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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Apr 24. 2024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005)

임재범 vs 이승철

같은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일 수는 없다. 네 개일 수는 더더욱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유치하긴 해도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근 십여 년은 이른바 ‘김·나·박·이’ 4인 천하 시대로 불리고 있다. 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네 명의 남성 보컬리스트들은, 오랜 시간 저마다의 목소리 특성을 바탕으로 보컬 역량을 키우고, 꾸준히 히트곡을 내면서 반석 위에 올랐다. 그중 누가 최고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성 보컬리스트 중 최고를 가려내려는, 가벼운 듯 무거운 토론 주제 역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내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로는 ‘박·소·이·거’가 있다. 박정현, 소향, 이영현, 거미, 4인방이 바로 그들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이들 이외에 다른 보컬리스트를 최고로 치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여기 언급된 이들을 평가절하하기는 어렵다. 최고의 실력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기 위한 제1의 덕목은, 다름 아닌 ‘시간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움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중음악계에서 최소 15년 이상을 버티면서 여러 실적(히트곡)도 내고, 각종 논란도 감당해 낸 이들만이 시대 최고의 가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꾸준함이 최선이다. 모두가 수긍할 만한 객관적인 1등을 가리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음악에는 각자의 취향이 있을 뿐이다.  

    

물론, 최고(G.O.A.T: Greatest Of All Times)를 선정하려는 수요는 늘 있다. 비교하고 선택하려는 본능은 국가, 종교, 인종을 초월한다. 예수 vs 부처, 공자 vs 맹자, 소크라테스 vs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전부터, 메시 vs 호날두, 마이클 조던 vs 르브론 제임스, 비틀스 vs 마이클 잭슨, 조용필 vs 신중현, 남진 vs 나훈아, 신승훈 vs 김건모, 서태지 vs 듀스, 블랙핑크 vs 뉴진스에 이르기까지, 라이벌전에는 도무지 끝이 없다.  

   



임재범 vs 이승철 역시 한국 가요계 오래된 질문지 중 하나다. 정작 당사자들의 의견은 생략한 채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 둘을 비교하게 되는 것 역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라이벌을 비교선상에 올려놓고, 토론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많지 않다. 

     

토론방에서 이 둘을 비교한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승철은 ‘엄마’ 보컬, 임재범은 ‘아빠’ 보컬이라는 표현이다. 엄마 아빠 중 선택하는 문제라면 정답은 없고, 취향만 남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교라는 생각이다. 누가 더 낫다고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1980년대 중반, 임재범은 고등학교 동창인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이끄는 밴드 ‘시나위’의 보컬로 데뷔했다. 대중음악 종사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독보적 록 보컬리스트가 제 발로 나타난 셈이었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임재범은 단숨에 대한민국 록 보컬의 상징이 되었다.     

 

파란만장한 개인사가 있는 임재범의 실제 나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네이버 프로필에는 1962년생으로 나온다. 그런데, 빠른 1967년생인 신대철과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니, 뭔가 사연이 복잡해 보인다. 그래도 태어난 시간이 2개 버전일 수는 없다. 신대철과 임재범이 친구 관계이니, 1966년생인 이승철과 임재범은 동갑내기로 보아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겹치는 친구, 선후배 간 호칭이 조금 꼬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이로 서로의 자존심 세울 나이도 지났다. 


임재범의 데뷔와 비슷한 시기, 이승철은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이끄는 밴드 ‘부활’의 보컬로 대중음악계에 입문했다. 록 밴드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성, 곱상한 외모에 대중은 환호했다. 이제껏 경험해 본 적 없는 보컬리스트의 탄생이었다.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이승철은 소녀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했다. 


그로부터 거의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 사람은 초창기 시절, 각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TV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해 <아름다운 강산>을 함께 부른 적이 있다. 그 오래된 필름 외에는, 아직 둘이 한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삶의 궤적이 많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사이 후배 가수들은 롤-모델로 이 둘을 계속 언급했고, 소위 대중음악 전문가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들을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으며, 두 사람을 묘한 긴장 관계에 놓이게 했다. 사람인 이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리라.  

    

두 사람은 나이, 데뷔 시기만 겹치는 게 아니다. 확연히 다른 목소리임에도 즐겨 부르는 노래도 여럿 겹친다. 롤-모델로 언급한 적 있는 전설의 그룹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부른 <Soldier of Fortune>은 두 사람 모두 여러 차례 방송에서 노래한 적 있다. 가요 중에는 故 김정호가 직접 만들고 부른 <이름 모를 소녀>, 故 이영훈이 만들고 이문세가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대표적이다.  




2005년, 이승철은 데뷔 20주년 기념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했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수록곡 중 하나다. 한국형 발라드의 대명사인 이문세, 그리고 그와 영혼의 파트너로 불리던 작곡가 이영훈의 대표곡이자, 전 국민의 애창곡이다. 리메이크 앨범에서는 이승철의 섬세한 미성이 돋보이도록 편곡했다. 그는 콘서트와 TV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이 노래를 불렀다.  

    

비슷한 시기, 임재범도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원곡자 이문세가 직접 선정한 최고의 리메이크곡도 임재범이 발표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다. 이문세는 거칠면서도 애절하게 노래하는 임재범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며 후배를 극찬했다. 라이벌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최선을 다했다면, 남이 하는 비교와 평가는 무던하게 넘겨도 좋다. 

    

노래방 애창곡 수준이 아니라, 각자 심혈을 기울여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에 수록한 곡까지 겹치는 걸 보니, 두 사람의 음악 취향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다. 알게 모르게,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재범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후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가 급상승했다. 오매불망(寤寐不忘) 그의 출연만을 기다리던 팬들뿐 아니라, 그의 라이브를 본 적도 들어본 적 없는, 어렴풋이 ‘무림의 고수’ 정도로만 그를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마저, 마치 노래에 음정과 박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포효하는 그에게 감탄했다. 당시 그에게 붙은 별명은 ‘끝판왕’, 프로그램의 이름은 어느덧 ‘나만 가수다’로 변해 있었다.  

   

프로그램 관련 인터뷰 중 임재범은 난데없이 이승철을 소환했다. 함께 출연했던 가수 조관우에 대해 ‘뱀’처럼 노래한다고 말한 후, 이승철을 ‘독수리’에 비유했다. 곱씹어 볼 만한, 참신한 표현이었다. 사실 나는 이승철이 ‘뱀’이라고 생각했다. 빙빙 공기를 되감으며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승철의 고음은 날카롭기도 하다. 높이 날다가 갑자기 쏘기도 하니, ‘독수리’가 제격이었다.   

   

이승철도 어느 인터뷰에서 임재범의 목소리가 부럽다고 터놓은 적이 있다. 내가 못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임을 숱하게 듣지만, 그게 잘 안되니까 사람인가 보다. 천하의 임재범과 이승철도 서로를 비교하는데, 나 같은 범인(凡人)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라이벌이 있어야 천하를 자기 발아래로 보는 우(愚)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실력을 쌓고 겸손을 배우는 데는 스승보다 차라리 호적수(好敵手: 알맞은 상대)가 더 낫다. 고립되어 혼자 살지 않는 한, 비교와 경쟁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건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시기와 질투에서 벗어나려면, 눈앞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느니, 차라리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들은 같은 무대에 서서 자웅(雌雄)을 겨룰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누가 마지막 무대에 설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일은 크게 실익도 없고, 에너지 소모만 크다. 쓸데없는 감정소진은 건강을 해치고, 우리 안의 추악한 본성을 깨울 뿐이다. 때로는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이승철은 임재범의 목소리를 닮을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를 뿐이지, 객관적으로 더 우월한 목소리, 더 나은 가창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공기 반, 소리 반’ 같은 기준도 절대적이지 않다. 서로를 치켜세운다 해도, 사실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려 40년을 한 무대에 서지 않은 게 더 이상하다.


나 같은 음악 소비자야 뭐 아무려면 어떠한가. 엄마의 잔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 날엔 아빠의 곁으로 가면 되고, 아빠가 무서울 땐 편안한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다. 누가 더 좋은지는 그날의 기분이 좌우한다. 그저 두 사람 다 오래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강렬한 태양과 은은한 달빛. 같은 하늘 아래, 태양은 두 개일 수 없지만, 달은 해가 꾸는 꿈일 수 있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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