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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Apr 03. 2024

방황 (1991)

돌이킬 수 없어도..

2017년 개봉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는 한순간의 실수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잊으려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다. 치명적 실수에 대한 기억은 사는 동안 불현듯,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현재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일상의 행복이 과거의 불행에 저당 잡히는 일은 빈번하다.

      

영화는 미국의 조그마한 항구도시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 리(Lee)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축구의 도시인 영국의 맨체스터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사뭇 다른 동네의 정서가 묘하게 대비된다. 이 도시는 고요함, 아늑함, 그리고 이웃 간의 정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리(Lee)는 아내,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영문인지 낯선 도시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다. 그의 표정은 늘 우울하고,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상실감과 쓸쓸함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차에, 그는 형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고향 맨체스터를 다시 찾는다.

    

과거의 상처도 여전한데, 형의 죽음까지 마주해야 하는 건 곤욕이다. 게다가, 고향에 남겨진 유일한 혈육인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도 지정마음은 더 무다. 그는 패트릭을 데리고 보스턴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패트릭은 자기가 나고 자란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심사가 뒤틀린 두 사람의 티격태격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리(Lee)의 인생은 맨체스터-바이-더-씨 항구의 파도처럼, 종잡을 수 없이 렁인다. 한때 이웃사촌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동네 사람들그를 향한 수군거림 여전다. 설상가상으로, 헤어진 전 부인에게서도 전화가 다. 더 이상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리(Lee).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괴로움은 높은 파도가 되어 그를 덮친다.




아픈 기억자신의 부주의로 집에 큰 불이 나서 세 아이가 모두 하늘나라로 떠난 것, 이에 충격을 받은 아내와 헤어지게 된 일련의 과정이다.


되돌릴 수 없는 잘못에 대한 자책감에, 그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왔지만, 고통이 그의 일상이 된 지는 오래다. 아픈 기억을 걷어내는 것은 불가능다. 자기 실수로 삶의 전부였던 소중한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냈으니, 그가 스스로 가혹한 형벌을 내리며 사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터무니없는 거짓은 아닐 터다. 가족들이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집안 온기를 데워두고, 그들이 잠든 틈을 타 맥주 한 캔 사러 집 밖으로 나온 사이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 인생의 비극은 이렇듯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서 비롯된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지난 실수, 고통과 후회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리(Lee)의 그것과 비교하여 깊은 신세 한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남은 인생은, 말 그대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다. 인생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판단한 리(Lee)가, 본인을 심문하던 경찰관의 권총을 빼앗아 자살하려는 장면도 납득 간다. 그냥 꾸며낸 창작물에 불과하다며 한 발 떨어져 보려 해도,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인 데다가, 살다 보면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기에, 관객은 처연하고 무거운 이 영화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혼도 언제까지나 과거에만 갇혀 지낼 수는 없는 일. 리(Lee)도, 이제 한걸음 씩 발을 내디딘다.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 역할이 그 시작이다. 결국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또다시 사람인 셈이다. 혈육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 책임감과 의무감은 삶의 무게임과 동시에, 다시 삶을 영위케 하는 인간의 원초적 동력이기도 하다. 싸움도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삶에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행위다. 판단컨대, ‘조카’ 패트릭이 ‘삼촌’ 리(Lee)의 인생 후견인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에 툭 하고 던져진 존재들이다. 태어난 것 자체가 유일한 소명이고, 그다음은 보너스다. 당장 내일 대단한 이벤트가 없더라도,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별하고 원대한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행여 잘못을 범하더라도, 예상 밖의 결과가 벌어지더라도, 쉽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유독 나에게만 시련이 잦다며, 고통에 쉽게 무릎 꿇는다면, 세상에 남아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고, 비난받을 일 있으면 비난받은 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우리는 모두 원죄(原罪)를 안고 살아가는 미물(微物)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종교인이건 무신론자건, 판사건 피고인이건, 예외는 없다. 누구든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말 못 할 비밀 하나쯤은 안고 산다. 남들의 손가락질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실수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최종 판단은 신의 영역이다.  

        



1991년, 이(Lee) 승철은 <방황>을 발표했다. “파란 넥타이, 줄무늬 팬티”라는 다소 파격적인 가사, 그리고 개그맨 박명수가 원가수를 모창한 것으로 유명한 노래다. 가사는 이승철이 직접 썼고, 작곡과 편곡은 김홍순이 다. 그는 <방황>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발표돼 인기를 얻은 이현우의 <꿈>을 만든 작곡가다.

      

<방황>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강렬한 비트와 흑인 댄스곡의 분위기가 어우러진 팝 음악이다. 세련되고 독특한 가요 <꿈>을 맘에 들어 한 이승철이 직접 작곡가를 수소문해 타이틀 곡을 의뢰했다는 후문이다. 흔들리는 청춘의 방황과 유혹을 솔직한 가사와 거없는 멜로디에 담아낸 이 노래는 90년대 초반 위풍당당 X-세대에게 제대로 어필했다.  

    

이승철 3집의 앨범 명도 <방황>이다. 스무 살 이른 나이에 데뷔해 특유의 미성과 가창력, 그리고 미소년 같은 외모로 전성기를 누리던 이승철은,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저질렀다. 수치와 욕을 견딘 그가, 인생의 <방황>을 일단락하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역설적인 제목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세상에 다 알려지는 유명인은, 잘못으로 감당해야 할 대가가 일반인과는 비교 불가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승철이었기에 비난은 더욱 거셌다. 대중은 익명성 뒤에 숨어 유명인에 대한 악담을 늘어놓는 데 여념이 없다, 그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스스로 인정했듯이, 연예인 껌처럼 씹히는 것은 숙명이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은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하기에 욕먹는 건 피할 도리가 없다.  

    



상처가 아물 수는 있어도, 흔적은 남는다. 주홍글씨는 한 사람의 이름 뒤에 평생 따라붙는 꼬리표가 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남긴 삶의 성취, 주변 사람들에게 남긴 향기에 따라, 비판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질 뿐이다. 만약 시대를 잘 타고난다면, 운이 좋다면,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다. 반대로 필요 이상의 가혹한 비난에 처할 수도 있다.

    

당시에는 세상의 온갖 욕을 다 듣는 것 같아도, 그동안 쌓아 온 명예와 부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아도,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다. 단, 변명과 회피가 길어져서는 안 된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다음이 있다. 전과 같은 최선으로 회귀하지는 못하더라도, 차선은 가능하다. 행여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대도, 최악만은 피할 수 있다. 위 두 명의 리(Lee)가 생생한 증거다.


이승철은 ‘오뚝이’로 불릴 만하다. 수십 년간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섰다. 그는 팬에게 싸인(Sign)을 할 때마다 이름 옆에 ‘Born Again’을 함께 적곤 하는데, 이는 그가 밴드 <부활> 시절의 초심을 기억하겠다는 의미에 더해, 오뚝이의 면모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실, 라이브의 황제 같은 수식어는 만천하에 치기다소 민망다. 저마다의 선호, 취향, 개성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게 ‘오뚝이’라는 별명만큼은 제격이다. 상식에도 부합한다. 유행가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음악계는 변화무쌍하다. 그런 환경에서도, 실패와 재기를 반복하며 지금껏 40년을 버티고 있다는 점, 고통과 권태의 반복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러워해 봐야 내가 가져올 방법이 없는 그의 타고난 재능 말고, 오뚝이 같은 자세를 배울 일이다. 돌이킬 수 없을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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