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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Dec 09. 2023

서쪽 하늘(2005)

Life goes on...

집 밖으로 나와 길 하나만 건너면 연희동이다. 늘 발길이 닿던 곳이자, 첫째 아들이 다닌 학교도 있는 곳이니, 내가 연희동 주민이라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고즈넉한 주택들이 많이 모여 있기도 하고, 골목골목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어서 연희동 산책을 즐겼다.


그러나, 이제는 연희동을 피해 다닌다. 어느날 아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고, 느긋하게 연희동 주택가를 걷다가 느닷없이 경찰의 제재를 받았던 <기억 때문에>다.

    

그렇다. 내가 걷던 그 골목, 그 집은 전두환의 집이었다. 전직 대통령 집 근처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미심쩍은 성인 남성이 있으니, 경찰로서는 그저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당황스럽고, 억울했다.     


스무 살 무렵 아직은 대학생들의 시위가 종종 있었던 시절, 정경대 후문에서 전투경찰의 요구로 책가방 검사를 받다가 경제학 원론 책을 빼앗겼던 일이 있었다. 불온서적으로 오해받았기 때문이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사복경찰에게 신분증 검사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나마, 그건 모두 20세기의 일이다.


그러나, 21세기 대명천지에 명실상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또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나는 중년의 소시민에 불과했던지라, 상대방에게 불시검문의 헌법과 법률적 근거를 대라며 당당하게 쏘아붙이지는 못했다. 스스로 고안해 낸 해결책이라고 해봐야 연희동 주택가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는 수준에 불과하니, 누굴 탓하기도 어렵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관념적 이미지에 불과한 국가 혹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 또는 복종감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여전히 똬리 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군사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30년도 더 지났음에도, 지금은 여전히 제6공화국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어렸을 때 TV로 시청했던 드라마 <제5공화국>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기는 했어도, 감회가 새로웠다. 일부에서는 영화적 상상력이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관, 가치관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영화의 상영을 못마땅해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누구나 알고, 누구나 공분을 느낄 것이라 마땅히 여겨지는 상식도 누군가에게는 몰(沒) 상식일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하긴, 이곳은 사상(思想)의 자유가 있는 21세기 민주공화국이다.   

  

성공한 쿠데타(Coup dEtat)는 처벌할 수 없다. 1995년 문민정부 시기에 고발된 신군부 내란죄 기소 건에 대해 당시 사건 담당 검사가 이들을 불기소처분하며 밝혔던 말이다. 이 메시지는 시민들의 공분을 샀고, 여론에 힘입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에 대한 처벌이 역설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물론, 내란죄는 현행법상 중죄다.

   

그러나, 수십 년간 몰상식을 상식으로 아는 수많은 쿠데타 추종 세력, 기득권층의 비호에 힘입어 그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심지어 천수(天壽)를 누리기까지 했다.   

   

전두환은 1931년에 태어나 1981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2021년 망했다. 노태우는 1932년에 태어나 1988년에 대통령이 되었으며, 친구와 같은 2021년 별세했다. 모두 구순(九旬)을 살았다. 이들 외에도, 12.12쿠데타 세력 중에는 1930년대생들이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장군, 국회의원, 장관, 공공기관장으로 승승장구했고, 장수(長壽)했으며, 심지어 일부는 여전히 살아 있다.    

 

반면,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던 군인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고문, 강제 예편, 계급 강등은 기본이었고,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군사정권의 회유나 협박에 넘어가지 않은 군인들은 본인이 겪은 고초와 수모에 그치지 않고, 부모, 배우자, 자녀의 실족(失足)사, 의문사, 자살로까지 이어졌다. 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의 사슬이란 말인가.    

      



이승철이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른 <서쪽 하늘>은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청연>의 주제곡(OST)이다.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의 민간인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주인공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꿈을 가진 자가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고독의 심연’이라는 20자 평으로 영화적 완성도와 서사를 높이 평가했음에도, 인물에 대한 미화 논란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2002년 부활의 김태원과 재결합해 <Never ending story>를 내보여 공전의 히트를 하고 화려하게 부활했던 이승철도, 이후 솔리스트로 돌아가 야심 차게 <서쪽 하늘>을 발표한 것이었으나, 외면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제작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청연>의 포스터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포스터로 재평가받는다.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모두 고인(故人)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경연을 연기했던 장진영은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가 될 재목(材木)으로 거명되던 전도유망한 배우였다. 그녀가 주연한 영화 <국화꽃 향기>의 주제가 <희재>를 불렀던 성시경은 본인이 실제로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장진영은 주인공 인물의 행적이 논란이 되자 상처받았고, 우울증에 걸렸으며, 결국 2009년 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녀의 나이는 불과 서른일곱이었다.  


남주인공인 지혁 역할을 맡아 열연했던 김주혁도 아버지(김무생 배우)의 후광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만개하던 중 2017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향년 45세였다.    

  

영화 주제가 <서쪽 하늘>은 발표 당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2011년 이승철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슈퍼스타 K3>의 참가자였던 울랄라세션이 다시 부르면서 뒤늦게 히트했다. 프로그램 우승자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은, 2013년 겨우 서른 둘의 나이에 위암으로 별세했다.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다.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재능에 대한 <신의 질투>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오백만 관객이 든 영화 속 실제 주인공들은 생전 숱한 비난과 공분을 사면서도 버텼다. 반면, 오십만 관객이 든 비운의 영화 속 연기자들은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으면서도 쉽게 상처받았고, 요절(夭折)했다.   

  

그래도, 음악만은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슬픈 발라드의 정수로 온전하게 자리매김했다. 노랫말이 불리는 한, 장진영도, 김주혁도, 임윤택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들이 <서쪽 하늘>로만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장진영은 20년째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희재>의 페르소나로 각인되어 있고, 김주혁은 독특한 분위기의 범죄스릴러 영화 <독전> 속 대체 불가 주인공으로 넷플릭스 시청자들과 조우 중이다.


임윤택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얼라이브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생전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AI 기술을 접목한 영상, 음성합성을 통해 <부활>한 그는 위암을 앓기 전 건강한 모습으로 울랄라세션 멤버, 이승철과 함께 <서쪽 하늘> 라이브 무대를 완성했다. 그의 모습과 목소리는 가족과 동료, 시청자들에게 21세기적 감동을 선사했다.




어느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시대의 초입에 서 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죄(罪)를 가릴 수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잘한 일은 잘한 대로, 잘못한 일은 잘못한 대로 투명하게 평가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세상은 진보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명확해진 시대다. 따라서, 이제는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기보다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야 한다.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로 끝나는 줄로 알았던 <서쪽 하늘>의 노랫말도, 다시 살펴보니 떠나간 사람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노랫말 중) 서쪽 하늘로 노을은 지고, 이제 슬픔이 돼버린 그대를 다시 부를 수 없을 것 같아 또 한 번 불러보고, 소리쳐 불러도 늘 허공에 부서져 돌아오는 너의 이름 이젠 더 견딜 힘조차 없게 날 버려두고 가지만,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언젠간 널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동안 자신의 재능이 온전히 드러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세 사람의 청춘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빛을 내지 않았던가. 스스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을지언정, 사는 동안 진심으로 임하면 충분하다. 지금은 기억마저 선명하게 기록되는 시대이니,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되(amor fati),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carpe diem).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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