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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Feb 24. 2024

마더 (2015)

자유인

이십 대 중반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던 이승철은 <아이러니>하게도 방송 출연 금지자 명단에 오른다. 자신의 실수 때문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리 방법은 없다. 가수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제부터는 이른바, 재야(在野)의 고수(高手)로라도 살아남아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그마치 6년의 기다림이었다. 카메라와 화려한 조명의 스포트라이트는 없을지언정, 그는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수년간 심장병 어린이 콘서트 계속하면서 반성과 참회, 보람의 시간을 보냈다.     

 

지나간 일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실력을 갈고닦는 수밖에 없다. 이승철이 최고의 보컬리스트, 라이브의 황제 소리를 듣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방송 출연 금지 시절이다. 공중파 3사가 유일한 TV 채널이던 시절임에도, 그는 잊히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 뒤로 숨지 않고 온몸으로 비판을 감수하며 꿋꿋하게 버티는 일이 첫째. 제 분야에서 뚜벅 한 걸음씩 나가는 일이 둘째.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최선이다. 그다음은 하늘의 뜻이다.     


1996년, 그의 나이 서른, 때를 기다리던 그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KBS 빅쇼라는 프로그램이 무려 1시간 반을 할애해 그에게 복귀 무대를 제공한 것이다. 공연의 부제는 <자유인>이다. 이만큼 그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책임을 다하면 또다시 자유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만감이 교차하는 공연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고 했던가(過猶不及). 연습에 지나치게 힘을 쏟다 보니, 막상 실전에서 탈이 났다. 공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음 이탈도 계속됐다. 그날따라 유독 긴장한 듯, 제 실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무대인데, 제대로 노래할 수 없어 속상하다며,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연신 사과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위기의 순간, 대선배인 조영남과 윤복희가 그를 살렸다. 공연의 막바지, 그는 대형 가수들의 애창곡이자 들을 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여러분>을 선곡했다. 목 컨디션 문제로 노래 부르기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갑자기 관객석에 앉아 있던 조영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라이브 황제의 자존심 따위는 오간데 없었다. 다행히, 이 노래는 제목처럼 <여러분>과 함께 불러야 빛이 나는 곡이기도 다. 고음 파트를 선배에게 기꺼이 양보한 그는, 그제야 안도하는 듯했다.     

 

멀리, 오래가려면 혼자 갈 수는 없는 법이다. 타공인 프로도 힘겨우면 SOS를 요청하는 마당에, <아마추어>이자 <실수 투성이>인 우리가 청(請) 하지 못할 일이 어딨겠는가.   

  

오른쪽에선 조영남이 멋진 화음을 넣어주며, 복귀 가수의 부담감을 낮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왼에서 <여러분>의 원곡자 윤복희가 예고 없이 나타나 또 다른 화음을 쌓는다.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우정출연한 김태원의 기타 연주빛을 발한 <비와 당신의 이야기>도, 이승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린 <희야>도 아닌, 존경하는 선배들이 조력자로 나서 준 <여러분>이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준비한 기회의 무대에서, 본인 노래가 아닌 남의 노래로 감동을 선물하다니, 역시 인생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다. 그날 잠긴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조영남, 윤복희, 이승철 세 명이 함께한 트리오 무대는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위기가 축복이다.  

   

선배는 후배에게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다. 조영남은 말다. 이곳 무대 위, 저곳 무대 아래, 어디를 둘러보아도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 찾기 어렵다고. 선배는 자신의 과오를 스스럼없이 밝히는 너스레를 떨면서까지, 떨고 있는 후배의 기를 살다. 목소리가 쉬었으면, 차라리 더 크게 노래 부르라며 훈수도 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목청껏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실수라는 대목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다.   

  

윤복희는 말한다. 지난 실수에 얽매이지 말고, 좋은 노래 많이 부르라고. 상처가 온전히 사라질 수는 없고, 흉터는 남는 법이니, 가끔 뒤도 돌아보며 살라고. 그러다 보면, 분명 너의 시간은 다시 올 것이라고 말이다.


이날의 무대 이후 거짓말처럼 이승철의 두 번째 전성기가 시작된다. 1996년, 이승철은 <오늘도 난>을 발표하고, 대중가수로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된다.  

   



이승철의 화려한 <부활> 콘서트, 그러나 관객석 한편에는 공연 내내 무대 위 가수보다 더 긴장한 모습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모친이다. 그녀는 아들의 공연을 즐기기는커녕, 초조하게 눈을 감고 가끔 눈물을 떨굴 뿐이다. 감개무량한, 보고도 믿기 힘든 오늘의 무대에서, 아들이 행여나 실수할까, 픈 목으로 끝까지 노래할 수는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이심전심, 아들 공연 도중 느닷없이 자기 고백의 시간을 가졌다.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모님 속 참 많이 썩였다며, 관객석 어머니에게 사과다. 못난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40년 공직 생활을 뜻하지 않게 마무리했다는 지점에선, 결국 아들의 목도 메다.   

   

한편으로, 어머니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아들의 복귀 무대를 지켜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했으리라. 부모에게 자랑이기만 한 자녀가 어디 있겠는가. <방황>을 끝내고, 이내 제자리를 찾은 아들, 그거면 다.    

 



2015년, 이승철은 데뷔 30주년 기념앨범 <시간 참 빠르다>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마더>다. 안타깝게도, 그의 모친은 이 노래를 발표하기 한해 전 별세했다. 그는 아내, 딸, 장모님을 모시고 미국에서 콘서트를 하던 중 비보를 전해 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복귀 무대를 곁에서 지켜보았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했다. 


봉양하고자 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더>는 이승철이 직접 작사하고, 작곡한 곡이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마음이 담긴 곡이라 더욱 뜻깊다. ‘엄마도 소중한 보배 같은 딸이었는데, 어느새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도 소중한 한 명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온 날이여’라는 노랫말이 애틋하다.

     

데뷔 30년,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지천명(50)의 나이이른 아들은, 자신의 복귀 무대 주관 방송사였던 KBS 프로그램(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다시 출연해,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게 이 절절한 사모곡(思母曲)을 바쳤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목메고, 눈물 나기는 마찬가지다. <마더>에 이어 <시간 참 빠르다>로 이어진 이날의 방송, 공연이 끝난 청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보 같은 시간이었다. 그날 밤, 나도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부자든, 빈자든 차이는 없다. 효도의 첫째는 나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 둘째는 자주 전화하고, 찾아뵙는 것. 그것이 전부다. 손의 재롱을 보여드리는 일, 용돈을 챙겨드리는 일은 덤이다. 그 이상은 과유불급이다. 평생을 받기만 하고 살아왔는데, 나이 들어 효도한답시고 갑자기 과한 친절을 베풀거나 사사건건 관여하는 것은 오버다.  

    

학원 숙제가 부담된다며 한사코 동행을 거부하던 아들 둘을 데리고, 이번 설에도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누구처럼 궁궐 같은 집에 모시고 살지도, 넉넉한 용돈을 드리지도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건강하고 씩씩한 손주를 둘씩이나 대동하고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일은 늘 뿌듯하다.   

   

내년부터는 본인 건강 삼아 하신다는 요양보호사 도우미 일을 그만두더라도, 삼시세끼 식사와 나들이 정도는 걱정 없을 만큼의 용돈 드리겠다는 아들의 호기로운 장담이 썩 싫지는 않눈치다. 내가 커피 한 잔, 술 한 잔 줄이면 되는 일이다. 우선은 급한 대로,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민물장어구이와 지난달 생신 때보다 조금 더 넣어드린 용돈으로, 나의 다짐이 단순한 허언(虛言)이 아님을 입증해 보였다.     


맞벌이라는 핑계를 대는 우리 부부를 대신해, 아이들의 아침, 저녁을 챙겨주시는 장모님께전보다 살가운 사위가 되기로 다짐해 본다. 10년을 모시고 살보니, 아무래도 감사함을 많이 잊고 다. 모님 분에 아이들도 잘 컸는데, 주말이라도 편히 쉬실 수 있게 가까운 파주에 자그마한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 드린 건, 지금 생각해도 찮은 결정이다.   


나와 아내는 이십 년째 꾸준히 연금을 넣고 있으니, 나이 들어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부담감을 짊어주지 않을 다. 행여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하더라도, 파산하지 않을 정도의 저공비행으로 누울 자리를 마련해  예정이다. 꿈꾸는 리얼리스트로 사는 모습은, 부모 그리고 자녀에게도 자부심과 안정감을 준다.


이승철이 <마더>를 발표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이제 어머니의 빈자리는 그의 장모님이 대신한다. 얼마 전 TV에 동반 출연한 두 사람이 함께 겨울 김장하고, 술잔 기울이며, 데이트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행복을 만끽하던 중임에도, 카메라에 비친 그의 눈가엔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가 메인 것도 매한가지다. 장모님을 통해서 어머니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더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함께하고, 기억은 기록으로 남기중이라는 그의 고백이 이어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 장모님의 사위인 그의 모습에 자연스레 나의 모습이 덧씌워진다.  


스타나, 그의 오랜 팬이나, 각자 자리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철부지 자유인이 책임감 있는 부모로 변해가는 것도 비슷하다.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 기록을 남기는 것, 그게 전부다. 효도와 성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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