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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Feb 11. 2024

추억이 같은 이별 (1991)

거리낌 없는 용기

사람이 떠난 자리엔 추억이 남기에 견딜 만하다. 함께 들었던 음악이 있다면 더 애틋다. 시간, 경험, 음악을 공유한 사이라면, 헤어졌어도 헤어진 게 아니다. 길을 걷다가도, 부지불식간에 <그 사람>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꼭 이성이 아니어도 그렇다. 추억은 이별보다 더 아름답다.   

  

대학교 입학식 날 석이와 처음 만났다. 그가 내 옆에 서 있었고,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우연이었다. 입학 전, 아버지가 같은 과에 입학한 고향 친구의 아들이 있다며 소개해 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윤석이었다. 이 정도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겠거니 생각하며, 우리는 대학 4년을 함께 했다.     


사실, 우리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관계이기도 했다. 자라온 환경, 성격, 생활 습관이 서로 달랐고, 무엇보다 경제력 차이가 컸다. 시쳇말로,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기들도 그와 내가 붙어 다니는 걸 보면,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스무 살의 청년 둘에게 뒷배경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 덕분에 나는 압구정 날라리 행세도 해보고, TV에서나 보던 연예인들과 밥자리, 술자리도 경험할 수 있었다. 국어와 한문을 특히 어려워하던 친구를 위해 <명심보감> 교양수업 숙제를 도와주면 될 일이었다. 조건 없는 우정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우정의 조건 따위를 내걸 필요는 없다. 어느 일방의 희생이 담보된다면, 어떤 관계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는 나에게, ‘한번 사는 인생’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자유롭게 살 것을 권했다. 나는 그에게, ‘한 번뿐인 인생’ 성실하게 살 것을 권했다. 서로의 강점(S), 약점(W), 기회(O), 위협(T) 요인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가능한 분석(SWOT)이다.

    

그러나, 남의 인생에 충고, 조언, 비판은 함부로 할 게 못 된다. 남이 해 준 인생 설계유효기간 짧다. 스스로 말하고, 꿈꾸고, 그리는 대로 삶은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친구는 외국에서 사업하면서 살고, 나는 이 땅에서 회사 다니면서 사는 중이다. 모두 말한 대로다.




공교롭게도, 우리에겐 이승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처음엔, 내가 그에게 이승철을 소개했는데, 나중엔, 그가 나에게 이승철을 소개했다. 가요에 크게 관심이 없던 친구도, 희한하게 이승철의 음악과 콘서트엔 진심이었다. 안암동과 대치동을 오가던 그의 노란색 스포츠카 안에서 우리는 이승철 CD를 함께 들었고,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함께 즐겼다.

     

스타가 별인 이유는 닿을 수 없는 밤하늘에서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넘보지 못할 자리는 쳐다보지 않았다. 새 앨범이 나오면 사서 듣고, 콘서트를 하면 가서 듣게 전부였다. 가장 큰 일탈은 팬미팅 참석 정도였는데, 그 역시도 한때였다. 그 이상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상상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상상이었다.

    

IMF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98년, 입대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나를 이승철 콘서트에 초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줄 서서 기다리지도 않고, 별도 출입구로 무료(Free)-입장(Pass)하는 것이 아닌가. 내 옆자리엔 축구선수 안정환, 고종수가 앉아있고, 그 옆으로는 TV에서 많이 보던 연예인들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여기는 돈 다고 내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매우(Very) 중요한(Important) 사람(Person)을 위해 마련된 특별석이었다.

      

한참 뒤편에 <새침데기> 회원들을 위한 자리가 보고, 낯익은 팬클럽 회장단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그 자리만 해도, 30% 할인된 가격에 더할 나위 없는 위치일진대, 이곳은 <차마> 상상 못 한 자리였다. 넘보지 못할 자리라는 생각에, 공연 내내 즐거움보다는 불함을 느꼈다. 콘서트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불편함을 감지한 그가, 지금 순간을 즐기라며 핀잔을 줄 정도였다.   

  

한술 더 떠서, 친구는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나를 무대 뒤편으로 안내했다. 공연스태프 사이를 뚫고 들어가, 흰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라이브의 황제>에게 나를 소개하는 게 아닌가. “형! 오늘 공연 잘 봤어요. 여긴 형님의 오래된 팬이자, 제 친구인 요세프예요. 예전에 제가 말씀드린 적 있었는데, 기억하실지는 모르겠네요!”

     

물론, 날도 나는 나의 존재감을 그(이승철)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쭈뼛거리고, 목소리 기어들어 가는데, 왁자지껄한 콘서트 무대 뒤, 수많은 사람 틈에서 어찌 눈에 들 수 있겠는가. 소심한 나를 이끌어  손수 인사까지 시켜 준 친구에게도 민망한 일이었으리라.

    



언젠가 친구는 나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가수 이승철 알고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이승철의 노래 중 <추억이 같은 이별>과 故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 리메이크곡을 맘에 들어한 후였다. 돌이켜 보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사는 윤석이에게 다음 스텝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 <인연>에 대한 자세한 내막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이 그저 허튼소리가 아님 몸소 체험했다.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됨>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나의 질문에 친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수소문해 먼저 연락하고, 용기 내 찾아가서 인사한 게 전부란다. 스무 살의 내가 윤석이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 후, 우리가 친구가 된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스토리다.


다른 게 있다면, ‘거리낌’의 있고 없음이다. 즉, 용기를 내느냐의 여부다. 기껏해야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내세울 게 있어야 얼마나 있겠는가. 친구도 보편적인 한국 사람의 정서와 상식에 부족함을 느끼던 <실수투성이> 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툰 유학생일 뿐이었다.  

   

친구의 행보는 계속 남달랐다. 부모의 도움 없이 자기 밥벌이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신발공장 2세 CEO의 길을 걷는 대신,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던 수입차, 이륜차량(오토바이) 매매 상사를 십여 년간 운영하며 덕업일치(德業一致)를 실천했다.  

    

그는 좋은 대학 졸업해서 이상한(?) 일 한다고 부모님에게 욕 많이 먹었다. 동기들도 대부분 의아해했다. 그러나, 남들이 뭐 라건 간에, 그는 용기를 트레이-마크로 삼아 미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베트남인 등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을 상대로 오토바이를 사고팔았다. 덕분에 달러도 많이 벌고, 세금도 많이 냈다. 세무조사 나온 국세청 직원을 향해, 당신 외화 벌어 봤느냐며 으름장 는 사람은, 그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가 한국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하버드 대학 교과인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 맨큐의 경제학을 독파하진 못했어도, 그가 직접 체득한 성공 경험, 실패 경험 잘 녹아면, 그것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최고의 교재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취임한 뒤로는, 아버지 때보다 회사가 더 견고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 글로벌기업  CEO와의 연락 두절은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헤어질 결심>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추억이 같은 이별>을 공유 중이기 때문이다. 스무 살 시절 함께한 경험과 음악은 영원히 뇌리에 남는다. 힘들 때마다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 그가 나를 초대한다면, 나는 거리낌 없이 글로벌 생산공장을 방문할 의향이 있다.

     

세상을 보는 눈과 가치관, 경제력의 차이는 더 선명할지언정, 그도 나도 모두 도전과 안전, 자유와 책임 사이 어디쯤을 공유한 채, 서로의 삶을 산다. 넘보지 못할 자리는 없지만, 넘지 않아야 할 선 있음을 알기에, 자의 자리에서 서로응원하면서 말이다.

         



1991년, 스물다섯의 이승철은 <추억이 같은 이별>을 발표했다. 그가 직접 작사하고, 그의 오랜 벗 손무현이 작곡한 노래다. 가슴 아프게 이별하더라도, 추억이 같다면 결국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이다. 음악 기-승-전-결이 분명하다.


클라이맥스 부문에서는, 록그룹 보컬리스트 출신 이승철 특유의 거침없는 미성과 절규가 귀를 자극한다. 같은 3집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 <방황>이 더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그리고 또래의 남학생들은 <추억이 같은 이별>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부활>을 탈퇴해 솔로로 전향한 이승철의 곁에는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손무현, 그리고 베이시스트 윤상이 있었다. 먼저 손을 내민 건 홀로서기에 도전한 솔로 가수 이승철이다. 특히, 손무현은 에게 곡을 선물하는 한편, 오랜 기간 전국투어 콘서트 함께하고, 음악적으로 교류하면서 우정을 나누었다. 방송에 출연해 서로를 향해 수위 높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니, 청춘의 우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그러나, 3집 이후 손무현이 작하고 이승철이 부른 노래는 찾아보기 힘들다. 성공 별은 자유를 꿈꾸는 예술가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별 용기와 실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20년 후,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이승철이, 경연자로 출연한 손무현의 조카에게 삼촌의 안부를 장면을 보고, 우정의 무색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들도 우리처럼 <추억이 같은 이별>을 공유 중일 니, <것만으로> 충분하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삶의 전부다. 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먼저 연락하고, 찾아갈 일이다. 밤하늘의 별로만 생각했던 스타도, 별빛의 이면에 외로움과 어둠을 안고 산다. 뜻밖의 지구별 손님이 찾아와 손을 내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내어줄지도 모른다. 애당초, 꿈꾸지 못할 별, 넘보지 못할 자리 같은 건 없다.

     

인연이라면 오랜 기간 교류할 기회가 되고, 행여 우연이라도 한두 번의 만남은 가능하다. 만남에는 갑도 을도 없다. 낯선 이에 대한 설렘과 떨림이 있을 뿐이다. 마다할 이유는 없다. 섞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도 서로의 곁을 내어준다.


필요한 건, 거리낌 없이 한 발을 뗄 용기가 전부다. 한번 사는 인생이건, 한 번뿐인 인생이건,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흘러갈 따름이다. 용기를 내어야 <추억이 같은 이별>을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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