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wover Feb 15. 2022

선택지만 늘리면 뭐해, 선택할 용기가 없는데

<나의 선택이 온전히 내 것이 되기 위해> 001

나는 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고등학생이라면 모두 한 번은 해봤을 법한 질문.

공부는 왜 하는 건가요? 콩나물 값 계산만 할 수 있으면 된 거지 함수에 시그마 같이 애들을 왜 배워야 하나요? 도대체 왜???’

나도 당연히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왜’를 외치는 아이였다.


그때 엄마의 답변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나타났을 때 선택할 수 있도록’

그 말에 나는 그대로 설득당하고 말았다.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길게 늘어뜨려있는데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한다. 기회가 나에게 왔을 때 준비되어있다면 쉽게 잡을 수 있지만, 놓치고 지나가고 나면 매끈한 뒷머리를 잡을 방법이 없다고 이런 이야기들은 목표지점이 없던 내가 무작정 열심히 해야할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당시 하고 싶은 일이 없던 나에게 ‘열심히’는 한계가 없었다. 뭐가 하고 싶어 질지 모르니까 무작정 열심히 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책도 열심히 읽었고 언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고3이 되어 공부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성적 때문에 그 과에 지원을 못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공부할 의욕이 저절로 생겼다.


하지만 그 ‘하고 싶은 일’이라는 유니콘은 고3이 끝나도록 찾아오지 않았고, 대학교 과를 선택할 때도 다시 ‘선택권을 넓히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국어국문학과. 출판 기획자로 일하는 고모가 사회에 나가 일을 하다 보니 국문과 출신 디자이너, 국문과 출신 마케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국문과를 만난다고 했다. 책을 읽고 책 내용을 소화한 디자이너의 디자인, 책을 온전히 이해한 마케터의 마케팅은 그냥 경영대 출신 마케터나 미대 출신 디자이너보다 훨씬 좋았다는 말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지금 와서 보니 국문과는 전공을 살려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온갖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동기가 33명인데 직업이 겹치지를 않는다. 이러니 온갖 곳에 국문과 출신이 있지.)


이렇게 열심히 선택지를 늘리며 살아왔는데, 정작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나는 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열심히 늘린 선택지를 지워버린 건 나의 자격지심이었고, 친구와 동생과의 비교였고, 부모님의 기대였고, 타인의 시선이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것들이 내 선택지를 갉아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 :: 어려운 결혼을 앞둔 누군가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