대충 지은 그룹명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2007년 <소녀시대>가 부른 <소녀시대>는 1989년 이승철의 <소녀시대>를 뛰어넘었다. 원곡보다 뛰어난 리메이크곡은 없다는 속설이 있고, 음악에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중음악은 앨범 판매량, 음원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횟수, TV·라디오 방송 출연 횟수 등으로 성과가 명확히 측정된다는 점에서 상대적 비교는 얼마든 가능하다.


내가 처음 이승철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가 바로 <소녀시대>다. ‘라떼’는 방송이라고 해 봐야 오직 공중파 3사가 전부였다. 더 재미없는 건 음악방송 출연 가수들이 대부분 정형화된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가수의 종류가 트로트 가수, 발라드 가수, 댄스 가수로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크로스오버는 상상 불가였다.

     

그런데, 그는 남달랐다. 사회자는 분명 그룹 <부활> 출신의 록 보컬리스트라고 소개했는데,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라는 조용한 발라드곡을 ‘반말’ 조로 읊조리더니, 이내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를 외치며,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키스 퍼포먼스를 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시대착오(!)적이었다.

  

외부 환경 변화를 잘 흡수하는 10대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니, 함께 방송을 보던 부모님이 ‘세상 말세다’, ‘요즘 젊은 애들문제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요즘 애들이 문제’라는 문구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도, 1930년에 제작된 영화에도 나오는 레퍼토리니, 시대를 초월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됨은 물론이다.  

   

날카로운 미성과 절대 음감, 파격적인 가사, 20대 초반 특유의 자신감과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이승철의 <소녀시대>는 최고가 되지 못했다. 이 노래로 누군가는 그에게 입문하고, 그가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는 전천후 가수로 평가받았을지언정,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 모두에게 인정받는 가수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스물셋 이승철의 <소녀시대>는 ‘보편성’ 보다는 ‘특수성’, ‘모두’ 보다는 ‘일부’에게 어필하는 음악이었다.  


스티브 잡스와는 달리, 타의에 의해 강제 ‘복귀’ 당한 <소녀시대>는, 그러나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하는 노래로 재탄생했다. 예의 날카로움과 무게감은 덜어내고, 진짜 소녀들의 화음과 율동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본 이 노래는, 결국 18년 만에 음악방송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걸그룹 <소녀시대>는 그해 신인상을 휩쓸었고, 이후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시대가 변하면, 무대의 주인공도 바뀐다. 가요계 선배 혹은 기업의 창업주라고 언제까지나 한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한발 물러설 때가 되었음을 아는 일, 기꺼이 받아들이기야말로 경륜과 지혜의 산물이다.

      

어느 날인가, 이승철이 8인조 <소녀시대>와 한 무대에서 <소녀시대>를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보다 한 발 뒤에 서서 코러스로 화음을 넣는 것이 그가 맡은 역할이었다. 그는 무대의 조연이 되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듯 보였다.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자, 거장의 품격은 더욱 빛이 났고, 선후배 간 협연은 사라지지 않는 ‘찬란한 유산’으로 계승됐다.  

    

그로부터 또 15년이 흘렀다. 원곡자는 데뷔 40년을 목전에 둔 가요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여전히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적이 없고, 흔히 말하는 ‘가수왕’에 오른 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로 살아남았다. 심지어 가요계의 황제, 살아있는 전설 소리도 듣는다.  

    

흥망성쇠가 뚜렷한 대중음악계에서 숱한 비난과 입방아에도 쉬이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게 버, 켜켜이 쌓인 시간에 비례해 그가 실력 이상의 고평가를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도 계속 실행하려는 태도다.

     

이승철이 더 이상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 가수가 아니듯, <소녀시대>도 더 이상 세계를 호령하는 걸그룹은 아니다. 30대가 되었으니, 추억 속 소녀로 남아있는 것보다는, 나이와 역량에 걸맞은 자리를 찾는 것이 새로운 기회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에는 성장기와 성숙기를 넘어 쇠퇴기도 찾아온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선배가 그러했듯 말이다.   


K-POP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수만 역시 세대교체를 거스를 수는 없다. SM 없는 SM 타운은, 그러나 잘 돌아갈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의 수장도 하루아침에 물갈이되는 마당에, 일개 코스닥 기업이야 말해 무엇하랴. SM 정도 되는 대기업은 이미 시스템으로 운영되니, 주주 한 명 바뀌었다고 큰일 날 일은 없다. 하물며, 떠난 그도, 자기가 일군 회사가 잘못되길 바랄 리 없다.


다행히 그 모기업에 대한 미련은 뒤로 하고, 시니어 투자자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출신의 가수, MC, 프로듀서, 컴퓨터 공학도, CEO에 이르기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에게 불투명한 미래는 오히려 좋은 사업기회일 가능성이 크다.


될성부를 나무를 찾아내 떡잎부터 키워야 하는 투자자는, 사실 프로듀서 겸 크리에이터 SM의 인생 시즌 2라고 해도 어울릴 정도로, 그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지나간 영광, 성과에 도취되는 순간 과거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래도 없다. 나의 노래, 나의 회사, 나의 이름이라 하더라도, 억지로 이어받을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선택은 후배 가수, 후임 CEO, 심지어 나를 쫓아낸 후속 이사회에 맡겨야 한다.   


설령 아이돌 그룹이 해체되고,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상호에서 SM이 사라진다 해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변화와 혁신이 계속되더라도, '맨 처음'은 각인(刻印)되어 '찬란한 유산'으로 계승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에 대한 미련, 집착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고대 이집트 문명, 20세기 무성 영화 전성기, 21세기 인공 지능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소녀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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