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요세프 Jan 01. 2024

달은... 해가 꾸는 꿈 (1992)

세월은 쌓이는 것이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30여 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올해 말 정년퇴직하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일곱 첫 교사 생활 시작할 무렵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올해는 우리의 중학교 졸업 30주년이기도 하다.     

 

대원, 제진, 병훈이가 30년간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녁 만찬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치 누구의 인생이 더 파란만장하고 다이내믹한지를 대결하는 시간 같았으나, 누구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나는 나, 너는 너, 모두 자신을 지목할 따름이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30년간 평교사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고 주목하는 건 그분의 직위가 아닌 정년퇴직에 이르기까지 쌓아온 세월이다.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칠 만큼의 시간, 정권이 여덟 번 교체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선생님 그림자는 밟지도 못하던 시대에서, 교권 상실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 만큼의 시간이다.  

    

30년간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공(功)과(過), 호평과 혹평,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이 뒤섞여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제자들의 고해성사가 이어듯이, 선생님도 부임 초기 본인의 의욕이 과했음을,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셨다. 모든 일들은 다층적이다.

 

중요한 건 그가 숱한 이슈들을 겪으면서도 교육 현장을 떠나지 않고 30년을 지켰다는 점, 그리고 정년퇴직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제 갈길 가던 제자들이 그의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30년 만에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야말로 명예로운 마무리의 증거 아니겠는가. 세월은 무심하게 흐르지 않고, 켜켜이 쌓이는 법이다.

    



1992년, 우리의 중학교 3학년 시절 영화감독 박찬욱은 자신의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의 제목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이다. 칸의 남자 박찬욱의 시작은, 그러나 초라했다. 본인이 기획하고, 시나리오 쓰고, 연출까지 도맡아 야심 차게 내놓은 처녀작은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무려 청춘스타 이승철이었는데도 말이다.

     

영화는 조직, 배신, 암투, 우정, 사랑, 이별, 죽음, 회상을 담은 액션 범죄물이다. 실패한 건 영화 흥행뿐 아니다. 이승철이 부른 동명의 영화 주제가 <달은 해가 꾸는 꿈>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영화가 가수의 팬덤(Fandom)에 기댄 건, 묘수가 아닌 악수였다. 일련의 사건으로 마음고생을 한 후, 이 영화를 통해 화려한 <부활>을 꿈꾸던 이승철도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박찬욱은 이후 영화 평론, 잡지 기고, 비디오 대여점 운영 등을 하면서 다음을 대비했다. 기회는 3년 후 찾아왔다. 이번에도 당대의 스타 이경영, 김민종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 후속작 <3인조>는 그러나 또다시 관객몰이에 실패했다. 평단의 박한 평가도 그대로였다.  


칸의 남자 박찬욱의 시작도 이렇게 쓰라렸다.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으로 이어지는 작 사이사이 <달은, 해가 꾸는 꿈>, <3인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토커> 같은 흥행 실패작이 끼어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박찬욱의 30년도 도전시련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흥행하지 못한 그의 초기작들도 결국 그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었음을 말이다. 범작이 흥행하는 일, 명작이 흥행하지 못하는 일 비일비재하다.   

  

어느덧 <달은 해가 꾸는 꿈>의 흑역사가 오히려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X을 싸도 대중은 박수를 쳐 줄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말이다. 시대를 앞선 작품, 복수시리즈 3부작의 프리퀄, 최고의 OST 등 개봉 당시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2021년, TV 프로그램 <유명가수 전>에 출연한 이승철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 곡을 방송에서 불렀다.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꿈, 달은 해가 꾸는 꿈”이라는 마지막 가사는 이 노래의 백미(白眉)였다. 애잔한 라이브가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는지, 유튜브 조회수도 연일 상승세다. “살다 보니,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날이 오다니”라는 댓글이 눈길을 끈다. 숨겨진 명곡, 지금 발표되어도 충분히 히트할 만한 노래라는 평도 들었으니, 30년의 한(恨)이 어느 정도는 풀린 셈이다.  




어느덧 나의 사회경력도 20년 넘어간다. 인간의 보편적 성정이 긍정보다는 부정, 기쁨보다는 슬픔에 경도되어 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내 지난 인생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참회와 회한의 시간이라 보는 편이 낫겠다. 제아무리 거장(巨匠), 대가(大家)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로부터 야박한 평가를 받는 시대 아니던가.  


돌이켜보면, 나의 20년은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깜냥껏 노력한다고는 했어도, 원하는 대학, 원하던 회사, 원했던 부서로 진입하지 못했다. 연애, 투자, 재테크도 내 뜻대로 이루지 못한 적이 많다. 사람에게 상처 주고, 되로 돌려받은 적도 있다. 순간순간 전력을 다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쉬 끄덕이기도 어렵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최선이라도 다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으면서 애먼 운명을 탓했던 적도 많다.    

  

그러나, 중학교 동창 녀석도, 존경하는 선생님도, 최고의 영화감독도, 내 인생의 가수도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들이라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겠는가. 때로는 적당히 요령도 피우고, 노력치 이상의 결과도 기대하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하늘도 탓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포기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만큼은 모두 비슷하다. 나의 꾸준함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20주년 재직 감사패, 누적 퇴직금, 직위와 직급 등이 그 증거다. 비록 남들보다 몇 발짝 늦는 한이 있어도, 나의 세월 역시 무심히 흐르지 않고 계속 쌓이는 중이다.


되는대로 살지 않고, 사는 대로 되려고 계속 시도하다 보니, 몇 개의 자격증과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숱한 도전 끝에 전도유망한 기업의 초기 투자자가 되는 행운도 얻었고, 졸작일지언정 책도 한 권 출간했다. 행복한 가족의 가장이 된 건 인생 최고의 축복이다. 도전과 도전 사이 작은 성취는 디폴트값이다.

      

완벽한 성공, 완벽한 실패란 없다. 시행착오를 통해 도전과 성취가 반복될 뿐이다. 일구이무(一球二無).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김성근의 표현이다. 공 하나를 던지고 나면 끝이다. 일단 공을 던졌으면 후회할 필요는 없다. 마운드를 떠나지 않는 한, 다음 기회는 올 테니까 말이다.


잘 던진 공이든, 폭투든 던지고 난 후의 결과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가끔 꽉 찬 스트라이크를 심판이 오해해 볼로 판정하더라도 말이다. 3할의 타율이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평생 타율 4타수 1안타만 되어도 준수한 타자 소리를 듣는다. 중요한 건 꾸준한 출전이다.   

  



30년 차 영화감독 박찬욱은 강력한 주제 의식, 시각적 연출(미장센), 진보적 사상(페미니즘)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극단적인 과잉, 금기의 위반, 잔인한 폭력성, 그리고 페미니즘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살펴보니, 그가 연출, 기획, 감독한 영화 35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대략 7편 정도다. 거장(巨匠)의 타율은 겨우 2할이다.   

  

60년 차 야구 감독 김성근은 야구의 신, 하늘의 선물이라는 호평비민주적 승리 지상주의자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다. 야신(野神)의 KBO 감독 통산 성적은 1,386승 1,212패 60무다. 최고의 승부사도 거의 이긴 만큼 졌다.    

 

35년 차 가수 이승철에게도 라이브의 황제, 국민가수라는 평가와 함께 실력이 과대 평가된 가수라는 박한 세평이 따라붙는다. 그는 지금까지 대략 150곡 이상을 발표했는데, 히트곡은 겨우(!) 40곡 정도다. 통산 타율은 채 3할이 안 된다.   

  

이쯤 되면, 대가(大家)들의 인생도 시행착오의 역사다. 그러나, 이 정도의 승률로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거장(巨匠)으로 추앙받는다. 핵심은 꾸준히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려면 계속해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스트라이크냐 볼이냐는 둘째 문제다. 어쩌다 간혹 나오는 안타가 그들의 명성을 뒷받침할 따름이다. 통산 타율도 세월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지금의 내 나이면, 아직 박찬욱 감독의 <박쥐>, <아가씨>, <설국열차>, <헤어질 결심>이 나오기도 전이다. 김성근 감독이 SK 와이번스에서 야구 인생의 꽃을 피운 때보다는 무려 스무 살 가까이 젊은 시절이다. 이승철은 이 나이에 프러포즈 송 <My Love>를 발표했었다.   

   

사회생활 20년 차라 해봐야 아직 갈 길은 멀다. 성공과 실패를 운운할 단계 더더욱 아니다. 무엇이든 결과물을 계속 내어놓아야 타율이라도 책정할 것 아니겠는가.


박찬욱, 이승철의 흑역사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어느새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던 꿈도 때로는 현실이 된다. 실패는 없다. 시도하는 한, 성취만이 계속 쌓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My Love (20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