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요세프 Dec 04. 2023

Never Ending Story (2001)

기다리지 않고, 먼저 연락하기

“머지않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소식으로 찾아올게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0년 초여름으로 기억한다. 경기도 가평의 어느 야영장, 바비큐 파티를 하던 도중에 그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는 이승철이고, ‘우리’는 팬클럽 회원들이다. 우리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나는 쭈뼛거리며 주변을 맴돌던 비주류였을 뿐이다. 팬클럽 이름도 <새침기>니까 왠지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기도 다.


어쩌다가 주류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됐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군 제대 직후였으니, 내게도 치기 어린 용기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몇 안 되는 남자 중 하나다 보니, 여기저기서 따가운 시선 느껴지고, 나를 보면서 한 마디씩 키득거리는 것 같기도 해서 잠깐이나마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하고 후회도 다.


참석자 수는 대략 30여 명, 남자는 나 포함 5명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은 서로 잘 아는 눈치고, 그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다. 군중 속 고독감이 나를 감쌌다.     


전 몇 번의 정기모임에 나갔을 때, 유일하게 대화를 나눠본 적 있던 태풍이 형이 없었다면, 난 아마 도망치듯 가평에서 빠져나왔을 거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그 이름, 태풍이 형은 이름마저 멋있었다. 특유의 친화력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와 고향이 같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하루>를 그의 옆에만 붙어 있으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란, 그에게 말을 걸 기회, 혹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뜻한다. 먼저 그에게 다가가 큰절을 올리고, 노래도 한 곡 부르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태풍이 형 옆을 계속 지키면, 어떻게든 기회가 올 것임은 확실했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 기대기만 하고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으니,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쿠킹 콘서트>라는 책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야영장에서도 본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내가 한 일이라곤 그가 손수 구워서 내어주는 바비큐를 맛있게 먹는 일뿐이었다. 식사 이후 장기자랑 시간에도 남들 노래나 장기자랑을 보며 손뼉 치는 일이 내 역할의 전부였다.      


발야구 경기 때 홈런볼 차고 1루, 2루, 3루를 돌아 홈까지 들어오면서 쓸데없이 의기양양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눈꼴사나운 행동이다. 아무리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됐기로서니, 순수 민간인들(?) 앞에서 뻥축구 하고 자랑스럽게 운동장 한 바퀴 도는 모습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화끈거린다.    

 

그래도, 발야구 때 어떻게든 존재감을 드러낸 모습이 그의 시선을 끌었나 보다. 발야구에 진심이었던 나를 보고, 그가 핀잔을 준 것이다. 숨어있더라도 나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기를 바랐었는데, 역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다.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창피함을 무릅쓰고 본인이 직접 행동해어떤 결과든 생긴다. 가수와 팬의 첫 대면치고는 그다지 아름다운 장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소기의 목적만큼은 확실히 달성한 셈이었다.

     

그의 장난스러운 꾸지람에 아무런 대도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외쳤다. 당시 내 나이 20대 초반, 10년 만에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자나 깨나 그를 흠모하던 내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전까지는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만 방어하는 인생이었다. 집과 학교를 오고 가는 모범생이었기는 하나, 먼저 나서서 태권도, 피아노, 컴퓨터 학원 한번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해 본 적 없다.


내 적성과 특기가 무엇인지 알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상의무교육만 다했을 뿐이다. 고등학교 때는 과학 과목에 취약했는데, 그걸 돌파하기 위한 행동(예를 들면, 학원이나 과외, 개인교습)시도하지 못했다. 주어지는 모든 결과는 거스를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오던 차에 처음으로 먼저 용기를 내 연락하고, 몸을 움직였더니, 어릴 때부터 추앙하던 <그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뜻밖의 결과가 생긴 것이다. 여전히 그는 나를 잘 모르겠지만, 23년 전 가평의 야영장에서 우리 둘 <추억이 같은 이별>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날 고기와 술, 기념품을 선물한 것도 내가 아닌 그였다. 다르게 움직이다 , 이렇게 갑과 을이 바뀌는 일도 벌어진다.     

 

먼저 용기를 내 원하는 결과를 낸 건 그도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소식으로 찾아오겠다던 그의 공언 미래에 대한 자기 예언이었다. 


2000년대 초반, 사실 그는 지는 별이었다. 예전 인터뷰에서 스스로 인정했던 것처럼, 그도 한물갔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절이다. 록 보컬리스트 출신 솔리스트라는 독특한 경력과 희대의 가창력이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언제까지 왕년의 인기, 지난 히트곡만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당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말 그대로 대중(大衆)에게 사랑받던 동년배 가수 신승훈과 김건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최고의 자리를 지키던 때였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라이브의 황제>라는 칭호도 어느새 여러 명의 가수가 돌려쓰는 의례적인 수식어가 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는 중이었다.     

 

팬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함께 등산하고, 캠핑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그는 내심 또다시 찾아온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을 터다. 스스로 여러 차례 밝힌 바처럼, 껌처럼 씹히더라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관심을 야 생명력이 유지되는 대중가수이기 때문이다.


먼 곳까지 찾아 준 새침떼기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가졌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도 여차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변덕스러운 그대> 임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의 선택은 김태원이었다. 당시에는 김태원 역시 침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밤낚시를 하며 세월을 낚고 있던 김태원에게 갑작스레 전화를 걸, 전화를 받은 상대방도 적잖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자존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 사람> 아니던가.


살면서 오다가다 만난 적이야 왜 없겠냐마는, 둘 사이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우리에게는, 1986년 부활 2집 발표 후 무려 15년 만의 재회다.


밤 통화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사과와 용서와 같은 때 묵은 감정들이 오갔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먼저 연락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 그들 끝이 없는 이야기 (Never ending story)로 다시 부활했다는 것은 잘 안다.   

  

결국, 어렵사리 용기 내 찾아갔던 가평의 어느 야영장에서 나는 남들보다 1년 먼저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 셈이다. 물론 지레짐작은 했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려면, 최소한 김태원 정도는 만나서, 최소한 <희야>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정도의 노래는 나야 할 텐데 하고 말이다.  

    

두 사람의 재회가 화제임은 확실했으나, 노래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했다. 그건 천하의 조용필이나 나훈아, 마이클 잭슨도 마찬가지다. 이름값이 성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제아무리 최고의 기사를 써주고, 유재석·이휘재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라이브 무대를 꾸미고, 공중파에 윤상현이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를 내보내도, 듣는 이들이 반응하지 않으면 성취는 없다.


Never ending story 발표 후 첫 몇 개월간은 반응이 기대 이하였다. <새, 벽> 앨범이 발표되고 나서, 나도 주변인들에게 홍보한다고 노력했으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두 사람의 만남에 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물량 공세보다는, 자연스러운 구전(口傳)·소문(所聞)의 힘이 강하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어느 날 친구와 PC방에서 게임을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Never ending story가 울려 퍼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거드는 말이 들려왔다. “야! 이 노래 좋네, 무슨 노래야? 누가 부른 거야?”


김태원이 만들고, 이승철이 불러서 좋은 게 아니라, 가사와 멜로디, 노래가 좋아 알아봤더니, 그게 공교롭게도 15년 만에 재결합한 그들이었던 거다.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흘렀다. 여기 중년의 새침떼기도,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이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먼저 연락하면서 산다. 불러주는 이, 찾아 주는 이 없어도 계속하다 보면 누군가 대답할 것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두 사람이 우리 곁에 거장으로 남아 있다는 건 여전히 <아름다운 사실>이다. 전성기가 지났느니, 기량이 쇠퇴했느니 하는 논쟁은 둘째다. 누가 배신했느니, 누구 인간성은 별로니 하는 갑론을박도, 사실은 세간의 관심이 남았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다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예의 이름값에 기대어 좋은 일이 벌어지길 바란다면, 그건 <착각>이다. 또 다른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연락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부활할 수는 없다. 내년이면 데뷔 40년 차, 그들의 끝이 없는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