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는 왜 이 곳으로 여행을 온 거야?’
콜롬비아 살렌토에서 커피 농장 투어를 끝내고 돌아오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도대체 왜 한국의 반대편에 있는 이 머나먼 나라까지 온 건가,
남미는 내 마음속 '배낭 여행의 종착점'이었다.
스물한 살, 호기롭게 떠났던 첫 배낭여행 인도에서 만난 여행의 고수 느낌을 풍기는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배낭여행의 끝’은 남미라며 이야기하였다.
따뜻한 물은 고사하고 쪼르륵 나오는 물줄기를 요리조리 활용하여 씻어야 하고 화장실이라는 곳은 문을 열어보면 넓고 넓은 허허벌판이 나오는 인도보다 더 힘든 여행지가 존재한다는 건가.
고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은 고생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너무 힘들지만 매력이 넘치는 곳, 남미를 가야겠다는 이상한 다짐을 하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다.
남미를 여행하려면 나도 배낭여행의 고수가 되어야 했고 ‘배낭여행 고수되기’ 수행을 시작했다.
혼자 배낭을 메고 50일간 유럽을 다녀오고 이후 캄보디아, 라오스, 뉴욕, 쿠바 등 30개국이 넘는 곳을 여행하며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최종 목적지는 남미, 배낭여행의 끝을 서른두 살에 그곳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왜 배낭여행의 마지막 시점을 서른두 살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직 삼십 대의 위대함을 모르던 이십 대였으니 그런 하찮은 생각을 한 스무 살의 나를 이해해야지.
남미를 여행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매월 25만 원씩 적금을 들어 여행 경비를 마련하였고 최소 두 달이 넘는 휴식기가 필요하여 그즈음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내 인생사 어디 마음대로 흘러가는가. 이십 대의 끝에 입사한 회사에서 일에 재미를 느껴버렸다. 중독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일중독에 걸려버린 거다. 그렇게 한해 두 해가 가더니 회사를 다닌 지 5년이 흘렀고 어느덧 서른다섯이 되었다. 일중독의 후유증이 스트레스를 동반한 지침과 무기력함이지 않던가, 5년을 열심히 달려왔으니 회사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갑작스레 퇴사를 했다. 계획했던 퇴사도 아니어서 -친구들과 술 먹으며 이야기하다, ‘아 그러게 나 회사 5년이나 다녔네, 이제 그만 졸업하자’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일주일 만에 퇴사를 했다. -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지던 때였다.
그런 나의 퇴사 이야기를 들은 대표님은 도쿄에서 좀 쉬다 오라고 하셨다.
도쿄에 회사 분점이 있었는데, 직원들을 위한 숙소가 마침 비어있었다.
이걸 받아들이면 왠지 회사로 돌아와야 할 것 같아 한사코 거절했는데 대표님은 퇴사 선물이라며 눈물과 콧물로 훌쩍거리는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나는 퇴사와 동시에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받고 한 달간 도쿄살이를 떠났다.
도쿄에서 한량처럼 지내고 돌아와 내가 하고 싶은 것,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해 생각하니 내 나름의 제2의 목표가 세워졌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모으려면 회사를 다녀야 했다.
그 회사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입사하기 전, 2달만 남미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야 돌아와서 찾으면 되고, 우선은 다녀오자 라는 심산이었다.
스물두 살에 했던 나의 다짐은 돌고 돌아 13년이 지난해에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다.
미국인 친구의 ‘너는, 여기, 왜’라는 간단한 질문에 나는 결코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없었다.
여기, 남미는 오랫동안 내가 꿈꿔온 곳이고 내 배낭여행의 최종 목적지이며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돌고 돌아 결국에 도착한 곳이었다.
이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숨을 한 번 고르고 그에게 답했다.
‘어쩌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