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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Dec 06. 2023

말리꽃 (2012)

부상당한 스트라이커 (Feat. 연규성)

서른 즈음 난 이미 남편이자 아빠였다. 회사에 입사한 지도 5년 차, 가장 보통의 존재로 안착 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철들지는 않았다. 가족에 대한 경제적 부양의무까지 소홀히 할 순 없었지만, 내심 ‘난 다른 직장인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라는 생각을 유지하며 일탈을 꿈꾼 것만은 사실이다.  

    

아빠는 처음이었던 지라 갓난아기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를 잘 몰랐을뿐더러, 애써 외면했던 시절이다. 문제는 아내도 엄마가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도와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아내를 두고,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보는 그녀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꿈꾸는 리얼리스트’라는 멋진 용어가 현실을 외면한 채 두루뭉술한 꿈만 좇으라는 뜻은 아닐진대, 그 시절의 나는 허울 좋은 몽상가에 불과했다. 기왕 꿈을 꾼다면, 가급적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작은 성취라도 꾸준히 내어야 한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리얼리스트로 돌아가 ‘그래도 시도는 해봤으니 됐어’라고 자위하는 건 비겁한 자기변명이자, 인지부조화에 불과하다. 서른의 내가 그랬다.

     



<연규성>이라는 사람을 만난 건 그즈음이다. 그는 무명 가수였지만,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재야의 고수로 통했다. 2000년대 초반 ‘락타운’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큼은 그는 이미 ‘슈퍼스타K’였다. 워낙 고음 발성이 좋아 국내외 록 보컬리스트들이 부른 명곡들을 무리 없이 소화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말리꽃’이다.    

 

어느 날,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보컬 레슨 모집 공고문을 보고, 지체 없이 이메일을 보냈다. “사실, 난 당신의 고향 선배이고, 초중고 중 하나는 같은 곳을 나왔고, 학부 시절 전공도 같고, 심지어 졸업한 대학마저 전통의 라이벌 관계이니,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는” 뭐 그런 유치한 내용이었다. 물론, 그도 지체 없이 답장했고, 나는 토요일 오후 지체 없이 그의 신촌 자취방으로 찾아갔다.

     

알고 보니, 편지 쓰고, 레슨비 보내고, 직접 찾아간 건 내가 유일했다. 커뮤니티 안에서는 보고 싶다, 레슨 받고 싶다, 언제부터 시작하느냐 등 말들이 많았지만, 직접 실행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건 의아했다. 생각만 하기와 실천하기 사이의 간극(間隙)은 예나, 지금이나 참 크다.   

   

호기로웠던 첫 다짐과는 달리, 나의 끈기와 열정도 한계가 명확했다. 순수한 취미로 즐기려는 것인지, 지금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익혀서 직업으로 삼거나, 그게 아니면 인생 필살기(부캐릭터)로 발전시킬 계획인지 목적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무모한 도전은 문제 되지 않는다. 생생하게 꿈꾸지 않으면, 어떤 계획도 한낱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하다.

    

그와 한두 번의 만남은 더 있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노래 실력에 감탄했고, 그가 부러웠다. 그러나, 발성에 대한 기본기가 없다며, 그가 내게 건넨 조언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 순간부터, 나 미래는 없었다.


한 달 치 선납한 비용도 아까운 줄 모르고, 그의 연락을 일부러 회피하던 서른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집 밖에서라고 다를 게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는 새지 않았으랴. 부끄러운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달랐다. 둘 사이 생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나, 꿈을 이루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우직하게 계속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그는 승자다.


타고난 노래 실력 외에도, 연대 경영학과 졸업생이라는 번듯한 타이틀까지 확보한 그였기에 모범시민으로서의 트랙 온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모 공기업에 공채직원으로 입사해 수년간 근무했던 건 분명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사무직 샐러리맨은 대체할 수 있는 인력들이 즐비하다. 뒤늦게나마, 그가 수많은 사람 중 하나(One of them)가 되는 것을 중단하고, 누구와도 비교 불가한 음악인의 삶을 다시 선택한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잘된 일이다.   


매월 똑같은 월급으로는 삶의 안정성이 보장될지언정, 인생 바기는 어렵다. 사직서를 제출한 그에게 직장 동료들은 안위를 걱정하는 말들을 내뱉었을 테지만, 사실 그들도 그를 놓아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실력과 열정이면 머지않아 세상에 빛을 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가 한때 몸담았던 회사도 알려기관의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도 높아질 테니 말이다.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그는 <슈퍼스타K>에 출연했다. 물론, 심사위원이 아닌 경연자로서 말이다. 난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꿈 중 하나가 자신의 우상 이승철 앞에서 노래 부르기였음을 말이다.


오래된 꿈도 이루고, 잘만하면 거액의 상금에 유명 가수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기회인데, 참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롤-모델(Role model) 앞에 섰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목소리도 떨렸다. 그의 벅찬 감정은 화면을 뚫고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어쩌면, 나에게는 더 생생하게 전달된 것일 수도 있겠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중반이었다. 참가자 중 최고 연장자라는 방송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사이 회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 연차 조직원이 되어버린 ‘나’, 반면, 또래임에도 세상의 평가나 잣대 따위에 큰 흔들림 없이 버틴 끝에 새로운 시작점 앞에 선 ‘그’.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 둘 사이의 차이가 다시금 환기되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삶의 우열은 가릴 수 없을지언정 말이다.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일종의 성대결절을 겪고 있던 그의 노래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난생처음 들었을 심사위원 이승철과 싸이의 귀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컨디션 관리도 프로의 덕목 중 하나라며 탈락을 외쳤을 독설가 이승철도 웬일인지 그에게만은 예외였다. 부족한 가창력을 뛰어넘을 만한,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법한 진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승철은 그를 “부상당한 스트라이커”에 비유했다. 이보다 적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인연>, <듣고 있나요>, <말리꽃>에 이르기까지 원곡 가수 본인도 소화하기 힘든 곡들을, 온전치 않은 목소리로 완창 해내는 서른 중반의 생계형 가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讚辭)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중도 탈락했다. 그의 남다른 인생 서사도 서사지만, 경연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로이킴이라는 걸출한 싱어송라이터가 우승했으니, 결과에 토를 달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가 부른 <말리꽃>은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곡으로 거듭났다. 수면 아래 잠겨져 있던 재스민꽃 향기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의 힘으로 다시 퍼진 것이다.


경연의 취지와는 별개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말리꽃> 노래 한 곡은 연규성이라는 가수의 지명도를 한껏 높여 그가 여태껏 노래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의 필수 커버 곡이 되었으며, 이승철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 ‘오케스트 樂’의 백미(白眉)를 장식한 곡이자 그의 대표곡 중 하나로 격상되었다.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는 기적의 서사다.  

   



<말리꽃>은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슬픈 발라드다. 2001년 영화 <비천무>의 주제가(OST)로 세상에 처음 선보여졌으나, 발표 당시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승철의 오랜 팬들이야 익히 알고 있던 숨은 명곡이었으나, 숨은 노래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원곡자가 아닌 제삼의 인물이었다.


창작물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라면, 그 운명은 함부로 단정 짓기 어렵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 성과물을 꾸역꾸역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라이커가 부상을 무릅쓰고 출전한 경기에서 감독과 코치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골을 터뜨린 격이다. 자칫하면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었던 그가, 후유증에 대한 걱정은 제쳐두고, 우승자가 될 확률은 0.1%도 되지 않는 노래 경연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뜻밖의 결과를 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도전하였기에 이루어 낸 성과였으리라.  

  

그러고 보니, <말리꽃>의 노랫말도 예사롭지 않다. “긴 한숨을 내쉬는 것조차 힘들고, 지쳐 쓰러지며 되돌아가는 내 삶이 초라해 보여도, 소중하게 남긴 꿈들을 껴안아 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가수는 자기가 부른 노래 따라간다는 말이 완전 빈말은 아닌 듯하다. <말리꽃>의 꽃말마저 순결한 마음, 진정성이다. 진심을 담아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슈퍼스타K>가 되는 길 아닐까.   

   

어느덧, 그와 나는 모두 아이 둘 키우는 중년의 가장이 되었다. 다행히, 소설가 박완서가 말한 것처럼 요즘의 나이는 신체 나이에 0.7을 곱한 결과치로 치환된다고 하니, 우리는 아직 어떤 도전이든 해볼 만한 청춘이다.


생활이 버겁다는 핑계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오늘, 꿈의 성취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시절의 그가 떠올랐다. 그가 나를 기억한다면, 그때 환불받지 않은 레슨비는 소주 한잔 값으로 남겨둔 것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행여 그가 나를 잊었을지언정, 나는 꿈꾸는 리얼리스트의 증거이자 여전청춘인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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