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이야기
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했다기보다 호불호가 명확했달까. 조용하고 순한 아이에겐 다가가고, 시끄럽고 까탈스러운 아이에게선 뒷걸음쳤다. 모든 아이가 예쁘진 않았다. 착한척하려 노력했을 뿐, 올곧게 착하지 못한 본연의 나는 모난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의 기준이 많았고, 고집도 셌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그럴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따지고 듦이 빈번했고 명확히 구분했을 때 속이 후련했다. 우유부단함보다 확실하고 깔끔한 상황을 추구했으니. 불행하게도 이것은 나 자신의 감시자 역할을 할 때 톡톡한 역할을 했다.
네모 반 듯 정리된 상황들 안에 들어온 껄끄러운 아이는 나의 부족한 부분만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상당히 불편하고 난감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에게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임신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원래 자기 자식은 다 예쁜 법이니까?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 그렇기도 하지만, 난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였다.
가부장적인 시부모님에게 칭찬받는 착한 며느리로 사는 간단한 방법.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아야 했다. 살면서 터득한 슬기로운 시집 생활이었다. 시키는 것만 잘하고, 허락받은 것만 잘하면 되었다. 그렇다고 문득문득 솟아나는 혼자만의 생각 조각들이 어찌 없을까.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뾰족해지는 생각들을 납작하게 눌러대기 바빴다. 꿈틀대는 불만 덩어리가 비집고 나올 틈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마음속이 날카로운 생각으로 난도질당하지 않으려면 그 무엇이라도 생각하지 않아야 했다.
멍하니 있었다. 아니, 그렇게 있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생각 속으로 스르르 빨려들어 갔다.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야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을 끊을 수 있을까. 답답한 현실을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찾아 든 방법은 바로 잠이었다. 어두운 잠 속으로 숨을 때면 그나마 울렁이던 마음속이 짐짓 잠잠해졌다.
‘이렇게 사는 의미가 뭘까’
눈 만 뜨면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밥 차릴 때도, 청소할 때도, 멍하니 빈집에 앉아 창밖을 바라볼 때도 계속 떠올랐다. 이것 아닌 다른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밤마다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뭐라도 좋았다. 찾고 싶었다. 아침에 눈 떴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 하루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를. 간절함이 통했을까. 어느새 내가 미소 짓고 있었다. 웃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석 달의 눈물을 멈추게 만들어 준 것. 임신이었다. 신기하게도 임신을 알게 된 그 날밤부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잠 못 드는 밤도 없었다.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던 새 생명도 아니었다. 믿기지 않는 삼신할머니의 깜짝 이벤트같이, 어느 날 문득 우연히 받아 들게 된 선물꾸러미처럼 얼떨떨했다. 조심해라, 무거운 것 들지 마라. 걱정 어린 말들이 오고 갔다. 이런 말은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만을 상기시켜 줬을 뿐, 나의 하루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딱 하나, 나의 마음만 빼고.
더 이상 눈 뜨는 아침이 서글프지 않았다. 부엌으로 내려가는 3칸의 계단도 가슴 저미지 않았다. 눈을 뜨며 ‘잘 잤어?’ 미소 지었다. 부엌으로 내려가며 ‘조금만 기다려. 맛있는 것 먹자’ 혼자 속삭였다. 신기했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외롭지 않았다.
흔한 입덧도 없었다. 헛구역질과 구토는 드라마의 허상과 같았다. 음식 냄새는 향기로웠고, 변기통은 볼일 볼 때나 인사하는 곳이었다. 힘들어 누워있거나 병원에 링거를 맞으러 가는 수고도 필요 없었다. 모든 면에서 착하고 대견한 며느리. 만족스러운 나의 모습이었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하루가 생각난다. 그날은 전날 저녁부터 설렁탕이 너무 간절했다. 송송 썬 파가 동동 떠 있는 뽀얗고 담백한 국물이 눈앞에 아른아른. 숟가락으로 한 술 크게 휘저어 건져 올린 부드러운 고기 살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임산부들은 이해할 것이다. 설렁탕이 먹고 싶다 해서 아무거나 먹지 않는 마음을. 그 식당의 그 설렁탕이 먹고 싶은 마음을. 나에게도 콕 집어 원하는 설렁탕이 있었다. 거리가 꽤 떨어진 식당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며 생각했다. 청소하고 나가서 식당을 가면 몇 시쯤일 거고, 먹고 돌아오면 몇 시쯤이겠지? 어머님 들어오시기 전에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갔다 올까?’
시집와서 처음으로 외출을 고민했다. 나가시는 어머님의 눈치를 보며 넌지시 물었다.
“어머니, 오늘 점심은 드시고 오세요?”
“점심? 그래, 오늘은 먹고 올 거야”
확인도 되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좋아. 먹고 오는 거야. 가보자’
무겁기만 하던 대문이 가볍게 열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운 바깥 공기가 어색했다. 어색해서 설레었고, 설레임이 행복했다. 행복한 감정이 또 어색했다. 어색한 미소가 슬며시 삐져나왔다. 믿어지지 않던 그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지금도 가슴 깊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다.
대문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겨나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더 이상 잠으로 도망가려 노력하지 않았다. 쨍하고 눈 부신 햇살이 예뻐서 나갔고, 여유 있는 시간이 아까워 일부러라도 나갔다. 좋아하던 빠빠오(아이스크림)를 파는 동네 가게를 발견하곤 물개박수를 치며 ‘내일도 와야지’ 신나 했다.
왼손엔 아이스크림 통을, 오른손엔 작은 스푼을 들고 살살 긁어 녹여가며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 뱃속으로 시원하게 번졌다. 그렇게 한낮의 사람 없는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골목 구석에 삐죽 나와 있는 꽃과 잡초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고개 들어 청명하게 파란 하늘과 뭉게뭉게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눈에 가득 담았다. 동네 한 바퀴를 다 돌쯤이면 아이스크림 통도 비워졌다. 그런 다음, 마치 만족스러운 의식을 끝낸 마음으로 대문을 닫으며 착한 며느리의 자리로 들어갔다.
임신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의욕도 없던 마음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없는 것에 익숙한 공허한 집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게 했다. 일일이 보고하고 허락받는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해 보였던 집에서, 허락 따위 필요 없이 떠오르는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 여겨졌던 집을 돌아갈 집으로 생각하게 했다. 시부모님께 휘둘리며 살아야 했던 하루 사이사이에, 휘둘리지 않는 나의 순간들을 채워 넣으니 사는 게 좀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한심하지 않은, 조금은 단단해진 내가 느껴졌다. 막힌 숨이 쉬어졌다. 사는 것 같았다.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영원히 살지?’
돌이켜 보면, 밤마다 흘렸던 눈물의 시작은 이 두려움이었다. 색깔이 바랜 무채색의 하루를 견디던 나의 신혼 시절. 아침이면 눈을 뜨고 숨을 쉰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죽은 것과 같았다. 입력한 시스템대로 움직이는 로봇. 그것이 나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느끼는 존재 가치가 바닥이었다. 그랬던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알아서 잘할 수 있어. 아가. 엄마만 믿어’
허락받지 않은 채. 점심 한 그릇 사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너무나 하찮아서 웃음조차 나지 않는 행동들. 그러나 나에겐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것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은 열 번, 백 번의 칭찬보다 컸다.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에 온기가 번져갔다. 그토록 찾던 살아갈 의미를 붙잡은 것과 같았으까.
누군가 그랬다. 자식은 존재만으로도 효도를 다 한 것이라고. 그 사람도 나 같은 마음이었겠지. 그랬다. 나에게 임신은 소중한 자식을 만나는 성스러운 일, 그 이상이었다.