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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Dec 28. 2023

My Love (2013)

다시, 고백의 시대

가진 거라곤 ‘젊음’ 하나뿐이었던 2005년 아내와 결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한 도전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청춘남녀의 결혼은 선택보다는 필수에 가까운 시절이었기에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 3년 차에 접어든 사회초년생의 주머니 사정은 변변치 않았다.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기는커녕, 독립한다는 죄스러움에 그동안 모아 놓은 돈 대부분을 드리고 난 후였으니, 통장은 텅 비었다. 뻔한 월급쟁이 신세가 갑자기 확 달리질 리도 만무했다. 요즘 분위기였으면 결혼은 꾸지 못할 꿈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올리기로 해 큰 부담이 없었다. 신혼여행 경비는 친구들의 축의금으로 충당했다. 신혼집이 문제였는데, 임차보증금 은행에서 개설한 마이너스통장과 회사 대여금으로 간신히 마련했다. 남들은 종잣돈을 불려 미래를 준비한다는데, 나는 일을 저질러 놓고 뒷수습하는 형국이었다.

      

경제적인 측면만 놓고 보자면, 빚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백하자면, 1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빚잔치 중이다. 결혼 후 5년간 집주인 사정 봐주다가 이사만 4번을 다닌 터라,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아이들 양육비, 생활비, 품위유지비는 계속 늘었고, 몇 번의 투자 실패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평생 빚 청산만 하다가 눈을 감을 수도 있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아내를 호강시켜 주겠다던 다짐은 공염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말이다. 이시간을 두고 내가 평생 풀어야 할 제다. 그래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키우고, 가족들 부양하려고 힘닿는 날까지 밥벌이하는 것은 나의 축복임이 분명하다.

     

다만, 아내들이 평생 추억으로 간직한다는 청혼 이벤트가 밋밋했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돈이 있건 없건, 반려자를 위해 성심성의껏 프러포즈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당시엔 생각이 짧았다. 내후년에 맞이할 결혼 20주년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13년, 이승철은 <My Love>를 발표했다. 경쾌한 리듬과 솔직 담백한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이다. 실제 젊은 커플의 프러포즈 과정을 담은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고백 송이기도 하다. 남자 주인공이 사연을 신청하고, 이승철에게 직접 노래 배운 후, 여자친구 몰래 한 편의 뮤직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의 용기와 실행력이 빛을 발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 무모한 도전이 뜻밖의 결과를 낳는다는 격언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2023년, <My Love> 공식 동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2천만 뷰를 훌쩍 넘었다. 이 정도면, 이승철 최고의 히트곡이라 보아도 무방할 수준이다. 뮤직비디오 커플도 벌써 10년 차 부부가 되었겠다. 결혼은 엄연한 현실인지라, 그들의 삶에도 희로애락이 뒤섞여 있을 테지만, 힘들 때마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한결 마음 풀리리라 확신한다. 제삼자도 볼 때마다 설레는데, 당사자의 감동은 오죽할까.


그러나, 당대 최고의 가수가 평생 기억에 남을 축가를 불러주고, 나 같은 소시민이 목에 핏대 세우고 결혼을 예찬하여도, 지금은 결혼이 ‘사치재’ 소리까지 듣는 시대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 인구는 소멸할 것이라는 등의 부정적 뉴스가 끊이질 않지만, 당장 오늘 하루를 사는 것도 빡빡한 청춘들에게, 삼십 년 후의 나라를 생각해 결혼하고, 아이 낳으라 권유하는 건 억지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니, <My Love> 뮤직비디오 이벤트에도 많은 돈이 들었을 터다. 타고난 금수저, 고연봉 전문직이 아니고야 현실에서 그 정도 이벤트를 기획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 하려다간 위화감만 커진다. 신혼살림은 고사하고, 결혼 준비만으로도 감당 못할 비용이 든다면, 결혼은 정말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

  



마산에는 무료 예식으로 유명한 ‘신신예식장’이 있다. 1967년에 개장했으니 올해로 57년째다. 이곳은 형편이 어려운 부부를 위해서 최소한의 결혼사진 비용만 받고, 예식장은 무료로 이용하게 해 주어서 유명해진 곳이다. 대표가 국민훈장을 받은 2019년부터는 아예 사진값도 받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예식장 설립 대표는 올해 초 별세했, 현재는 부인과 아들이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선친의 뜻을 이어받은 아들은 ‘사진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사진관 수입이 마땅치 않아 예식장이 경매에 넘어갔던 적도 있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원만히 해결했다고는 하나, 지금과 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언제 또 안 좋은 소식이 전해질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현직 국무총리가 이 예식장을 깜짝 방문해, 때늦은 결혼식을 올리는 가난한 부부를 위해 주례를 서 주었다고 해서 화제다. 요란스럽게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참석해 인생 선배로서 덕담하고 갔다니, 울림이 다.


허례허식과 거품을 걷어 내도, 모든 혼인은 축제의 장임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시인 신경림이 얘기하였듯이,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화려한 보컬로 유명한 이승철이지만, <My Love> 속 그의 음색은 전과 달리 깔끔하다. 악기연주와 편곡도 그렇다. 작사가 겸 작곡가 전해성은 전작인 이승철<긴 하루>, 윤도현 <사랑했나 봐>에 이어 이 곡에서도 특유의 담백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는 겉모습에 불과하다. 본질은 담백함에 있다. 음악의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띄는 클라이맥스도 없으니, <My Love>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고백 송임이 분명하다. “햇살이 밝은 아침보다 밤의 달빛이 어울리는” 모든 연인을 위한 노래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어느덧 원곡자 이승철도 날카로운 예술인의 풍모보다는, 자녀를 양육하는 아빠로서 분위기가 더 어울린다. 그가 TV 프로그램의 멘토로 나와 솔로들에게 결혼을 독려하는 모습도 익숙하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연예인들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좋은 신랑이 되기 위한 준비에 진심인 걸 보니, 그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그러나, TV 화면 속 연예인들의 화려한 일상을 지켜보는 일은 어딘지 불편하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를 쌓은 멘토와 멘티가 그리는 연애, 그리고 결혼 준비 과정은 아무래도 실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깜냥껏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 땅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더 이상 비교열위에 처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적 박탈감이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그가 신신예식장을 깜짝 방문해 축가로 <My Love>를 불러주는 상상을 해본다. 앨범 발매 10주년 기념 이벤트로도 제격이다. 노회한 고위 공무원이 단상에 서서 “김치! 참치! 꽁치!”라고 외치며 사진 찍는 것보다는, 라이브 황제의 프러포즈 송이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임은 확실하다. 기존 뮤직비디오와는 달리, 이번에는 늦깎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10년, 20년, 30년 차 부부의 사연과 함께하는 것도 괜찮 듯하다.


이미 충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사람에게 과한 기대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가 여태껏 쌓아 온 선한 영향력을 잘 알기에, 그의 타고난 재능이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까지 잘 스며들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 여전하다.




신혼부부 전용 보금자리론, 특별분양, 출산 지원금 등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제도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데도, 실상은 정책 당국이 기대하는 바와 다르다. 당장 분위기 전환은 쉽지 않겠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희망 없는 사회가 도래할 날 멀지 않다.


창업이 없는 사회는 퇴보할 뿐이지만, 고백(청혼)이 없는 세상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      


희망은 시와 노래에 있을지도 모른다. 1988년, 지명 수배 중이던 어느 청년의 조촐한 결혼식에서 신경림은 <가난한 사랑 노래>로 부부의 탄생을 축하했다. 사랑이 있는 한, 가난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모두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시상은 35년을 뛰어넘어 ‘신신예식장’을 찾는 부부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시가 떠난 자리는 음악으로도 채워다. 한동준 <사랑의 서약>, 동물원 <널 사랑하겠어>, 이소라 <청혼>, 그리고 유리상자 <신부에게>는 1990년대 결혼 장려의 일등 공신이다. 2000년대 결혼식장은 성시경 <두 사람>, 김동률 <감사>, 이적 <다행이다>가 접수했다. 2013년 발표된 <My Love>는 축가의 끝자락 정도다.  

   

공교롭게도, 2020년을 관통하는 고백 송이 나오질 않으니 결혼도 출산도 지지부진이다. 시대 해석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핀잔받을지언정, 부르기 좋고 듣기도 좋은 축가가 많아지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젊은이들을 우울감에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불과 1, 2년 전 우리도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생생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분위기 전환에는 음악만 한 게 없다. 더구나, K-POP의 위상과 파급력을 고려하면 밝고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형성될 수도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 다시 찾아올 고백의 시대, <My Love>가 그 시작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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