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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wover Apr 01. 2020

‘아니요, 해볼게요’

‘이거 해봤어요?’라는 질문에 요즘 매일 하는 말


**님 보도자료 써봤어요? 공문 보내봤어요? 인터뷰해봤어요? 영상 만들어봤어요?

전혀 다른 업종으로 이직한 후에는 모든 일이 다 처음이었다. 물어보는 것마다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뭐 할 수 있는 척이고 나발이고 내 답변은 늘 같았다.


“아니요, 해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아서 일단 youtube에 물어보기. ‘보도자료 쓰는 법’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세하게 올려뒀다. 새로 만들어진 센터이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처음 하는 일들도 많다. 단점이라면 사수가 youtube이자 책이라는 점, 동종 업계에 아는 사람도 없다 보니 ‘지인 찬스’도 마땅치 않다. 좋은 점은 자리 잡힌 회사였다면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 일들이 내 손에 들어온다는 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해볼 수 있다.


그렇게 또 전혀 모르는 일이 내 몫으로 떨어졌다. 상담에 관심이 많기는 했지만 책을 뒤적거리는 정도였던 내가,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고 그 과정을 통해 현재에 얽혀있는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상담 워크숍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진짜 참가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니 todo 리스트 작성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했다. 그렇게 만든 (틀린) todo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고, 다시 보완해 나가는 게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갈 즈음. 새로운 일이 떨어졌다. 프로그램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나가기로 한 것.

1편에서는 워크숍의 진행자를 맡아주실 전문의 선생님의 인터뷰와 우리 프로그램 소개를 담아야 하는데...... 다시 백지였다. todo 리스트 작성부터  다시 시작.


영상감독님이랑 컨텍을 하기 전엔 뭘 알아봐야 하는 거지?

영상감독님이 요구하는 스크립트란 어느 정도 쓰인 걸 말하는 걸까?

이렇게 영상을 제작하는 인터뷰의 경우 사전에 얼마나 자세하게 스크립트가 나와야 하는 거지?

레퍼런스 영상을 가지고 톤 앤 매너를 전달하면 되는 건가?

영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내가 부탁드려도 괜찮은 건가?

영상 촬영은 보통 얼마나 찍어야 10분짜리 영상이 나오는 거지?

영상감독님 페이는 보통 어느 정도 일까?

어느 선까지 내가 부탁을 드려도 되는 거고, 어디서부터가 실례되는 걸까?

스토리보드 같은 걸 만들어서 전달드리면 되는 걸까?

내 머릿속에 있는 이 그림이 실제로 영상으로 구현 가능한 건가?

이런 영상을 촬영하려면 카메라가 몇 대가 필요한 걸까?

카메라마다 촬영감독님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 건가?


이게 맨땅에 헤딩인 거지. 아는 게 없는데, 시간도 없어. 해야 할 건 많은데, 시간도 없어.


이동 중에는 인터뷰 영상을 잔뜩 찾아보고, 집에 가서는 인터뷰이 블로그 글을 하나하나 읽어 치우다가 퍼뜩 예전에 사뒀던 책이 떠올랐다. <인터뷰 특강> by. 지승호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인터뷰로 단편집을 출판하며 살아가는 전문 인터뷰어다. 책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꺼내 읽었다.


‘이런 질문을 던져. 이렇게 물어봐. 이렇게 정리해.’라고 당장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조언을 얻으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인터뷰어의 태도, 마음가짐 등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물론 그런 거 다 중요하지, 근데 나는 바로 내일모레까지 질문지를 보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 앞은 다 건너뛰고 ‘인터뷰어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챕터로 넘어갔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겠지? 하는 바람을 담고.


p.127 당연히 진보적인 글을 쓰려면, 도입 단락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창의적이기만 하다면, 그에 대한 답은 엉터리여도 좋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답을 걱정하지 말고 질문에만 신경 쓰면 된다.”


이 외에도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답변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생각 중 어느 조각을 보여줄지가 전혀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읽다 보니 마음만 급해서 완전히 거꾸로 질문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던 내 실수가 보였다. 우리 프로그램에 맞는 이야기를 미리 내가 그려놓고, 그 이야기에 맞는 답변을 정하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그 답변을 받기 위한 질문을 찾는 방법으로 작성한 질문들은 내 전문 분야도 아닌 ‘정신과, 상담, 심리’에서 다룰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다 지워버리고,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맴맴 돌고 있었다.


다시, 일단 이 책을 정독을 하고 정석대로 자료조사를 통해 질문지부터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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