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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Feb 17. 2024

소리쳐 (2006)

제자리 찾기

오랜만에 선배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무려 20년 만이다. 그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아나운서다. 간판 아나운서 소리도 듣는다. 지금은 메인 시간대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로 명성을 떨치는 중이다. 이 정도면 영락없는 성공한 셀럽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수십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와는 달리 나는 그가 익숙하다. <보이는 라디오>를 통해 매일 그를 보고, 듣기 때문이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노래(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유행가였던 적도 있지만, 기술은 진보했고, 결국 둘 사이 멋진 협업이 가능한 세상이 도래했다. 지금은 (보이는) 라디오 시대다.   


정계, 재계, 문화계 유력인사들과 유명인들이 출연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중후하고 믿음직한 목소리, 정갈한 옷매무새, 소탈한 웃음소리, 경청의 자세는 그의 상징(Signature)이다. 그렇다 보니, 좌파든 우파든, 부자든 빈자든, 그를 찾아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종종 남들에게는 말 못 할 이야기까지 허심탄회하게 꺼낸다.   


프로그램의 화제성, 공정성, 신뢰성이 연일 높아지는 건, 팔 할이 그의 몫이다. 20년 차 베테랑의 품위(品位)와 품격(品格)이 쌓아 올린 성취다.  

   

스펙도 화려하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선망의 ‘대상’인 방송국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었다. 이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아나운서 ‘대상’도 수상했고, 하버드로 유학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성공한 사람의 표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정도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법도 한데, 그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실력과 인성, 거기에 이름값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그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특히, 정계에서 그를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만한 대변인, 메시지 전달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의도, 용산의 구애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올해는 하필이면, 총선도 있고, 그는 용띠기도 하다.


그도 사람이기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모든 유혹의 손길을 끝끝내 거부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미래에는 그가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래된 후배인 나에게까지 선배가 속내를 감출 필요는 없을 터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소주 한 잔은 오랜 벗 둘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보이는 라디오와는 달리, 마이크도, 카메라도, 출연자도 없으니, 우리 사이에 말 못 할 비밀은 없다.      


선배는 본인을 온실 속 화초,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했다. 세 평 남짓한 스튜디오 안에서 정치인들과 주고받는 말의 향연이 세상살이의 전부가 아님을 안다는 <나의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일찍이 한국 정치의 풍운아 김종필(JP)은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고, 많은 월급 받고,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위주로 만나며 20년 이상을 보내고 있기에, 아무래도 세상 보는 눈이 왜곡되거나 편협할 수 있다는 자기 객관화였다.   

   

겉모습이 화려해 보일지언정, 그가 왜 힘든 세상사를 모르겠는가. 스무 살,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고학생 시절 선배 모습을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도 잘 안다. 직장인 수입이란 것도 다 거기서 거기다.  

    

잘 알면서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가 필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닌 지혜, 선민의식이 아닌 겸손함이다.

    

한때 인생의 대전환, 과감한 도전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20년 차 회사원의 선택지는 그러나, 다시 직장이다. 제자리를 찾은 그는 이제야 마음이 편안하단다. 그렇다고 그가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곳이야말로 제 능력을 가장 발휘하기 좋은 곳, 발전할 수 있는 곳, 정상 등반이 얼마 남지 않은 산이기도 하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는 경험이 쌓여야 더 높은 산도 오를 수 있다.  

    

그는 이제 최고의 사회자, 존경받는 선배, 후배들의 길라잡이, 그리고 방송국 CEO를 꿈꾼다. 숱한 외부의 유혹, 오랜 직장생활로 말미암은 권태로움을 이겨낸 후 새로이 꾸는 꿈이기에, 그는 기꺼이 과정의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있다. 그의 시계추는 이제 권태에서 고통의 방향으로 흐를 예정이다.

      

짧은 <방황>을 끝내고, 제자리를 찾은 선배의 앞날을 응원한다. 먼 훗날 언젠가,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CEO를 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더라도, 우리의 축하 회동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소주 한 잔이면 충분하다.




2006년, 이승철은 8집 앨범 <Reflection Of Sound>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그의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보컬과 완벽한 연주, 음향으로 음악인들과 평론가들에게 역시 이승철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신인 작곡가 홍진영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곡 <소리쳐>는 상업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노래의 가사도 멜로디도,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후렴구의 “가지 말라고 소리쳐, 돌아오라고 소리쳐,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소리쳐” 부분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오직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 나의 실력을 뽐내기 위한 노래에서 벗어나, 누구든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물론, 노래방에서 부르려면, 두 키 정도는 낮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마흔 살 보컬리스트 이승철의 가창력을 최고로 꼽는데, 나도 동감한다. 그 시기에 음악 평론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몇 차례의 설문 조사에서, 그는 우리나라 최고 가창력의 가수 순위 1~2위에 연이어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힘을 빼고, 쉽고 편하게 노래한 것이 주효한 셈이다. 지나침보다는 차라리 모자람이 낫다.  

 

"삼류는 가수만 노래에 취하고, 이류는 가수와 청자 모두 노래에 취하고, 일류는 청자만 노래에 취한다"고 그가 말했다.


음악(音樂)은 음학(音學)이 아님을 깨닫고 난 후에야, 그는 편하게 노래하는 일류로 진화했다. 당시 이승철은 인생 반려자를 만나 결혼까지 성공했으니, <소리쳐>는 어쩌면 그의 인생 노래인지도 모른다.

     

이승철은 가수 박정아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다. 그때는 보이는 라디오 초창기였다. 세상이 제아무리 투명해진대도, 라디오만큼은 <보이지 않는 사랑> 일 때 제빛을 발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청각을 자극하는 들리는 라디오 시대에서, 시각과 청각, 오감을 모두 자극하고, 실시간 청취와의 감정교류까지 가능한, 보이는 라디오 시대로의 전환은, 어쩌면 축복이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에서 홀로 빛을 내고 있을 법한 별(스타)과의 거리도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별이 빛나는 밤에도, 보이는 사랑이 가능니, 보이는 라디오를 거리낄 이유는 없다.    

 

그가 별밤에 출연하는 날,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손 닿을 수 있는 거리의 별과 마주 앉아서 보고, 듣고, 교감했다. 그가 세 평 남짓한 스튜디오 공간에서 피아노 연주에 맞춰 정성스럽게 부 <소리쳐>를 들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방송을 준비하다가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도, 쉴 틈 없이 허밍을 하고, 휘파람 불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는,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이 분명했다.  


별밤 지기도, 다른 출연자(양동근)도, 방청객도, 청취자도, PD도, 작가도, 집에서 PC 모니터를 통해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나의 아내도, 그 순간만큼은 일류 가수의 절창에 빠져들었다. 5만 명이 운집한 잠실 종합운동장의 25주년 기념 콘서트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라디오의 힘은 특별다.


그러나, <소리쳐>는 그에게 기회이자 위기였다. 숱한 위기를 극복해 낸 그였기에 앞으로의 인생은 전화위복(轉禍爲福) 인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전복위화(轉福爲禍)였다. 즐거운 일이 다하니, 여지없이 슬픈 일이 찾아왔다. <소리쳐>가 표절 논란에 휘말린 것이다.   


노래가 발표되자, Gareth Gates의 <Listen to My Heart> 후렴구가 비슷하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노래가 알려질수록 비판의 수위도 덩달아 높아졌다. 직접 선율을  않더라도, 가수는 음악의 전반적인 책임을 지는 주인공으로 인식다. 대중은 곡을 만든 작곡가가 아닌, 곡을 부른 가수를 기억한다. 더구나, 이 노래의 작곡가는 그가 직접 발굴한 신예이기도 했다.   

 

결국, 혼신을 기울여 만들었을 곡의 저작권을 <Listen to My Heart> 작곡가에게 양도했다. 원작자로부터 표절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음에도, 변명과 해명보다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20년 가수 생활 전체를 부정당한 것 같아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그도 상처받지만, 책임을 피하지않았다.  


일리있는 비판은 달게 수용하고,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베테랑 가수면, 노래가 쌓일수록 곡을 만든 작곡가의 음악을 더 예민하게 비교하고 걸러 들어야 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 법이다.   

   



연차와 경력이 쌓이다 보면, 억울한 일도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리더, 책임자라는 지위는 그냥 주어지는 훈장이 아니다. 품위(品位)와 품격(品格)을 보유한 베테랑에게 책임지는 자세는 필수다.


더구나, 나와 내 주변인의 관계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공(功)도 과(過)도 나의 것이다. 나와 관련 없는 결과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중요한 건 실수 이후의 자세다. 잘못을 인정해야 다음이 있다.     


풍파를 겪은 <소리쳐>는 더 이상 방송과 라디오에서 듣기 어려운 노래가 됐다. 그러나, 가수와 작곡가는 짧은 <방황>을 마치고, 제자리를 찾았다.


가수는 데뷔 40주년을 목전에 둔 전설임에도, 때정기 콘서트와 새 노래 발표 하고, 보이는 라디오 출연에 진심인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작곡가<그 사람>, <잊었니>, <아마추어>, <사랑 참 어렵다>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만들어 실추된 명예를 회복했다. 이문세와 임영웅이 부른 명곡 <사랑은 늘 도망가>, SG워너비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역시 그의 작품이다. 심지어, 음악저작권협회장도 역임했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혹자는 여전히 그의 책임과 도덕성다. 정답은 없다. 완벽한 사람도 없다. 달리 보면, <소리쳐> 표절 논란과 수습 과정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노래로 인생을 배웠으니, 어떤 의미에서든 <소리쳐>는 그의 인생 노래임이 분명하다.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는 없다. 위기 다음은 기회다. 실수와 방황은 불가피하다. 아나운서도, 가수도, 작곡가도 모두 그러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을 겪든 시간을 두고 마음을 다잡은 후, 이내 제자리만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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